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하원의 탄핵 표결에서 의결정족수인 217명을 넘어선 13일 오후 4시 22분(현지시간) 하원 회의장에는 정적이 흘렀다. 2019년 12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 때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던 것과는 대조적인 장면이었다.
1년여 전과 똑같이 검정 정장을 입고 등장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탄핵이 의결된 후 "대통령도 법 위에 있지 않다"며 "슬프고 비통한 마음으로 서명한다"고 말한 뒤 기자들 질문도 받지 않고 자리를 떴다.
이날 미국 의회는 또 한 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썼다. 244년 미국 역사상 현직 대통령이 하원에서 탄핵돼 상원 표결까지 간 것은 모두 세 차례 있었지만 실제 물러난 사례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중 한 번을 이미 차지했고 이번엔 재임 중 두 번이나 탄핵을 당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패배했고, 12월 선거인단 투표에서 또 졌다. 그러나 올해 1월 6일 상하원 합동회의 당일까지 승복하지 않은 채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결과를 뒤집으라고 억지를 부렸다. 트위터를 통해 지지자들에게 워싱턴DC로 집결하라고 요구했고 직접 시위대 앞에 나서 "의사당으로 행진하자"고 부추겼다. 결국 끔찍한 의사당 폭동 사태가 발생하자 민주당은 청문회도 열지 않고 속전속결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하원은 찬반 토론 이후 표결에서 찬성 232표, 반대 197표로 탄핵안을 의결했다. 애초 미국 언론들은 공화당 하원의원 가운데 리즈 체니 등 4~5명이 찬성표를 던질 것으로 전망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10명에 달했다. 찬성표를 던진 톰 라이스 공화당 의원은 "지난 4년간 트럼프 대통령을 무조건 지지해왔지만 이번에는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탄핵은 미국을 더욱 분열시키는 행위"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의사당 폭동에 대해 책임져야 하지만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는 것이 먼저"라고 반대했다.
이날 토론에 나선 공화당 의원들은 임기가 불과 일주일 남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실효성이 없으며 정해진 절차를 생략하고 표결로 가는 것은 의회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단죄'가 있어야 역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고 맞섰다. 스테니 호이어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을 제거할 시간이 없다지만 옳은 일을 하는 데 너무 늦었다는 말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의결됐지만 상원에서 3분의 2 찬성이 있어야 탄핵이 완성된다. 하원은 즉각 상원에 탄핵안을 송부할 수도 있고 일정 기간 보류했다가 보낼 수도 있다. 민주당은 지난 5일 조지아주 결선투표에서 당선된 상원의원 2명이 아직 취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이달 말 원내 입성할 때까지 숨을 고를 가능성이 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역시 오는 19일 개회 예정인 상원 일정을 긴급 권한을 이용해 앞당길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다. 다만 매코널 원내대표는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한 이후 상원에서 탄핵심판 절차를 개시하는 데는 동의했다. 탄핵이 완성되려면 상원 3분의 2인 67명이 찬성해야 한다. 민주당은 조지아주 당선자들을 포함해 상원 의석이 50명이기 때문에 공화당에서 최소 17명이 탄핵을 지지해야 한다. 만약 상원에서 탄핵이 가결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공직 재도전을 차단하는 별도 결의안도 표결되며 이때 정족수는 단순 과반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몸을 더 낮추며 탄핵 회피 전략에 착수했다. 그는 탄핵 직후 백악관 트위터 계정을 통해 공개된 동영상에서 "나는 우리가 목격한 폭력을 분명하게 비난한다"며 "폭력과 파괴 행위는 이 나라에서 설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13일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6일 의사당 난입 사태로 번진 집회를 주도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 알리 알렉산더가 공화당 의원 3명이 자신의 집회 계획을 도왔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 서울 = 신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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