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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대졸취업 9만명 늘때 고졸 18만명 줄어… 공기업 절반 ‘고졸채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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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코로나發 고용한파, 저학력자가 더 추웠다

서울 강북의 A상고는 다음 달 졸업을 앞둔 90명 가운데 5명만 취직이 확정됐다. 경기가 어렵다고는 해도 매년 20명쯤은 은행, 보험회사, 세무법인 등에 일자리를 구했는데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한 교사는 “은행 등 제자들이 희망하는 곳들은 채용이 줄었고, 코로나 여파로 그럴듯한 일자리는 사라지다시피했다”면서 “군대를 가거나 대학 진학을 알아보는 졸업생이 늘었다”고 했다.

조선일보

지난 한 해 고졸 취업자 수는 18만명 줄었다. 코로나발(發) 고용 참사로 2020년 줄어든 일자리 21만8000개 중 80% 이상이 고졸 일자리였다는 얘기다. 지난달 20일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회원들이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고졸 일자리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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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의 경우 지난 2016년부터 5년간 1716명의 신입 행원을 뽑았는데 고졸은 지난해 딱 1명뿐이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학력과 무관하게 행원을 선발해왔지만, 고졸 채용을 따로 진행하지 않다 보니 이런 결과가 생긴 것 같다”며 “올해 2월에 영업, 전산 분야에서 상고, 공고 등 고졸 출신을 뽑기로 하고 작년 말에 채용 공고를 낸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 성북구의 한 PC방은 작년 말 주 12시간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 1명을 뽑으려 인터넷 구인 사이트에 공고를 냈는데 62명이 지원했다. PC방 사장은 “대학생, 대졸자들이 몰리니 고졸자는 안 뽑게 되더라”면서 “알바를 하며 지내는 고졸 청년들 사이에 ‘알바 경쟁이 치열해져서 대학생들 방학이 무섭다’는 말까지 있더라”고 했다.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최악의 고용 한파가 닥쳤던 지난해 고졸 출신 등 저학력자들은 ‘고용 빙하기’를 겪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17일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통계를 분석한 결과, 취업자 수가 21만8000명 줄어든 지난해 고졸 출신 취업자 수는 18만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대 출신 취업자 수도 2만8000명 줄었다. 중졸은 7만명, 초졸 이하는 3만1000명이 각각 줄었다. 반면 작년 4년제 대학 졸업자 취업자 수는 9만1000명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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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실업률, 고졸 9.3% vs 대졸 8.5%

구직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한 실업자의 경우 정부 통계로도 고졸과 대졸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지난해 고졸 실업률은 4.5%로 2019년보다 증가(0.4%포인트)했지만, 대졸 실업률은 3.1%로 감소(0.2%포인트)했다. 대표적인 취업 연령층인 20대의 경우 고졸 실업률은 8.9%에서 9.3%로 나빠진 반면, 대졸은 9.7%에서 8.5%로 감소했다.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 직업계고 졸업생이 직장을 잡는 비율은 최근 하락하는 추세다. 졸업하는 해 기준으로 2011년 26%였던 이 비율이 2017년엔 50.6%까지 올랐지만 44%(2018년), 34.8%(2019년)로 추락하다 지난해 2월 졸업생들은 27.7%로 반 토막이 났다. 직업계고 졸업생 10명 중 3명밖에 취업 못 하는 이런 상황까지 오는 데 경기 불황과 최저임금 상승, 주 52시간 근무 등 제도적인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경기도 안 좋은데 기업을 옥죄는 제도가 많아지니 중소기업들이 채용을 줄였다는 것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 부진으로 기업들의 채용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저학력자 문호가 좁아진 데다,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고졸 출신의 대안이었던 단기 일자리도 코로나 여파로 줄어든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진전으로 저숙련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줄고 있고, 코로나 여파로 패스트푸드점 무인 결제 시스템이나 공장 자동화 시스템이 늘어나는 등 대면 근로자를 찾는 사업장이 줄고 있다”면서 “정부의 고졸 일자리 정책이 이 같은 산업 구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로 현장 실습조차 사라져

올해 2월 졸업하는 직업계고 학생들의 취업률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직업계고 학생이 졸업하려면 의무 현장 실습 시간을 채워야 하고, 여기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기업에 실제 채용되는 식이었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중소기업의 실습 현장이 문을 닫아걸었기 때문이다.

고졸 취업자 수가 올해 급반등하기는 쉽지 않다. 17일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11월 한국 전체 경제가 코로나 이전인 지난해 1월 수준의 80%가량 회복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고용 부문은 코로나로 인한 고용 충격의 4분의 1 정도만 회복됐다고 밝혔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올해도 고용 상황은 코로나 충격을 다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며 “특히 코로나 피해가 집중된 도소매 음식숙박업 등 고졸 취업자가 많이 자리 잡는 일자리의 회복이 더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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