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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봄, 달곰한 미역맛 [지극히 味적인 시장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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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 흥해장

[경향신문]

살살 부는 바람에 얕은 바다가 살랑거리면 미역에 단맛이 돈다
차가운 바닷물에 자란 미역을 말리기 시작하면 성큼 다가오는 봄…물미역은 시장의 최고 인기스타
마른 미역 불려 끓인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시원한 맛의 미역국에 절로 “아~”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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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포항에서는 겨우내 차가운 바닷물에서 자란 미역을 채취해 씻고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기장과 완도 미역이 유명하지만, 바다가 있으면 미역이 나니 굳이 지역을 구분해서 살 까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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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2월은 따스했다. 재작년 시금치와 포항에만 있는 송학농장의 재래 흑돼지를 취재했었다. 수년 만에 닥친 강추위에 덜덜 떨었던 기억과 사뭇 달랐다. 동백이와 황용식이가 드라마에서 알콩달콩했던 계단이 있는 구룡포를 지나 호미곶으로 해서 한 바퀴 돌았다. 5월의 어떤 날처럼 따스해 성급한 이들은 무릎 정도의 얕은 수심에서 소라를 잡고 있었다. 작은 포구에서는 허리춤까지 오는 바다에서 딴 미역을 씻고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겨울 포항의 맛이 과메기와 대게, 포항초였다면 봄의 시작 2월은 미역이다. 살살 부는 바람에 얕은 바다가 살랑거리면 미역에 단맛이 돈다. 겨우내 차가운 바닷물에서 자란 미역을 말리기 시작하면 성큼 다가오는 봄이 보인다.

