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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그 지독하다는 항암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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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양선아의 암&앎

(4) 첫번째 항암

항암 전날 가방을 잃어버렸다

멀리서 연락해준 버스기사님

친절·배려가 용기를 북돋웠다

마침내 무시무시한 항암 시작

의료진은 갖가지 부작용 경고

혈관 속 약물에 온몸이 휘청

불쑥 찾아온 ‘환우’ 권사님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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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내 가방이 어디 갔지?’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충북 오송역에 도착했는데 가방이 온데간데없다. 첫 항암을 하기 전날인 지난해 1월20일, 나는 세종시 교육부를 찾았다.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신뢰를 높이는 데에 대해 기여했다”며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박성용 <불교방송>(BBS) 기자와 내게 표창장을 준다고 했다. 항암 전날이라 갈까 말까 망설이다 상을 받고 기분 좋은 상태에서 항암을 하자는 생각에 갔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가방을 잃어버리다니.

되돌아온 가방…친절의 나비효과


부랴부랴 카드 분실신고를 하고 철도역에서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돌려 봤다. 오송역에 들어오는 내 손에는 꽃다발이 든 종이가방만 쥐였고 가방이 없었다. 버스에 가방을 놓고 내린 것 같았다. 버스 회사에 전화를 돌려봐도 분실 가방이 접수되지 않았다고 했다. 2~3시간 가방을 찾느라 진을 뺀 뒤 나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기차에 올랐다.

‘내일 항암인데 이게 무슨 일이람. 불길한 징조인 것인가. 항암 하면 렌즈도 안 끼는 게 좋다는데 안경까지 분실해 어떡하지?’

심란했다. ‘내려오지 말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항암 앞두고 상 같은 게 뭐가 중요하다고 내려와서 이런 일을 겪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암 진단 뒤로는 일상의 모든 일이 ‘의미’지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가방을 잃어버리니 항암을 앞두고 불안해졌다.

다행히도 용산역에는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항상 곁에 있어주는 선배 리아(별칭)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아야, 내가 언젠가 방송에서 봤는데 우리나라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면 주인이 다시 찾는 비중이 의외로 높아 놀란 적이 있어. 그러니 며칠 기다려봐. 버스에서 네 가방을 주운 사람이 연락 올 수도 있잖아. 일단 안경 필요하니까 함께 밥 먹고 내가 아는 안경점에 가서 안경 하자. 안경은 내가 해주고 싶어. 힘내.”

선배는 보라색 안경을 맞춰주고 집 근처 지하철역까지 나를 바래다주며 “내일 항암 잘하고 다시 만나자”고 했다. 선배가 아니었다면 그날 내 기분은 엉망진창이었을 것이다. 선배의 친절과 사랑에 나는 ‘연초 액땜했다고 생각하자. 돌아올 가방이면 돌아오겠지. 집에 가서 잠이나 푹 자자’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밤 9시 반 무렵이었다. 휴대폰 벨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여보세요. 양선아씨죠? 저는 청주시 버스운전사인데 버스에 가방을 놓고 내리셨어요. 종점에서 버스 정리하면서 발견했어요. 지갑과 안경이 들어 있는 가방 주인 맞으시죠?”

세상에! 가방이 돌아왔다! 전화를 받는 순간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뱉으며, 허공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오후 2시 반께 버스에서 내렸으니, 가방이 온종일 버스 좌석에 놓여 있었을 텐데 아무도 가방을 가져가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또 버스 기사님이 명함을 보고 연락을 해준 것도 감사했다. 감사한 마음이 흘러넘쳐 나는 기사님께 한라봉 한 상자를 보내드렸다.

“선배 말이 맞았어요! 가방이 돌아왔어요! 가방도 돌아오고 상도 받았으니 기쁜 마음으로 내일 항암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선배 오늘 너무 감사했어요.”

항암 전날 대부분의 환우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하루 동안 급격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 나는 그날 너무 피곤해 ‘꿀잠’을 잤다. 버스기사님은 모를 것이다. 자신의 행위가 어떤 나비효과를 발휘했는지. 그날 나는 훈훈한 마음과 함께 친절과 배려, 정직의 미덕을 배웠다. 미국의 비영리 단체 ‘친절재단’에서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작위로 친절을 베푸는 ‘친절의 날’ 캠페인을 열어 친절의 놀라운 효과에 대해 강조하는데, 나 역시도 친절의 놀라운 효과를 경험한 셈이다.

