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7 (금)

‘도심 속 러닝 베이스캠프’ 손기정체육공원서 달리고 배운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서울 만리동 체육공원 ‘역사·문화’ 공존의 공원 재탄생

[경향신문]

경향신문

서울 중구 만리동 손기정체육공원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운동하기에 앞서 몸을 풀고 있다. 서울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러닝 트랙 깔고 산책로 조성
서울로7017·남산 코스 연계
다목적 생활체육 공간 변신
라커룸·샤워실 갖춘 시설도

손기정기념관·‘러닝센터’엔
일제강점기 마라톤 영웅들
유물 전시·당시 영상 등 상영

서울역과 연결된 공중보행로 서울로7017 서측(만리동)에서 내려와 골목길 언덕을 3분 정도 오르면 ‘손기정체육공원’이 나온다. 이곳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의 모교인 양정고등보통학교가 있던 자리다.

체육공원은 ‘스포츠 영웅’을 기리는 곳이지만 조성 취지와 정체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흔한 근린공원으로 방치됐다. 공원 내 손기정기념관은 시설이 낡고 전시 내용도 빈약해 하루 평균 방문객이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무색무취의 체육공원은 ‘수술’이 필요했다. 서울시는 2017년 10월 서울로7017 개장에 맞춰 손기정체육공원을 마라톤 특화 공원이자 손기정·남승룡 기념공간으로 재조성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와 함께 출전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1등에 가려진 남승룡 선수를 재조명하자는 의도가 바탕에 깔렸다.

마라톤 영웅들과 관련된 전시·프로그램 콘텐츠를 개발해 이곳을 ‘러너(runner)의 성지’로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2년여의 공사 끝에 지난해 10월 손기정체육공원은 체육과 역사, 문화가 공존하는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손기정체육공원 건립 30년 만이다.

■ 도심 속 러닝 베이스캠프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공원 내 ‘러닝러닝센터’에 들어서면 로봇팔이 마라토너들의 이름을 새긴 깃발을 흔든다(위 사진). 손기정기념관은 트랙을 따라 손기정의 인생 역정을 볼 수 있게 새단장했다. 서울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시는 7일 “코로나19 같은 사태로 다중이용시설·공공시설 출입이 제한될 때도 시민들이 손기정체육공원을 즐길 수 있게끔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야외 활동이 주가 되겠지만, 온라인·비대면 프로그램을 활성화시켜 1년 내내 체육공원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미다. 어디까지나 손기정체육공원의 지향점은 도심 속 ‘러닝 베이스캠프’다.

공원의 가장 큰 변화는 주로 축구장으로 쓰였던 운동장이다. 둘레에 러닝 트랙을 깔았고, 야외 요가 등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는 다목적 생활체육 공간으로 조성했다. 트랙과 산책로가 이어져 공원 전체를 달릴 수 있게 했다.

간이화장실과 오래된 컨테이너가 자리했던 공원 후문에는 외벽이 유리로 된 2층짜리 건물이 들어섰다. 건물을 나서면 곧바로 야외 트랙을 밟을 수 있게끔 설계했다. 프로젝트 총괄 디자이너를 맡은 오준식 베리준오 대표의 아이디어로 지어진 이곳의 이름은 ‘러닝러닝센터’다. 달리고(Running), 배운다(Learning)는 의미를 담았다. 오 대표는 “도심에서 달리기를 즐기는 시민들에게 라커룸과 샤워실도 제공하는 야외형 피트니스센터 같은 곳으로, 침침했던 공원에 활기를 불어넣은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1936년 손기정과 함께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해 동메달을 거머쥐고, 1947년엔 후배의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해 태극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한 남승룡. 1등은 아니지만 1등을 만들기 위한 ‘선의의 경쟁자’이자 ‘훌륭한 조력자’로 활약한 그는 한국 마라톤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러닝러닝센터는 ‘최선을 다해 얻는 모든 결과도 최고의 결과와 같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해방 후 대한민국 최초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한 남승룡과 서윤복을 이야기한다.

센터 입구에 들어서면 1947년 보스턴 마라톤이 열리기 전 남승룡이 서윤복에게 말한, “네가 기권하지 않고 뛴다고 약속하면 내가 뛰어주마”가 적힌 ‘기억의 벽’을 만날 수 있다.

역대 국가대표 마라토너들의 이름이 새겨진 깃발이 로봇팔에 걸려 펄럭인다. 애국가 선율이 흐르는 합주곡도 울려퍼진다. 오 대표는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울리지 못한 애국가를 바치고 싶었다”며 “한국 마라톤 영웅들의 정신을 미래 세대가 체감할 수 있도록 러닝러닝센터를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 코로나19 털고 달리자

공원 내 손기정기념관도 새롭게 단장했다. 손기정의 마라톤 인생을 관통하는 2개의 전시실로 꾸민 게 특징이다.

바닥에 표시된 트랙을 따라 걸으면 일제강점기 “달리기가 제일 좋았다”는 어린이 손기정의 흔적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이 머리에 썼던 월계관, 국제 스포츠인 손기정이 베를린박물관에 50년 넘게 보관됐던 우승 부상 청동투구를 돌려받기 위해 쓴 서신과 1950~1990년대 사용했던 여권 등을 볼 수 있다. 10m 길이의 와이드 스크린은 손기정이 1936년 8월9일 베를린을 달렸던 순간을 함께할 수 있는 영상 ‘2시간29분19초2’를 상영한다.

서울시는 백범광장, 효창공원 등 주변에 역사적 장소가 있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러닝러닝센터를 거점으로 한 ‘러닝캠프’를 운영할 예정이다. 서울로7017을 거쳐 남산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육상 코치가 함께 달린다. 또 ‘러닝 전문가’가 러닝러닝센터에 상주해 생활 속 달리기를 즐길 수 있게 돕는다.

서울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시민들의 몸과 마음이 굉장히 경직돼 있다”며 “체육·문화·역사가 공존하는 공원으로 거듭난 손기정체육공원은 코로나19를 훌훌 털고 도심을 달리려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 [인터랙티브] 춤추는 시장 “이리대랑게”
▶ 경향신문 바로가기
▶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