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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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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북한군 개입설’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가짜뉴스 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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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진상조사위, 2020년 하반기 조사활동보고서 발표

현장 조사·사례 종합 분석 “노출되지 않고 체류 불가능”

아시아경제

전남 한 해안에서 광주광역시 증심사 위치도. 사진=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공


[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윤자민 기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이 광주로 침투해 개입했다는 설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가짜뉴스’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17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2020년 하반기 조사활동보고서’에 따르면 위원회 조사 결과 일부 탈북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북한특수군 침투가 상당 부분 사실이 아니거나 역사적·사실적 타당성이 없는 무리한 주장으로 파악됐다.


5·18조사위는 북한특수군의 육·해상 및 땅굴을 통한 침투 및 복귀 경로 주장은 과거 북한 공작원 또는 무장공비 침투 사례와 당시 우리 군의 경계태세 등을 종합해 분석했을 때 실현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것으로 판단했다.


또 북한특수군이 사용했다는 전술 역시 당시 주변 환경과 유사 사례를 고려했을 때 전술적 타당성이 상당 부분 결여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자폭용으로 시신을 분쇄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폭약 관련 내용은 폭발물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일반인 수준의 서술로 그 신빙성이 극히 의심되는 주장으로 봤다.


그동안 탈북자 A씨는 지난 2006년께부터 기자회견과 언론인터뷰 등을 통해 본인이 북한특수군으로 직접 5·18 당시 광주에 침투했는데, 약 300~600명의 병력이 배나 잠수함을 이용해 서해안·동해안으로, 또는 땅굴을 통해서 남침한 후 이후 동부전선을 거쳐 북한으로 귀환했다고 여러 차례 주장해 왔다.


또한 2017년 저서에 5·18 당시 북한 특수부대가 광주 일원에 침투해 계엄군과 교전을 벌이고, 북한으로 귀환했다는 내용을 주로 하는 정순성(가명)의 체험담을 기술하기도 했다.


A씨는 자신의 저서에서 ▲5월 19일 16시경, OO에서 50명 이동 ▲5월 19일 21시경, OO에서 배 2척 승선 ▲5월 21일 밤 12시경, 육지로 오르라는 지시에 따라 뭍을 향해 약 100m 헤엄치기 시작 ▲5월 22일 2시경, 50명이 한 줄로 5시간 넘게 행군하여 광주 도착 ▲5월 22일 아침, 증심사 도착·체류하며 식사 및 휴식 후 15시 출발이라고 주장했다.


조사위는 먼저 탈북자 A씨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실지 조사를 진행했다.


먼저 증심사는 ○○해안에서 직선거리로 60㎞ 동쪽, 옛 전남도청에서 5㎞ 동쪽에 위치한다.


이처럼 ○○해안에서 증심사까지 약 60㎞의 거리를 탈북자의 주장처럼 도보로 ‘광주시가지를 우회하여’ 5시간 내 이동하기에는 거리 및 위치상 불가능할 것으로 조사위는 판단했다.


영광해안의 수심 및 흘수 등 환경적 특성 고려 시 탈북자 주장 침투 전술은 적절하지 않다고 봤으며 5시간 이내에 ○○해안부터 광주까지 도보 이동은 무리, 증심사 실사 후 북한특수군 침투·체류는 어려울 것으로 결론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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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심사 전각 배치도. 사진=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공


또한 증심사에 대한 실지 조사결과 현장은 비교적 밀집된 건물 배치로 모든 전각이 한눈에 들어오며 경내 어디서든지 소리가 잘 들릴 수 있는 구조였다.


증심사의 지리적 위치 및 구조적 특성으로 볼 때 북한특수군이 노출되지 않고 체류 및 식사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밖에도 조사위는 5·18 투입 북한군 기념 열사릉(전사자 묘지), 5·18 기념사업, 유공자 대우 등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열사릉은 5·18 당시 남파 후 전사해 복귀 못한 북한군의 묘지가 청진에 소재한다는 주장으로 우리 군 및 북한 자료 등을 확인한 결과 이는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인원들의 묘지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 ‘5·18 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 ‘5·18 프레스’, ‘5·18 기계공장’ 등 북한에서 5·18을 기념한다는 활동을 검증한 결과 이는 모두 다른 의미로 사용한 것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5·18 무사고 정시견인초과 운동’의 ‘5·18’은 1979년 개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18차 전원회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미국 정부 문서 분석을 통해 당시 북한군의 특이동향 또는 침투 사례 여부도 조사했다.


조사대상 미국 정부 문서는 1979~1980년 당시 주한 미 대사관과 미 국무부 간 수·발신된 전문, 군 정보기관 국방정보국(DIA), 그리고 중앙정보국(CIA) 작성 문건 등이다.


이를 검토한 결과 북한의 남침 위협은 있으나 구체적인 도발 징후 또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북한군 침투 사례는 없었다는 것이 미국 정부 기관들의 일관된 입장임을 확인했다.


조사위는 현재까지는 기록 검증 위주로 조사가 진행됐지만 향후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탈북자 면담 조사를 중점적으로 추진해 조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더불어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과제인 국내 일부 인사들에 의한 북한군 개입설 주장 및 확산에 대한 조사를 이어서 할 계획이다.



호남취재본부 윤자민 기자 yjm30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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