무시무시한 약물이 투여됐다


푹 자고 일어나 기분이 좋으니 두려움, 불안감이 줄어들었다. 첫 항암인 만큼 친정어머니와 남편, 나는 일찍 병원으로 향했다. 호르몬 양성, 허투(her2) 음성, 림프절 전이가 있는 유방암 3기 환자였던 나는 ‘빨간약’이라고 부르는 항암제 아드리아마이신(Adriamycin, 성분명은 독소루비신)과 사이톡산(Cytoxan, 성분명은 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을 3주 간격으로 4회 맞은 뒤, 도세탁셀이라는 항암제를 3주 간격으로 4회 맞기로 했다. 에이시(AC)는 항암 주사치료실에서 1~2시간, 도세탁셀은 낮병동에 입원해 5~6시간 손이나 팔의 혈관에 주사를 꽂아 맞는다고 했다.

항암제를 맞기 1시간 전에 항구토제 알약을 처방받아 먹었다. 환우 카페에 보면 이 약을 먹고도 오심이 심해 붙이는 구토방지제 패치를 처방받아 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종양내과 주치의에게 패치에 대해 물으니 “중복해서 붙일 필요 없다. 처방해준 약이 더 좋은 약이다. 걱정하지 말고 약 먹고 항암 잘하고 열흘 뒤 혈액검사하러 오라”고 말했다.

항암제를 맞기 전 항암 및 영양 교육도 받았다. 교육 담당자는 “항암제는 혈관주사로 맞는데 조금만 손을 잘못 움직여도 피부가 괴사될 수 있다. 만약 항암제를 맞고 이상한 낌새가 있다면 바로 간호사에게 이야기해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항암 할 때는 백혈구, 혈소판, 적혈구가 파괴되기 때문에 감염병에 걸리면 위험해질 수 있어 될 수 있는 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라고 당부했다. 치과 치료도 하지 말라고 했고, 회 종류 등 날음식도 먹지 말라고 했다.

항암제는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도 공격하기 때문에 신장, 간, 심장, 폐, 방광 등 다른 장기에 독성을 발생시킬 수 있어, 항암 한 날은 물을 1.5리터 이상 마셔 독소 배출을 원활히 해줘야 한다고 했다. 또 항암을 하면 오심, 구토가 발생하고 입맛이 변할 수 있는데, 그래도 5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항암 치료를 이겨낼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몸무게가 줄지도 늘지도 않는 현 상태를 유지하면 좋다고 했다.

항암제 에이시의 부작용에는 심장 독성도 있었다. 이 항암제는 암세포뿐만 아니라 심장 근육에도 작용해 심근 세포를 사멸시키는 ‘심장 독성’이 있어 항암 치료 중 부정맥, 빈맥, 흉통, 호흡곤란, 피로 과다 등의 증상이 생기면 병원에 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 외 탈모, 구내염, 생리 중단, 변비, 소화불량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했고, 38도 이상의 고열이 나면 해열제로 열을 내리려 하지 말고 바로 병원으로 와야 한다고 했다.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부작용들이었고, 갑자기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교육을 받고 항암 주사실에 들어서니 적막했다. 등받이를 뒤로 눕혀 잠잘 수 있는 안락의자가 치료실의 세 벽면을 따라 놓여 있었다. 힘이 없어 보이는 환자들이 축 처져서 주사를 맞고 있었다. 간호사가 정해준 의자에 나도 앉았다.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았고, 맞은편에는 내 또래로 보이는 한 젊은 여자가 주사를 맞고 있었다. 우리 둘은 서로 인사를 나눴고, 어머니들끼리는 바로 친해졌다. 동병상련이라고, 암 환우 및 암 환우 가족은 어느 공간에서도 급격하게 친밀해지는 경향이 있다.

