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1 (일)

이슈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태

"펀드 가입하려면 소득증빙해야" 분쟁 불씨만 키운 금융소비자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어설픈 금융규제의 덫 ◆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 금융권의 금융소비자 권익 관련 사항을 통합해서 규율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이 없어 은행들의 손발이 묶인 상태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 상태에서 법이 시행되면 은행들은 사실상 펀드를 판매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금소법에 따르면 고난도 금융상품의 경우 고객이 가입한 뒤 7일간 청약을 철회할 수 있는 권한을 상품 가입자에게 부여한다. 은행들은 이 같은 가능성을 감안해 최소 7일간 고객의 돈을 그대로 보유한 뒤에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모집과 운용 간에 큰 시차가 발생하는 것이다.

주가연계펀드(ELF) 등 구조화 상품의 경우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 구조화 상품은 5영업일간 고객을 모집한 후 펀드를 꾸려 주가연계증권(ELS) 등 주식 관련 자산을 매입하는 구조인데 여기에 7일의 청약철회기간이 더해지면 자금 모집과 운용 사이에 2주가량 시차가 발생한다. 요즘처럼 증시가 급변하는 상황에선 고객에게 약속한 수익 조건과 쿠폰금리가 2주간 변동 없이 유지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청약철회를 배제한다는 특약조건을 넣고 고객과 별도 약정을 통해 청약철회기간 없이 바로 투자자산을 매입할 수 있겠지만 투자자 모집형 상품의 경우 특약 조건을 넣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투자자가 청약 철회를 위한 숙려기간 없이 즉시 투자하려는 경우 특약으로 가능하다는 조건을 넣어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3월 도입되는 금소법은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라임·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 등 대형 금융사고 재발을 막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은행권 영업방식에 근본적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이런 변화에도 시중은행들은 발 빠르게 대처하기는커녕 오히려 손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금융투자협회와 생명·손해보험협회 표준안, 은행연합회 공동 약관과 상품설명서 서식 등이 미리 나와야 이를 반영해 내부 영업지침과 전산시스템 등을 교체하는데 유관기관들의 가이드라인조차 전혀 나와 있지 않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소법 대응을 위해 은행 장표부터 전산시스템까지 모두 바꾸는 대대적인 작업이 필요하다"면서 "전산 개발만 2~3개월 걸리는데 지금 상태로 3월 중반까지 준비를 마치기는 무리"라고 말했다.

이달 시행된 펀드·신탁 등 비예금상품 내부통제 모범규준 관련 혼란도 커지고 있다. 은행들은 투자위험이 있는 비예금상품을 판매할 때 고객의 자산, 소득 등을 감안해 투자한도를 정하는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이를 내부규정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은 다음달 은행들을 대상으로 비예금상품 내부통제 모범규준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14일 은행권에 따르면 우리·하나은행은 고객의 자산 규모별 투자한도를 정하는 규준을 확정했다. NH농협은행은 자산과 소득을 모두 적용한 투자한도를 적용한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투자한도를 정하는 기준을 여전히 검토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선 고객의 자산과 소득을 감안해 자유롭게 투자한도를 정하라고 했지만 세부 지침이 없어 혼란스럽다"며 "자산별 차등화를 하는 경우 금융자산은 적지만 부동산 자산이 많거나, 우리 은행에 맡겨놓은 돈은 적지만 다른 금융기관에 많은 금융자산을 갖고 있는 경우 고객이 찾아와도 투자상품을 내놓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소득기준도 고객 영업 관점에선 불편하긴 마찬가지"라며 "은행에 펀드를 가입하러 왔는데 소득 증빙을 위해 원천징수영수증 건강보험료 등 서류를 내야 한다면 흔쾌히 자료를 제출할 고객이 몇이나 되겠는가"라고 강조했다. 자산·소득별 투자한도 차등은 역차별 논란이나 은행 민원 증가로도 이어질 수 있다. 투자위험이 작고 수익률이 높은 알짜 금융상품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연 소득 3000만원인 고객은 연 1억원을 버는 고객보다 더 많이 투자할 수 없다.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한 고객이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게 된다. 은행들은 투자한도 제한에 불만을 느낀 고객들이 증권사로 대거 옮겨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증권사도 투자상품 판매 시 고객 투자성향을 감안해야 하지만 소득·자산별로 투자한도를 두지는 않는다. 은행들의 투자상품 판매는 앞으로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국내외 증시는 역대급 호황을 맞았지만 시중은행들 펀드 판매 비중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1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20년 11월 말 기준 은행의 펀드 판매 비중은 15.5%로 2년 전인 19.6%에 비해 4.1%포인트 감소했다. 특히 라임 펀드 환매 중단 등으로 사모 펀드 판매 타격이 컸다.

[김혜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