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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5 (수)

가상 인플루언서, 현실 세계 휘어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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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 팔로어 수백만명

음반내고 명품 광고 촬영까지

사람과 협업, 100억원대 연수익

대기업도 앞다퉈 개발·출시

조선일보

한국에서 탄생한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오른쪽)와 영국의 ‘슈두’가 협업해 2인 패션 화보를 촬영, 지난 25일 공개했다. 로지는 강렬한 아프리카 계열 의상, 슈두는 개량 한복을 입었다. 서로의 문화적 특징을 교환한 것이다.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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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사람이 아닌 거예요?”

지난달 30일, 한 여성이 자신의 정체를 공개하자 소셜미디어는 요동쳤다. 이름 로지(Rozy), 나이 22세, 키 171㎝, 몸무게 52㎏. 실물은 없다. 가상(假象) 인물이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 사진 등을 올리며 계정 개설 3개월 만에 팔로어 1만여 명을 모으는 인기를 끌었지만, 누구도 그가 디지털 창조물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커밍아웃’ 이후 로지는 패션잡지 화보 촬영 등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국내 제작사 싸이더스 측은 “자동차·화장품 업체에서도 홍보 관련 문의가 오고 있다”고 했다. 이른바 ‘가상 인플루언서’가 한국에서 본격화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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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어 290만명을 보유한 미국의 가상 인플루언서 릴 미켈라(오른쪽)와 함께 협업해 음반을 낸 '진짜 사람' 가수 테야나 테일러.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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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형 ‘사이버 가수 아담’

이들은 디지털 원주민인 Z세대를 겨냥해 소셜미디어를 거점으로 사진·영상을 게시하며 영향력을 늘려가는 중이다. 소속사를 지닌 사실상의 연예인으로, 경우에 따라 가상 인플루언서끼리 협업하기도 한다. 지난 25일 로지가 영국 ‘슈두’(Shudu)와 2인 화보 사진을 공개한 것이 대표적 예다. 슈두는 2017년 탄생한 세계 최초의 가상 모델로, 가상 인플루언서 간 국내 첫 컬래버레이션 사례인 셈이다. 1997년 한국에 출현한 사이버 가수 아담과 개념은 동일하다.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사실적 인간형을 만들고, 현실 세계에서 음반을 내거나 합성 기술로 CF를 촬영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다. “난 실재하진 않지만 이렇게 존재한다고. 봐, 너희가 보는 그대로!” 로지의 선언처럼 소셜미디어라는 새 터전 위에서 파급력은 비교 불가로 강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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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도 제약도 없이… 연수익 130억원?

현재 가장 유명한 가상 인플루언서는 ‘릴 미켈라’(Lil Miquela)다. 브라질계 19세 미국 가수로 설정된 이 여성은 팔로어 290만명을 보유한 명실상부 디지털 강자. 정치적 발언도 꺼리지 않아, 2018년 시사주간지 타임의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5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세계적 가수 방탄소년단, 트럼프 전(前) 대통령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지난해 미국 가수 테야나 테일러(31)와 함께 녹음한 노래 ‘Machine’을 발표하는 등 ‘진짜 사람’과도 합종연횡한다. 본인의 의류 브랜드 ‘Club 404’도 출범했다. 영국 온라인 쇼핑회사 온바이에 따르면, 릴 미켈라는 광고성 게시물 한 건당 약 8500달러(약 940만원)를 받아 지난해 1170만달러(약 130억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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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패스트푸드업체 KFC가 내놓은 가상 인플루언서 커넬 샌더스. 푸근한 할아버지가 근육질로 재탄생했다.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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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관리비도 안 들고, 사생활 잡음도 없고, 여권조차 불필요하다. 이 같은 통제 가능성은 새 수익 모델로 각광받는 가장 큰 이유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내년 전 세계 기업은 이들을 활용한 마케팅에 약 150억달러(약 16조원)를 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사태도 한몫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대유행병은 디지털과 물리적 차원의 경계를 더 흐리게 했다”며 “향후 10 년 두 세계가 만나 유례없는 초현실을 이룰 것”이라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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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가상 인플루언서 이마가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이우환 작가의 그림을 둘러보고 있다. 그는 영화·미술에 관심이 깊은 여성으로 정체성을 설정했다.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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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도 뛰어들었다

LG전자는 지난 11일 열린 IT 박람회 ‘CES’ 온라인 콘퍼런스에서 가상 인간 ‘김래아’를 소개하며 아예 발표까지 맡겼다. 미래에서 온 아이라는 뜻의 이 여성은 서울 사는 23세 음악가라는 정체성을 부여받아, 지난해부터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올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삼성도 조만간 가상 인간 ‘네온’을 업그레이드해 공개할 예정이다. 가구 기업 이케아는 지난해 일본 도쿄 하라주쿠 매장에서 가상 인플루언서 ‘이마’(Imma)가 3일간 먹고 자며 생활하는 콘셉트의 광고 전략을 추진했다. 미국 패스트푸드회사 KFC는 할아버지 모델(창업주 커넬 샌더스)을 모태로 한 ‘근육질’ 커넬 샌더스를 가상 모델로 내놨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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