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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정준영 부장판사, 삼성 준법감시위 “실효성 없다”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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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도는 실효적으로 운영돼야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

지난해 1월 17일 열린 4차 공판서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가 한 얘기다. 준법감시위원회(준법감시위)에 대한 삼성 측 설명을 듣고 한 답이었다. 이로부터 1년 뒤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 선고에서 정 부장판사는 “삼성 준법감시위가 실효성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해당 제도가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법 행위를 예방하지는 못한다는 게 ‘실효성 부족’의 주된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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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관련 뇌물공여 등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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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준법감시위 양형 참작 어렵다”



18일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삼성의 준법감시위 활동을 양형 기준에 참작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제도는 이번에 문제가 된 위법 행위에 초점이 맞춰있지만 새로운 유형의 위험에 대비한 선제적 예방 활동을 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최고 경영진의 위법행위를 통제할 개연성이 있는 계열사에 대해선 독립된 준법감시위에 의한 직접적 감시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며 “하지만 현재 조직만으로는 이를 감당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준법감시위의 주목적은 감형이 아닌 위법행위의 ‘예방’에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기업이 위법 행위를 했음에도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면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준법감시제도를 자발적으로 운영할 이유가 없어진다”며 “특히 이 사건처럼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이 선고된 이후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한 경우에는 유죄가 인정된 뒤에서야 제도를 도입해도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했다.



‘준법감시위’ 먼저 언급한 재판부



이번 판결에서 준법감시위가 주목을 받는 건 재판부가 한 발언 때문이다. 2019년 10월 1차 공판에서 정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에게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에 버금가는 혁신 ▶내부 준법감시제도 마련 ▶재벌 체제의 폐해 시정을 주문한 바 있다. 특히 준법감시위를 두고서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해 제대로 운영하고 있는지에 따라 감형요소로 반영 가능하다고 한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을 언급했다. 4차 공판에는 준법감시위를 양형 심리에 반영하겠다고 공지해 특검 측의 기피 신청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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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청사 전경. [사진 서울고법 홈페이지]



삼성 측은 이에 따라 지난해 2월 김지형 전 대법관을 필두로 하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공식 출범했다. 3개월 뒤에는 준법감시위의 권유에 따라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삼성은 이를 계기로 노동3권(단결권ㆍ단체교섭권ㆍ단체행동권) 보장과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노사 관계 자문그룹을 이사회 밑에 두기로 약속했다. 이후 준법감시위는 이 부회장과 정례회의를 가져왔다.



'1.5대 1.5'로 갈렸던 전문심리위원 평가



공판이 진행될 당시 삼성 준법감시위 활동을 점검한 전문심리위원단 3명은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특검 측 추천을 받은 홍순탁 회계사는 준법감시위에 부정적이었다. 반면 이 부회장 측 추천을 받은 김경수 변호사는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재판부가 추천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은 “준법감시위가 새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유형별로 정리하고 선제 예방 활동을 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면서도 “최고경영진의 준법 의지나 여론의 감시가 강한 편이어서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긍정·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언급했다.

다만 전문심리위원단의 평가가 선고 결과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란 반응도 나온다. 준법감시위 전문심리위원단으로 활동한 김경수 변호사는 이날 판결을 두고 “전문심리위원은 재판부를 보조하는 역할이고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지속가능성에 대해 우리한테 점검을 의뢰한 것”이라며 “법원의 판단이나 양형에 대해서는 옳다, 그르다 말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박현주·하준호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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