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의혹 부인 해명 하루만에 거짓으로 드러나
안철수 "후배의 목을 권력에 뇌물로 바친 것"
김명수 대법원장이 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대법원장을 예방했다. 2021.02.02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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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4일 자신이 지난해 5월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하며 탄핵 관련 언급을 한 적이 없다고 한 전날 해명이 사실과 다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날 오전 임 부장판사가 공개한 녹취파일 속에 지난해 김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를 면담하며 정치권의 '사법농단' 연루 판사 탄핵 움직임을 의식해 사표 수리를 거부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자, 뒤늦게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야권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김 대법원장이 여당의 탄핵 추진을 염두에 두고 임 법관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후배의 목을 권력에 뇌물로 바친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하는 등 김 대법원장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언론에 공개된 녹음자료를 토대로 기억을 되짚어 보니 지난해 5월경에 있었던 임성근 부장판사와의 면담 과정에서 '정기인사 시점이 아닌 중도에 사직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 하에 녹음자료에서와 같은 내용을 말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아울러, 약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했던 기존 답변에서 이와 다르게 답변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전날 언론보도를 통해 임 부장판사가 지난해 5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표를 내고 김 대법원을 면담했으나 김 대법원장이 사표를 수리하면 자신이 국회의 탄핵 논의를 막는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며 사표를 반려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김 대법원장은 전날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은 없다"며 전면 부인했지만 이날 임 부장판사가 녹취파일을 공개하면서 거짓으로 확인된 것.
임 부장판사 측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대법원의 해명에 대한 추가 입장'을 통해 "어제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한 대법원장의 대국민, 대국회 답변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설명드린 바 있다"며 "하지만 진실이 어떤 것인가에 관해 국민들이 여전히 궁금해 하고 있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어제 대법원의 입장표명에 대해 저희 측의 해명이 있었음에도 언론에서는 '진실공방' 차원에서 사실이 무엇인지를 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며 "더구나 이미 일부 언론에서 녹취파일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침묵을 지키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보더라도 도리가 아니고, 사법부의 미래 등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서라도 녹취파일을 공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돼 부득이 이를 공개하는 것"이라고 녹취파일 공개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임 부장판사 측이 공개한 4개의 녹취파일에는 임 부장판사가 지난해 사표를 제출할 당시 김 대법원장과 면담하며 나눈 대화 내용이 담겨있다.
녹취파일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22일 임 부장판사와의 면담에서 "사표 수리, 제출 그런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한다"며 "지금 (여당에서)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나"고 했다.
또 김 대법원장은 "탄핵이라는 제도, 나도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탄핵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도 "일단은 정치적인 상황은 다른 문제니까 탄핵이라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할 수 없게 돼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이 정치권의 사법농단 연루 법관에 대한 탄핵 논의를 의식해 사표 수리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입장에 대해 임 부장판사에게 양해를 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회에서는 이날 오후 2시33분부터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대한 표결이 시작됐다.
이날 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헌법재판소 심리를 거쳐 최종 결론이 나겠지만, 임 부장판사의 탄핵 여부와 별개로 사법권 독립의 최정점에 서 있는 김 대법원장의 '정치권 눈치보기'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남에 따른 파장은 점차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석진 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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