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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피플&데이터]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치, 또다시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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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얀마 민주주의 영웅에서 최고 지도자로

    로힝야족 탄압 이슈로 국제적 비난 대상 되기도

    지난해 총선 압승으로 군부에 ‘부정 선거’ 의혹 제기 빌미

    NYT “군부와의 정치적 균형 형성하는 데 실패”

    헤럴드경제

    지난 2019년 12월 미얀마군의 이슬람계 로힝야족 박해 혐의와 관련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피소된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 고문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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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 고문이 지난 1일 일어난 군부 쿠데타 이후 감금되면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지난 75년을 살아 온 수치 고문의 인생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군부의 오랜 탄압 속에서도 민주화의 불씨를 지킨 ‘민주주의의 영웅’었으며, 최근 로힝야족 탄압으로 국제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그는 이제 군부의 쿠데타로 53년만에 되찾은 민주 정권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미얀마 독립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난 수치 고문은 미얀마 독립 후 1년 채 안돼 아버지가 암살 당한 후 인도와 영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1988년 43세였던 그는 병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미얀마로 돌아왔다가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당시 미얀마는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가 실권을 잡고 있었다. 수치 고문이 미얀마로 돌아왔던 1988년, 미얀마에서는 8월 8일에 시작된 이른바 ‘8888항쟁’이 벌어졌고, 그는 시민과 학생들이 군부의 총칼에 죽어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이후 독립 영웅의 딸인 수치 고문은 민주화를 촉구하는 목소리에 앞장서며 단숨에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당시 수치 고문은 한 연설에서 “우리의 목적은 국민 전체가 다당제 민주주의 정부 체제에 대한 절실한 열망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해 수치 고문은 야권을 아우르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창당했다.

    하지만 군정은 1989년 수치 고문을 가택 연금했고, 이후 수치 고문은 15년을 연금 상태로 보내게 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수치 고문은 군부의 압박에도 후퇴하지 않았다”면서 “15년간의 가택 연급은 그를 민주주의의 세계적 상징으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1990년 총선에서 수치 고문이 이끈 NLD의 압승에도 군부는 권력 이양을 거부했다. 그리고 1995년 가택 연급 해제 이후 구금과 석방을 반복하던 수치 고문은 2010년 전격 석방됐다. 그는 가택연금 기간 중인 1991년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키도 했다.

    이후 2012년 3월 미얀마 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제도권 정치에 첫 발을 내딛은 수치 여사는 2015년 11월 총선에서 NLD당을 압승으로 이끌었다. 군부가 만든 헌법 하에서 대통령직 출마가 불가능해지자 그는 헌법에 없는 국가 고문이라는 자리를 만들며 사실상 미얀마의 지도자 역할을 해왔다.

    2017년 이슬람계 로힝야족에 대한 차별과 박해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수치 고문의 명성에도 흠집이 났다. 당시 수치 고문은 로힝야족에 대한 군부의 무자비한 탄압을 묵인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 그는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피소된 이후 청문회에서 군부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다. 필 로버스슨 휴먼 라이츠 워치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수치 고문은 군부의 잔혹성을 은폐함으로써 자신의 도덕성 검증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국제적 비난에도 수치 고문은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자신이 이끄는 NLD당을 또 한번 압승으로 이끌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선거 압승은 곧 NLD당 집권 이후 수치 고문과 불편한 동거를 이어왔던 군부의 ‘부정 선거’ 의혹 제기로 이어졌고, 이를 빌미로 군부는 결국 전격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수치 고문이 이끈 민주 정권이 군부 쿠데타로 결국 막을 내릴 기로에 놓인 가운데, 일각에서는 수치 고문이 국민도, 민주정권도 결국 수호하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쿠데타로) 권력을 나눠가진 군부와 정치적 균형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면서 “75세 수치는 국민을 보호하지도, 군부를 달래지도 못했다”고 전했다.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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