미 연방대법원이 12일(현지시간) 임신중절 의약품의 비대면 처방을 막아달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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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방대법원이 코로나19 여파로 시행됐던 인공임신중절 의약품의 비대면 처방을 금지하는 판결을 12일(현지시간) 내렸다.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 임명 이후 나온 첫 여성의 인공 임신중절(낙태)에 관한 판결로 '보수 절대 우위'의 대법원 구도가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에서 임신 초기에 자연 유산을 유도하는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을 받기 위해선 미 식품의약국(FDA) 규정에 의해 병원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은 미 산부인과대학 등을 대표해 단순히 약을 받기 위해 병원을 직접 방문하는 것은 환자와 의사에게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높인다며 미 FDA를 고소했다.
메릴랜드주 연방지방법원의 시어도르 주앙 판사는 지난해 7월 ACLU의 손을 들어주며 전국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원격 진료 후 우편이나 배달로 미페프리스톤을 처방받을 수 있게 조치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항소를 했고, 결국 기존 FDA 조치를 복원하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에이미 코니 배럿(오른쪽) 연방대법관. 트럼프 대통령은 배럿 대법관을 포함해 3명의 연방대법관을 임명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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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지언론에 따르면 미 연방대법원은 6 대 3으로 이같이 판결했는데, 보수 성향으로 비대면 금지 판결을 내린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번 판결은 여성의 인공 임신중절 권리에 대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대신 법원이 코로나19 여파에 대한 자체적인 판단을 근거로 미 식품의약국(FDA)의 결정을 바꿀 수 있는지를 고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소수의견을 낸 진보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과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이 나라의 법은 더 위험한 다른 의료 절차 대신 임신 중절 수술을 콕 집어 더 까다롭게 만들어왔다”면서 “그런 법률처럼 이번 판결도 임신 중절만을 예외적으로 취급할 뿐만 아니라 여성의 선택권을 행사하려는 사람에게 불필요하고 정당하지 않은 과도한 부담을 부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차기 행정부가 이 조치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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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 3’ 보수 우위 확인… 바이든 발목 잡을까
현재 9명의 연방대법관 중 6명이 보수, 3명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임기 시작 이후 3명의 보수 성향의 대법관을 임명하며 ‘6 대 3’으로 보수 우위 체제가 만들어졌다.
미국 연방대법관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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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에선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번 판결에 대해 "이념적 노선에 따라 6대 3으로 갈렸다"고 논평했다.
임신중절 문제는 미국에서 첨예한 정치적 이슈 중 하나다. 배럿 대법관이 임명될 당시 현지 언론들이 배럿의 ‘낙태 반대론자’ 면모를 부각하기도 했다. 스티브 블라덱 법학 교수는 CNN에 “오늘 판결의 중요한 의미는 새로운 보수 우위 대법원이 앞으로 임신 중절 판결에 어떻게 접근할지 보여줬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에서 보듯 보수 우위의 대법원은 출범을 일주일 남겨둔 바이든 행정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진보적인 정책에 강력한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임명한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 그는 보수 성향으로 알려졌지만, 오바마케어 판결 등에서 진보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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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통신은 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관 3명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항소법원 판사의 30%를 임명했다”면서 “이 충격은 오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해왔던 일의 진정한 척도는 임신 중절과 총기, 종교적 권리 등 수많은 법원 판결에서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정건 경희대 교수는 “예를 들어 바이든의 기후변화 정책이 상하원을 통과해도 보수단체에서 절차상 흠결이나 기존의 법률과 상충 등으로 위헌 소송을 낼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입법 취지에 문제가 없어도 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기후변화, 의료보장 정책들이 법원의 문턱에 걸려 좌절되거나 지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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