능숙한 손놀림의 간호사가 항암제를 준비해 내 왼쪽 팔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나는 왼쪽 가슴에 암이 있는데, 항암제를 맞은 뒤에는 왼쪽 팔로는 채혈 및 혈압 측정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나중에 고생해야 할 오른쪽 팔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서 왼쪽 팔 혈관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각종 검사를 받느라 수십번 혈관에 주삿바늘을 꽂은 경험 때문에, 독한 항암제 주사를 또 꽂는다고 생각하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간호사는 한번에 아프지 않게 주사를 놔줬다. 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항암제 투입 전 혈관주사로 항구토제를 한번 더 맞고, 염증 반응을 줄여주는 스테로이드제도 주입됐다. 스테로이드제를 주입하면서 간호사가 “항문까지 찌릿찌릿한 느낌이 올 수 있어요”라고 말했는데 약물이 들어가자 정말로 항문이 고춧가루를 뿌린 듯 따끔따끔했다. 드디어 그 악명 높은 ‘빨간약’ 아드리아마이신이 주입됐다. 이 약은 빨간색인데, 마치 붉은 피가 주입되는 것처럼 혈관을 따라 들어갔다.

‘하필 약 색깔이 빨간색이람. 부담스럽게.’ 아드리아마이신은 특유의 약 냄새가 있었다. 코끝까지 전달되는 화학약품 냄새다. 어떤 환우는 그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환우 카페에선 “얼음을 물고 있어라”, “무가당사탕을 준비해 빨고 있으면 낫다” 등의 조언을 해줬다.

친정어머니가 맞은편 환우 어머니에게 얼음을 빌려 내 입에 물려주었다. 잠도 오지 않아 회사 동기가 보내준 ‘감사하고 감탄하라’라는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주사를 맞았다. ‘설레지 않으면 유죄, 두근대면 무죄’라는 구호를 올해의 구호로 삼기로 했다는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어제 겪었던 일들을 회상하며 다시 한번 감탄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1시간20여분에 걸쳐 항암제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약 기운이 돌기 시작하더니, 머릿속에 무언가가 빙빙 돌기 시작했다. 속이 울렁거렸고 마치 멀미를 하는 것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내 몸을 스스로 가누기 힘들었다. 술을 좋아하는 ‘지독한 취재원’ 때문에 와인을 마시고 맥주, 소주, 막걸리까지 섞어 마신 뒤 다음날 오바이트를 하며 죽다 살아난 적이 있다. 딱 그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몸을 흔들흔들하면서 친정어머니 손을 붙잡았다.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남편에게 발을 주물러달라고 했고, 딸에게는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눈물이 나오려는데 이를 꽉 물고 참았다.

띵동띵동. 온 집안 식구가 내게 매달려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김 권사님이었다. 김 권사님은 5년 전 대장암 3기 진단을 받고 잘 극복해온 분이다. 수술과 항암을 해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 누구보다 그 고통을 아는 분이었다. “민지 엄마 항암 하고 왔지요? 민지 엄마 위해 기도해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정말 처음 겪어보는 그 알 수 없는 고통에 나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할머니~ 와서 제발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안방에 들어가 김 권사님은 내 손을 꼭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해주셨다.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내 울음보가 터졌다.

‘흐흐흐흐흑… 흐흐흐흐흐흐흐흑….’

“울어. 민지 엄마 울고 싶으면 그냥 울어. 참지 말고 울어. 내가 다 알지. 얼마나 힘든지.”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김 권사님과 나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소리를 내어 엉엉 울었다. 20여분이 지났을까. 실컷 울고 나니 신기하게도 가슴이 시원해졌다.

울고 난 뒤 나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두 아이를 보며, 친정어머니를 보며, 남편을 보며 억지로 숟가락으로 밥을 떠 입에 밀어 넣고 약을 삼켰다. 또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먹은 것을 소화시키려고 휘청거리며 일어서서 거실을 조금이라도 돌았다. 물을 많이 마시라고 했으므로 1.5리터 물도 억지로 마셨다. 배가 불룩해졌다.

황토찜질팩을 따뜻하게 데워 배에 올려놓고 누웠다. 식은땀을 뻘뻘 흘렸고,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수면 음악을 틀어놓고 잠을 청했지만, 계속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항암제, 정말 지독한 놈이었다.



▶ 2020년 연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8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암 치료를 받고 있거나 완치 판정을 받은 ‘암 유병자’가 2018년 기준 20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 다수가 자신 또는 가족이 암 환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2019년 말 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한겨레> 사회정책부 양선아 기자(anmadang96@kakao.com)가 체험기를 격주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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