김은 빠르면 11월에도 수확한다. 미역은 2월이 돼야 맛난 것이 나온다. 미역은 육상에서 포자를 줄에 부착해 일정 크기로 키운 다음 바다로 옮겨 양식한다. 미역은 크게 북방 미역과 남방 미역으로 나눈다. 북방 미역은 잎줄기가 넓고 억세 미역국으로 좋다. 남방 미역은 줄기가 가늘고 잎이 부드러워 냉국으로 좋다. 이론으로 구분한 것이다. 개인 입맛에 따라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면 남방 미역을, 씹는 맛이 좋으면 북방 미역을 선택하면 된다. 기장과 완도가 미역이 많이 나고 유명하다. 바다가 있으면 미역이 나니 굳이 지역 구분해서 살 까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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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해장의 물미역 파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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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시장은 전국에서 유명한 시장 중에 하나다. 다양한 수산물을 접할 수 있는 수산시장과 농축산물 시장도 같이 있어 규모 또한 명성만큼 크다. 큰 상설시장이 있어도 흥해읍에서는 2와 7이 낀 날에 오일장이 열린다. 흥해장은 1960년대 생긴 상설시장 주변으로 좌판이 깔린다. 여느 장터처럼 먹거리, 쓸거리 구성은 비슷하다. 육지의 나물은 아직이지만, 여전히 포항의 명물인 시금치 못지않은 달곰한 물미역이 시장의 최고 인기 스타였다. 호떡집에 불난다는 속담처럼 물미역 파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렸다. 살짝 데치거나 흐르는 물에 씻어 먹기 좋게 잘라 초장에 찍어 먹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 아니면 초무침 정도. 사실 물미역으로 끓인 미역은 마른미역을 불려 끓인 것과는 다른 맛과 시원함이 있다. 고기보다는 생선 넣고 끓인 미역국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시원함이 있다. 먹어본 사람은 “아~” 하는 맛이다. 예전에 태안군 가의도에 간 적이 있다. 아침에 딴 물미역에 생선 뼈 넣고 끓인 미역국은 ‘인생 미역국’이었다. 이후로 물미역이 나올 때면 가끔 사서 미역국을 끓인다. 생선이나 조개 넣고 미역국을 끓일 때는 참기름을 넣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미역을 참기름에 볶는 것이 표준 레시피처럼 되어 있지만 끓이는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참기름이나 기름에 볶지 않을수록 미역이 품고 있던 시원함을 더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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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다리 두어 개 떨어진 걸 고를 것. 맛까지 덜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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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해장에도 대게나 홍게 혹은 수산물이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적었다. 아마도 죽도시장이 지척에 있는 까닭인 듯했다. 목이 마르면 우물을 찾듯 대게 구경하러 죽도시장으로 향했다. 대게라는 게 크기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난다. 소위 박달대게라 부르는 살이 차고 큰 대게는 한 마리가 10만원이 훌쩍 넘는다. 그에 반해 작은 것은 가격이 확 내려간다. 사실 대게 크기에 따라 맛이 차이 나는지는 모르겠다. 홍게와 대게 맛 차이도 확실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필자는 대게나 홍게를 살 때 크기보다 선도를 보고 고른다. 경매가 끝나고 좌판에 깔릴 때 사면 좋지만 때를 놓치기 십상이다. 선도 다음으로 보는 게 다리 두어 개 떨어진 게다. 박달대게도 일정 무게 이상이면 하나 떨어진 것은 정상품으로 팔리고 두 개가 떨어지면 가격이 확 내려간다. 떨어진 다리로 상품 가치가 떨어졌을 뿐 맛까지 떨어진 것은 아니다. 보기에는 박달대게 한 마리를 먹어야 사진찍기도 좋고 무게 잡기 좋다. 먹을 수 있는 살의 양으로 치자면, 작은 것이나 다리 떨어진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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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도 좋지만 회도 별미라는 장치회와 돔처럼 쫄깃한 맛을 내는 성대회 한 접시가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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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몇 년 전에는 다른 일로 출장을 다녔지만, 몇 년 사이 과메기 때문에 구룡포 출장이 잦았다. 6년 전 처음 맛보고는 출장 갈 때마다 국수 한 그릇 한다. 포항의 이름난 제일국수공장의 면을 사용한다. 처음에 맛봤을 때 고명으로 오른 부추와 시금치나물이 낯설었다. 멸치국수에 부추나 유부 올린 것은 봤어도 시금치는 처음이었다. 포항초라 부르는 시금치 유명 산지라서 그런가 싶었다. 겨울이라서인지 포항초의 달곰한 맛이 멸치육수, 쫄깃한 면발과 제법 잘 어울렸다. 다른 곳처럼 강한 멸치 맛이 나지 않지만 입에 잘 감기는 육수가 마음에 들었기에 1년에 한 번 정도 가는 단골이 되었다. 오랜만에 갔더니 메뉴가 다양해졌다. 국수만 전문으로 하다가 죽과 김밥 메뉴를 추가했다. 포항에는 많은 국숫집이 있다. 생선을 넣고 얼큰하게 끓인 모리국수, 횟밥에서 밥 대신 삶은 국수가 나오는 회국수를 파는 집들이 있어도 내 선택은 항상 이 집이다. 구룡포 할매국수 (054)284-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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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명물 제일국수공장의 면이 슴슴한 멸치육수와 시금치나물 고명을 만나 제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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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출장길에 동행이 있다면 저녁에 소주 한잔은 필수다. 흥해읍의 작은 포구와 시장에서 안줏거리를 탐색했다. 보통은 인원수에 따라 고르는 모둠회 대·중·소가 일반적인 방식. 여기에 나오는 곁다리 반찬의 풍성함을 보고 자리를 잡곤 한다. 크게 실패하지도, 성공하지도 않는 안전이 담보된 방식이다. 반면에 안줏거리를 탐색하면 시간도 걸리지만 맛은 ‘모 아니면 도’다. 사전에 정보를 알아두면, 즉 제철을 알면 모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원래 목적‘어(魚)’는 복어였다. 한겨울 동해에서는 복어가 많이 잡혀 가격이 저렴하다. 시장과 포구의 수족관을 보니 복어가 없었다. 대신 장치와 성대가 눈에 띄었다. 장치는 말려서 찜으로 먹는 생선이지만 회 맛이 별미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장치 한 마리와 성대 네 마리 가격이 3만원.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선택하고 자리를 잡았다. 수족관에는 광어나 도다리가 있었지만 겨울과 봄 사이는 산란 전후라 선택을 안 한다. 장치는 회 질감이 무른 대구나 삼식이회(삼세기가 바른말)에 복어회를 합친 맛이다. 씹으면 대구회처럼 무른 질감이지만 그 끝은 복어회처럼 쫄깃한 맛이 있다. 다른 회에서는 느끼기 힘든 재미난 질감이다. 성대는 잡어 중의 잡어 취급을 받지만 회 질감은 돔처럼 쫄깃한 맛이 있다. 누가 설명하지 않는다면 돔의 한 종류로 여길 것이다. 쏨뱅이목 집안답게 회 맛 끄트머리에 살짝 단맛 도는 게 일품이다. 무엇을 해도 되는 날이 있다. 장치를 선택한 횟집의 초장과 초된장 맛이 일품이었다. 보통은 시판 초장을 사용한다. 이 집은 식당에서 담근 고추장과 된장으로 장을 만든다. 깊은 장의 맛이 회 맛을 탄탄하게 받쳐준다. 육장을 잘 만들어야 소 생고기도 맛이 빛난다. 이 집은 육장 잘 만드는 집처럼 회장이 뛰어나다. 회 뜨고 남은 뼈로 끓인 매운탕도 깊은 맛이 있다. 물미역이 나오는 시기에 간다면 상추보다는 미역에 싸 먹으면 더 맛있다. 물미역과 회의 조합이 이상할 것 같지만 맛있다. 옥이횟집 (054)261-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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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이 포를 떠서 양념한 돼지갈비와 여름을 제외한 계절에 맛볼 수 있는 막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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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1일, 영덕과 울진 취재를 하고 올라가는 길에 우연히 들렀던 고깃집이다. 지방에서 보기 힘든 평양냉면 전문이라 쓰인 간판에 끌려 들어갔다. 냉면집의 시그니처 조합. 돼지갈비와 냉면을 주문했다가 돼지갈비를 보고 놀랐다. 돼지갈비라는 게 말만 돼지‘갈비’지 보통은 앞다릿살이나 목살을 주로 쓴다. 왕갈비라 이름만 왕인 것은 대부분 저렴한 뒷다리살을 쓰면서 가격만 비싸게 받는 게 현실. 이 집은 돼지갈비를 일일이 포를 떠서 양념했다. 양념의 간과 단맛이 적당했다. 냉면이야 서울 노포의 것과는 달랐지만 나름의 맛이 있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다. 포항 시내에서 7번 국도를 타고 흥해읍으로 오니 초입에 여전히 식당이 있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돼지갈비 맛이 생각나 들렀다. 그때와 다른 점은 한여름에만 냉면을 하고 다른 계절에는 막국수만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같은 것은 돼지갈비의 맛. 1인분 9000원(3인분 이상 주문 가능)이라는 매력적인 가격도 여전했다. 평양냉면명품돼지갈비 (054)262-6171



경향신문

▶김진영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 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6년차 식품 MD.


김진영 식품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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