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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46] 영웅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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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nie Tyler ‘Holding out for a Hero’(1984)

조선일보

Bonnie Tyler, ‘Holding out for a Hero’(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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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서사는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사랑받는 내러티브이다. 보통의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는(사실은 해결할 것으로 기대되는) 영웅의 출현은 ‘열광적인 패닉'의 대상이다. 하지만 동시에 고금의 역사에서 이러한 기대를 모은 영웅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그 기대를 배신했는지는 누누이 열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에서 문화에 이르는 사회 전 영역에서 영웅은 오늘도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진정한 영웅들은 ‘장엄한 패배’의 주인공들이거나 그 과정에서 목숨을 희생함으로써 추후에 일어날 수도 있는 배신의 가능성을 차단한 인물들이다.

2001년 1월 26일 저녁 일곱 시경 도쿄의 신오쿠보 역에서 취객이 선로에 떨어졌다. 당시 일본 유학생이던 부산 출신의 청년 이수현과 현장에 있던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가 취객을 구출하기 위해 선로에 뛰어내렸지만 너무 빨리 열차가 들어오는 바람에 모두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두 사람은 취객도 구하지 못했고 자신들도 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쉽게 이 사건을 잊은 우리와는 달리 이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많은 후속 사건들이 일본에서 이루어졌다.

19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높던 보니 타일러는 ‘영웅을 기다리며’ 이렇게 운을 뗀다. ‘그토록 선한 이들은 어디로 가버렸고 모든 신들은 어디에 있나?’

많은 보통 사람처럼 그 역시 자신을 번쩍 들어 올려줄 수퍼맨을 필요로 한다. 그는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자신의 영웅을 기다리며 참고 견디겠다고 한다.

미국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사오십 년 전의 영웅은 주로 건국의 아버지였지만 20세기 후반으로 오면서 마틴 루서 킹 목사로 이동했다가 21세기 이후에는 자신의 부모 혹은 9·11 테러 당시 희생한 343명의 뉴욕시 소방대원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영웅도 이제 점점 시민화하고 있는 것일까?

[강헌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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