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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박사방’사건, 성착취 범행 재발 막는데 교훈됐으면”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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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구축·피해자 보호 앞장 조문영 수사관

98회 조사… 범죄단체 특성 규명

피해자 개인정보 유출 막는것 중요

주범 조주빈 1심서 징역 40년선고

“피의자들 흔히 보는 평범한 사람

인격파괴 유사 범죄 엄중 처벌을”

세계일보

조문영 서울중앙지검 여성가족조사부 수사관이 대검찰청 검찰역사관에서 ‘박사방’ 사건 수사팀에 참여한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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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방’ 사건의 범죄단체 형사처벌 선례가 피해자의 인격을 파괴하는 집단적 성착취 범행의 재발 방지와 유사한 범죄의 엄중 처벌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조문영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수사관은 지난해 텔레그램을 이용한 성착취 범죄, 일명 ‘박사방’ 사건의 검찰 수사팀에 참여한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조 수사관은 ‘박사방’ 사건에서 혐의 입증을 위한 방대한 증거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피해자 보호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올해의 수사관’으로 선정됐다.

서울중앙지검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태스크포스(TF)는 지난해 ‘박사방’의 주범인 조주빈을 비롯해 공범인 ‘부따’ 강훈 등 관련자 30여명을 기소했다. 조씨는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40년을 선고받았다. 조씨와 ‘박사방’ 참여자를 범죄단체조직 혐의로 기소한 검찰과 수사팀의 판단을 법원도 받아들인 점이 주효했다. 최근 대검찰청 검찰역사관에서 만난 조 수사관은 “‘박사방’ 피해자들이 지금도 괴롭겠지만, 1심 선고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 다 잊고 새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조 수사관은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검의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TF가 꾸려지면서 수사지휘팀 일원으로 사건 조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당시 유현정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을 총괄팀장으로 임명, 강력부·범죄수익환수부와 출입국·관세범죄전담부 등 4개 부서의 검사 9명과 수사관 12명을 투입했다.

조 수사관은 “조씨를 비롯한 ‘박사방’ 관련 피의자들은 하나같이 텔레그램 ‘박사방’은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고, 구성원들이 서로를 몰랐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박사방’이 범죄단체가 아니었고 자신들은 범죄단체임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며 “TF 기간 수사팀 멤버들이 주말 포함해 매일 자정을 넘긴 새벽까지 텔레그램 ‘박사방’ 대화 기록을 분석하고, 총 98회 조사를 통해 피의자들과 참고인들의 진술을 확보하고 휴대전화 포렌식 자료 등을 종합해 ‘박사방’의 범죄단체적 구조와 특성 등을 규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2GB(기가바이트) 분량의 ‘박사방’ 대화록을 샅샅이 살펴가며 △성착취물 제작·유포라는 공동 목적 △피해자 유인·개인정보 조회·대화방 홍보 등 구성원 역할 분담 △내부 규율 등 범죄집단의 특성이 있음을 밝혀냈다.

“조씨의 나이가 제 아들하고 동갑이었어요. 검찰에 수사받으러 온 피의자들은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굉장히 평범한 사람들이라서 더 놀랐습니다.”

조 수사관은 ‘박사방’에 연루된 이들을 조사하면서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언급된 ‘악의 평범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고 했다.

수사팀은 TF 발족 초기부터 피해자 보호를 두고 성착취 동영상 삭제와 증거기록 익명 처리 등에 공을 들였다. 조 수사관은 “유 부장검사의 아이디어로 압수수색 영장을 받을 때 원본 파일을 복제·압수함과 동시에 클라우드 등 저장 매체에 남은 원본 파일도 삭제하도록 업무 방식을 개선했다”며 “피해자들이 개명을 신청할 경우 법원에 제출할 서류 작성을 돕는 등 피해자의 도움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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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수사관은 기소 후 시작된 변호인들의 증거기록 복사 신청에 따른 자료 제출 과정에서 피해자 개인정보 유출을 막고자 0.2㎝ 크기 이하로 테이프를 잘라 붙이면서 텔레그램 대화록 속 이름을 가렸다. 그는 “각 피의자의 기록만 30∼40권 분량이었고 그 기록마다 성착취물 피해자들의 사진과 이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며 “여성가족조사부 수사관, 실무관들 전원이 이 기록에 매달려 사진과 이름의 크기에 맞게 A4 용지를 잘라 붙였다”고 전했다.

1996년 9급 검찰 공무원으로 입직한 조 수사관은 형사부에서만 16년 넘게 근무한 베테랑 수사관이다. 결혼 전 1990년 처음 입직 후 광주지검에서 근무했지만 결혼과 출산 때문에 3년 만에 퇴사, 이후 다시 공채를 보고 재입직했다. 1996년 입직 당시 250명의 9급 검찰 공무원 중 여성은 조 수사관을 포함해 3명에 불과했다. 2000년 이후 여성 검찰 공무원이 대폭 늘어났지만 조 수사관을 비롯한 베테랑 여성 수사관은 아직도 부족한 상황이다. 그는 “예전에는 워낙 인원이 적었기 때문에 조금만 잘못해도 눈에 띄어서 부담이 컸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며 “그래도 검사실에서 일하면서 만난 합리적이면서도 열정적인 검사 및 동료들 덕분에 지금까지 일할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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