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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日은 과거 직시하라"던 文, 왜 1년만에 유화책 들고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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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이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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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1.03.01. sccho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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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직시할 수 있어야 상처를 극복할 수 있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일본 또한 그런 자세를 가져주길 바랍니다."(2020년 3.1절 기념사)

"한국의 성장은 일본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일본의 성장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2021년 3.1절 기념사)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의 온도는 1년만에 이같이 180도 변화했다. 과거를 직시하는 자세를 가지라며 준엄하게 일본을 꾸짖었던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기념사를 통해 언제든 양국관계의 발전을 논하자고 밝혔다.


2020년, 한일관계 보다 투쟁·탄압 역사

지난해 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의 경우 한일관계가 간략하게만 언급됐다. '과거를 직시하는 자세'를 당부하는 게 내용의 거의 전부일 정도다.

당시 문 대통령은 오히려 항일투쟁 역사를 비중있게 말했다. 3.1운동 및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진행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1919년 한해에만 무려 1542회에 걸친 만세 시위운동으로 전국에서 7600여명이 사망했고 1만6000여명이 부상했으며 4만6000여명이 체포 구금됐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일제의 탄압도 강조했다.

2019년 하반기부터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라 한일관계가 악화된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과 관계가 악화될 때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죽창가'를 거론하며 대일강경 메시지를 냈다. 문 대통령도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1년, 투쟁·탄압 역사 보다 한일관계

그런데 올해 3.1절 기념사에는 항일투쟁 및 일제탄압의 역사가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오히려 3.1운동이 코로나19 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과 일맥상통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힘을 준 것은 한일관계다. 문 대통령은 "가해자는 잊을 수 있어도, 피해자는 잊지 못하는 법"이라고 역사 문제를 거론하면서도 "지난 수십년 간 한일 양국은 일종의 분업구조를 토대로 함께 경쟁력을 높여왔다"고 말했다. '동반자'의 의미를 강조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과거에 발목잡혀 있을 수는 없다. 과거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대로 해결해 나가면서 미래지향적인 발전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라며 "한일 양국의 협력과 미래발전을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예정된 도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협력 역시 약속했다.


'한미일' 중시 바이든 출현에 기조 변화?

1년 새 대통령의 3.1절 메시지가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아베 신조 전 총리 대신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등장한 게 첫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스가 총리는 위안부 협상 및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변화된 입장을 공식적으로 보이지 않고 있다. 한일관계 역시 큰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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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스가 요시히데 일본 신임 총리가 16일(현지시간) 도쿄 중의원 본회의에서 총리로 선출된 뒤 의원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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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이 결정적인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을 강화하려는 바이든 대통령에 정부가 맞춰가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이번 3.1절 기념사에서 "양국 협력은 두 나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동북아의 안정과 공동번영에 도움이 되며, 한미일 3국 협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힘을 줬다. 3.1절 기념사에서 한미일 협력이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통화에서 "한일관계 개선과 한미일 협력이 역내 평화와 번영에 중요하다"고 대화를 나눴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한일관계 악화의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2015년 '위안부 합의' 타결의 주축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으로 외교 정책에 관여해왔다. 그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이혼 상담사(divorce counselor)' 같았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이같은 이유로 외교가에서는 지난해부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할 경우 우리 정부가 한일관계 회복과 관련한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수출규제 이슈 이후 대일 강경책 일변도로 일관해왔지만,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외교 당국자는 "악화된 한일관계가 발등의 불로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한일관계 개선 진행" VS "정신분열적 외교"

문 대통령의 메시지 변화를 미국의 개입 속에 한일관계가 풀리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우선 나온다. 친정부 성향의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JTBC 방송에 출연해 "현재 일본 쪽의 태도가 아주 강경하게 보이지만 하루아침에 어떤 합의가 이루어져서 바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물밑에서는 지금 바이든 정권이 개입해서 한일관계 개선이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립관계를 접고 외교관계로 돌아가자는 출구전략으로 볼 수 있다"며 "스가 정권이 된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기본적인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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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27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주말을 보내기 위해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서 전용기를 타고 있다. ⓒ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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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정부의 대일정책 기조가 지나치게 급작스럽게 바뀌었다는 지적 역시 끊이지 않는다. 한일관계에 별다른 호재도 없는 상황 속에서 "역사를 직시하라"는 꾸짖음이 1년 만에 "대화를 하자"는 유화책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외교정책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은 "일본의 말과 행동은 변한 것이 없는데 문재인 대통령만 변하고 있으니 이해가 안 가는 것"이라며 "최악의 한일관계 속에서 한국의 대일 외교는 비굴해지고 있고, 정부여당은 저자세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의원은 "갈팡질팡 중심을 잡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의 대일외교에 대해 정신분열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라고 밝혔다.

최경민 기자 brown@mt.co.kr, 이사민 기자 24m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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