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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지평선] 조카뻘 장교, 삼촌뻘 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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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육군 50사단 장병들이 21일 경북 안동시 산악지대에서 설한지 극복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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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위로 갓 진급해 새로 부임한 장교는 부대 선임하사와 함께 사무실을 썼다. 둘의 관계는 늘 아슬아슬하고 불편했다. 곧 지천명(知天命)이 될 선임하사가 삼촌뻘이니 20대 중·후반의 중위는 하대를 하기도, 그렇다고 하급자에게 존대를 하기도 곤란했다. 그래서 장교는 늘 “저기, 선임하사요~”라고 ‘이상하게’ 불렀고, 둘은 평어와 존대어를 섞어 대화를 나눴다. 군 복무 시절 보았던 장교와 부사관의 불편하고 어색한 관계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장교ᆞ부사관 갈등은 군의 해묵은 문제다. 군에서 계급과 연령, 군 경력 사이의 간극이 메워지지 않고 방치되면서 감정이 켜켜이 쌓인 것이다. 나이 어린 장교가 계급을 앞세워 부사관의 연륜과 경험을 무시한 채 반말을 하거나, 군 생활을 오래 한 터줏대감 부사관이 장교 지시를 무시하거나 경례도 하지 않는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부 육군 주임원사들이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며 참모총장을 국가인권위에 제소한 것은 충격이다.

□문제 된 남 총장 발언은 “장교가 부사관에게 존칭 쓰는 문화를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육군은 남 총장이 장교와 부사관의 역할과 책임, 상호 존중의 자세를 강조하는 맥락 속에서 나온 것으로, 취지가 왜곡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부사관 중에서 군 경험이 가장 많은 주임원사들이 특정 발언만 콕 찍어 총장을 제소한 근본 이유로는 부족하다.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부사관의 한(恨)’을 거론했다.

□장기복무자로 선발되는 부사관은 전체의 40% 정도다. 나머지는 최대 7년을 근무하고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급여 수준은 일반공무원보다 훨씬 낮다. 권한은 크지 않은데 부대의 온갖 궂은 일은 도맡아 처리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 열악한 처우에 장교들의 갑질까지 겹쳐 있는 상황에서 남 총장이 부사관들이 가장 민감해 하는 부분을 건드렸다는 게 전 전 사령관의 생각이다. 부사관 처우 개선과 부사관을 군 간부로서 존중하려는 장교들의 태도 변화가 시급하다. 단, 장교 성추행 등 잇따른 군내 범죄 증가가 말해주듯 먼저 부사관들이 스스로 기강을 다잡아야 한다.

황상진 논설실장 apri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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