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비리 수사 막는 싸움에서 전패하니 사법부로 표적 돌려 국면전환
일련의 판결은 허위와 날조로 지어진 민주당 지지자들의 상상계 파괴
한 명 희생으로 사법부 순결해지고, 민주당 완전해지고, 지지자 행복해져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국회에서 신석기시대 희생양 제의를 집전하는 것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 기소당한 직후 최강욱 의원은 보복을 다짐했다. 하지만 법원은 위조 인턴증명으로 입시업무를 방해한 사실을 인정해 그에게 징역 8월에 집유 2년을 선고했다. 모쪼록 그에게 세상이 만만하지 않음을 “확실히 느끼는” 귀한 기회가 됐기를 바란다.
새로운 적을 발명하라
법정에서 그는 점령군 행세를 했다. 재판 도중 약속 있다며 일어나는 피고인은 처음 봤다. 이분이 어디 심판받을 분인가. 대통령 우편에 앉아 있다가 저리로서 검찰과 법원을 심판하러 오신 분이아닌가. “법원에서 검찰이 일방적으로 유포한 용어와 사실관계에 현혹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같은 당의 황희석 최고위원은 “공소권 남용에 관한 주장에서 피의자의 조사받을 권리를 하찮게” 여겼다고 썼다. 하지만 검찰은 그의 “조사받을 권리”를 충분히 보장해 주었다. 그 권리를 “하찮게” 여긴 것은 최강욱 본인. 검찰 소환을 그는 세 차례나 거부했다. 상습적 자기 인권 침해범이다.
예상했던 대로 이들은 다음 개혁에 착수했다. 이른바 사법개혁이다. 이들의 개혁에는 늘 ‘적’이 필요하다. 그 적은 신속히 발명되었다. “법복을 입은 귀족들이 따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검사들을 대신해 이제 법관들이 새로 개혁에 저항하는 적폐세력으로 재(再)정의된 것이다.
개혁의 방법은 법관 탄핵. 열린민주당에서 총대를 멨다. “이제 국민이 선출한 권력인 국회가 사법 농단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사법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열린민주당은 민주주의의 기초가 무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법관 탄핵에 나설 것이며, 민주당이 함께 나서 줄 것을 촉구한다.”
반복되는 레퍼토리
열린민주당 강민정, 정의당 류호정,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왼쪽부터)이 지난 1일 국회에서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탄핵안은 오는 4일 표결될 예정이다. 오종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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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느닷없이 탄핵 카드를 꺼냈을까? 직접적 계기는 최강욱 판결이지만, 진짜 배경은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정권의 누적된 불만이다. 법원에서 자신들의 위법에 줄줄이 유죄를 선고하고, 자신들의 초법에 번번이 제동을 걸자 사법부에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싶어진 것이다.
“스스로 개혁할 기회를 부여받았던 사법부는 더이상 개혁 주체가 될 수 없다.” 익숙한 레퍼토리의 반복. 검찰에 했던 말을 ‘Ctrl C’ 해서 사법부에 ‘Ctrl V’ 한다. 자기들이 세운 검찰총장을 공격하더니 이번엔 자기들이 세운 대법원장을 비난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개혁을 배신했다.”(이탄희 의원)
모든 게 검찰·감사원·법원·언론 탓이란다. 아무리 배터리를 교체해도 소리가 안 난다면 라디오가 고장 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배터리 개혁을 하겠단다. 초현실주의적 풍경이다. 아스팔트가 벌떡 일어나 제 뺨을 때렸다고 도로 행정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사를 부리는 주정뱅이를 보는 듯하다.
180석을 가졌으니 탄핵 의결은 이루어질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또 한 차례 겪는 셈이다. 이 정권 들어와 ‘헌정사상 초유’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 정권을 담당한 이들의 몸에 기입된 운동권 습속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 시스템과 자꾸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목적을 잃어버린 탄핵
이미 2018년 11월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국회에 사법농단 판사들의 탄핵소추를 촉구한 바 있다. 그런데 그동안 내내 손 놓고 있던 민주당 의원들이 이제 와서 외려 판사들을 싸잡아 적폐로 몬다. 심지어 사법농단 세력의 의원 회유 공작을 도왔던 이수진 의원까지 목청 높여 ‘법관 탄핵’을 외친다.
무엇을 위한 탄핵일까? 탄핵 심판의 목적은 위법한 행위를 했으나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을 해임하여 직무를 정지시키는 데에 있다. 하지만 탄핵의 대상이 된 이는 어차피 임기만료로 곧 옷을 벗을 예정. 그러니 심판의 실익이 없다. 결국 한 사람의 변호사 취업을 막겠다고 저 난리를 치는 셈이다.
