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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코로나 먹튀’에 멍드는 소비자…“업주도 피해자”라는데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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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서울에서 문을 닫는 음식점과 PC방 등이 늘어나 상가 전체로는 지난해 2분기에만 2만개가 폐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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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 있는 한 헬스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휴업에 들어갔던 이곳은 결국 새 주인을 맞았다. 새로 온 주인은 리모델링 후 오픈을 약속하며, 회원 모집을 진행했다. 하지만 오픈 일정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신규 가입 회원의 민원이 빗발쳤다. 헬스장 대표는 회원에게 회원권 변제를 약속했지만,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러다 이 업주는 최근 일부 회원에게 "신용불량자가 됐다"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구제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연락을 했다.

#.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치과 원장은 지난해 3월 코로나19로 경영이 어렵다며 3주간 휴업한다는 문자를 남기고 잠적했다. 최근엔 강원도 원주에 있는 한 돌잔치 업체 대표도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업체 대표는 미리 예약금을 낸 고객에게 환불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런 조치 없이 행방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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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헬스장의 문이 닫혀 있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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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난' 문 닫는 헬스장…소비자 피해도 급증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경영난으로 영업을 중단하는 업체가 늘면서 소비자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소비자원)은 지난해 헬스장 관련 피해구제 민원 3068건이 접수됐다고 15일 밝혔다. 2019년(1925건)과 비교했을 때 59.37% 증가한 수치다.

소비자원이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접수된 헬스장 관련 피해구제 신청 1995건을 분석했더니 ‘계약해지 관련’ 피해가 93.1%(1858건)로 가장 많았으며, 이 가운데엔 코로나19로 인한 자금난을 이유로 ‘연락 두절(환급 지연)’되거나 ‘폐업 또는 폐업 예정’이라며 영업을 중단한 사례 259건이 접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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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근처 헬스장 대표가 리모델링을 이유로 오픈을 미루다 연락이 두절됐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피해자와 대표가 나눈 문자메시지의 일부. 헬스장 회원 380여명 가운데 법적 대응하겠다고 나선 피해자는 69명이며 피해 금액은 2172만원에 달한다. [제보자 정모씨 제공]





피해보상은커녕 처벌도 어려워



이처럼 소비자 피해는 느는데 구제는 어렵다. 특히 헬스장은 PT 무료제공 등 추가 혜택을 이유로 장기계약을 맺고, 그 과정에서 현금 결제나 계좌 이체를 유도하거나, 신용카드는 일시불로 결제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일시불 결제의 경우 피해자가 신용카드사에 잔여 할부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인' 할부항변권'을 주장하기 어렵다.

결국 피해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고 있는 실정이다. 오픈 채팅방에서 단체 소송 방법을 논의하고, 민·형사 소송을 검토하는 식이다. 하지만 민사소송의 경우 피해 금액보다 법률 자문료 등 추가 비용이 더 들어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비용이 들지 않는 형사소송을 선택해도 '먹튀 업주'에 대한 처벌이 쉽지 않다. 허윤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변호사)은 “기망의 의도가 있어야 사기 혐의가 성립한다"며 "처음에 정상적으로 영업하다가 코로나19로 어려워져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처벌은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피해자들 "또 다른 피해자 막기 위해 소송 나서"



피해자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마포구의 한 헬스장에서 회원권 환불을 받지 못한 김모씨는 “연락 두절된 업체 대표가 코로나 지원금이나 폐업 지원금을 받더라도 회원 구제에 그 돈을 쓸지 의문"이라며 "코로나를 핑계로 수많은 폐업이 이뤄질 것이며 이로 인한 피해자도 많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앞서 언급한 홍대입구역 인근 헬스장 회원 정모(33)씨는 변제 약속을 하고 연락이 끊긴 헬스장 대표 A씨를 상대로 지난해 12월 31일 서울서부지검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현재 이 사건은 마포 경찰서에서 조사 중이다. 정씨는 "환불보다도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 소송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환불·반환 규정 없는 경우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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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소비자원 홈페이지에 등록된 '코로나19로 인한 헬스장·휘트니스센터 분야 주요 피해유형별 해결방안' 공지글. 한국소비자원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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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원은 홈페이지를 통해 코로나19로 소비자 피해 항목을 개설해 주요 품목에 대한 분쟁 유형과 피해구제 방안을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 소비자와 사업자 간 합의가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한다. 코로나19는 ‘사회재난’에 속하는데 정부가 권장하는 표준약관에 전염병과 관련한 환불·반환 규정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런 이유로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소비자와 관련 업계 등 모두 다 피해를 봐 어려운 상황"이라며 "1차 피해자인 소비자를 업체가 먼저 구제하게 한 뒤 정부나 지자체가 업체를 지원하는 식의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비자권익증진기금 논의가 몇해 전부터 진행되고 있는데 코로나19와 같은 비상상황에서 소비자 피해구제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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