실익이 없는 탄핵도 가능하다며 트럼프 예를 든다. 하지만 트럼프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자 사망자가 발생한 의사당 폭력사태의 선동자다. 그래서 그게 ‘상징적’ 의미라도 갖는 것이다. 반면 이번 탄핵의 대상은 이름도 생소한 일개 판사. 게다가 그는 문구만 주물렀을 뿐 유무죄 판단엔 개입하지 않았다.
그는 법정에서는 무죄를, 법원에서는 가벼운 징계를 받았을 뿐이다. 그런데 굳이 탄핵까지 해야 하나? 물론 탄핵은 행정심판이라서 유무죄와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해서 그 일을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탄핵소추를 당했다. 그런데 그 소추를 꼭 했어야 했던가?
출구전략을 위한 희생양 제의
사법농단의 본령은 징용공 소송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등 몇몇 법관들이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켜 청구권 소멸시효를 완성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사실상의 판결에 준한 개입을 한 것이므로,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의미의 ‘농단’이다. 그런데 이번 탄핵의 대상은 그 일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느닷없이 간택을 받아 사법농단의 ‘상징’이 되었다. 말이 ‘위헌’이지, 그 중대성에는 명예훼손 판결의 문구에 손대는 것에서 전두환의 군사 쿠데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이가 존재한다. 주문도 아니고 방론에서 언급된 ‘위헌’이라는 말에서 바로 탄핵으로 비약할 일이 아니다.
고작 명예훼손 소송을 사법농단의 대표 사례로 내세우려니 명분이 부족했나 보다. 이낙연 대표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요구를 위축시키기 위해” 한 일이라며 거기에 새로 정치적 죄목을 첨가한다. 하지만 임성근 부장판사가 그걸로 세월호 진상규명을 방해하려고 했다는 설정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2년이나 늦게, 그것도 딱 한 사람을 찍어 탄핵을 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권력비리 수사를 막는 싸움에서 전패를 하니, 표적을 슬쩍 사법부로 돌려 국면의 전환을 꾀하려는 것이다. 180석은 싸움의 승리를 산술적으로 보장한다. 임 부장판사는 그 출구전략의 희생양으로 선택된 것이다.
사법농단은 허울이고 그들의 속내는 따로 있다. 그들도 이번 탄핵이 이른바 ‘사법개혁’의 일환임은 부정하지 않는다. 탄핵 주역의 말을 들어보자. “예전에는 엉뚱한 판결이라고 느껴도 40만 명이 서명하는 일은 없었다. 사법 불신이 언제부터 누적되기 시작한 건지 짚어봤으면 좋겠다.”(이탄희 의원)
디지털시대의 인민재판
저 ‘40만’은 정경심 판사들의 탄핵 청원에 서명한 이들의 수다. 판결에 문제가 있다면 사실과 법리를 따져 비판할 일. 그게 불가능하니 그저 성난 ‘대깨문’의 머릿수나 인용하는 것이다. 판사 출신 의원이 디지털 인민재판에서 ‘정의’를 구한다. 이 모든 부조리한 사태가 실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동안 법원에서 내린 일련의 판결은 허위와 날조로 지어진 민주당 지지자들의 상상계를 가차 없이 파괴했다. 40만의 성난 목소리는 그 허구의 세계를 철거당한 이들의 좌절을 반영한다. 그들을 계속 잡아두려면 그들의 허탈과 분노를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 ‘무언가’가 바로 법관 탄핵이다.
고작 한 사람의 취업을 막을 뿐이나 그래도 이 목적 잃은 탄핵의 ‘정치적’ 효용은 크다. 이 보잘것없는 승리로 지지자들의 머릿속에 자신들이 이 썩은 나라의 구원자라는 허위의식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년간 묵혀뒀던 탄핵 깡통이 보존기간 만료 직전에 다시 먹고 싶어진 것이다.
우리는 선출하지 않았다
사법농단의 모든 책임을 한 사람이 짊어졌다. 검찰개혁 한답시고 민주당이 범한 모든 과오의 책임도 그가 대속(代贖)할 것이다. 단 한 명의 희생으로 사법부는 순결해지고, 민주당은 결백해지고, 지지자들은 행복해진다.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국회에서 신석기시대 희생양 제의를 집전하는 것이다.
그놈의 ‘선출된 권력’ 타령은 여전하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를 국회가 이제는 정말 제대로 견제를 해야 되겠다.”(이수진 의원) 법정에서 제게 불리한 증언을 한 판사를 탄핵하겠다던 그분의 말씀이다. 이참에 그 ‘선출된 권력’ 타령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마디 해야 쓰겄다.
솔직히 당신들, 좋아서 뽑아준 거 아니다.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나라 선거판은 어차피 대변(최악)과 소변(차악) 중 하나를 고르도록 강요된 게임. 소변을 기대하고 골랐다가 매번 상자 안에서 대변을 확인하게 되는 그런 게임이다. ‘선출된’ 대변들이 이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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