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찾은 경기 부천시 옥길동의 한 밭. 농작물을 심은 흔적은 없었다. /고성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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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경자유전의 원칙(농사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가질 수 있음)을 규정하고, 농지법도 자경 목적이 아니면 농지를 소유할 수 없도록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셈이다.
LH 직원들의 농지 매입 사건의 핵심은 ▲미공개 정보 이용 ▲농지의 불법 취득 의혹 등 두 가지가 핵심인데, 후자는 수년여 전부터 횡행했다는 뜻이다. 인근 농민 A씨는 "땅만 사놓고 농사 제대로 안 짓는 땅 처음 보느냐"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농지에 묘목만 심고 농사 제대로 안 지었다며 시끄러운데, 그런 가짜 농지는 전국에 수두룩하다"고 했다.
◇ "터질 게 터졌다"… 농사 안 짓는 농지 전국 수두룩
이날 기자가 찾은 부천시 옥길동 일대에는 본격적으로 논밭을 갈며 농부의 손길이 분주해진다는 춘분(春分·3월 20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도 휴경지가 많았다.
이 일대는 3기 신도시처럼 대규모 토지보상이 예정된 곳은 아니지만, 2012년부터 광명~서울 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이 추진되며 토지보상금을 노린 수요가 일부 유입된 곳이다. 보유한 땅이 고속도로 부지에 포함되면 토지보상금을 받을 수 있어서다. 토지보상은 2019년부터 시작돼 진행 중이다. 일부 필지는 토지보상이 완료돼 공사가 진행 중이기도 했다.
토지보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농지에선 농사를 제대로 짓지 않는 땅이 종종 보였다. LH 직원들은 2018년 시흥시 무지내동 한 토지(5905㎡)를 매입한 뒤 배추밭을 갈아엎고 왕버들을 심었는데, 이 일대에서도 묘목만 심어진 밭이나 잡초가 무성한 땅들이 보였다.
인근에서 밭을 갈던 농민 김모(78)씨는 기자와 만나 "서울 사람들이 땅을 사서 나무만 몇 그루 심어놓고 농사짓는 흉내만 내는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면서 "절대농지(공공투자에 의해 조성된 농지)를 제외하면 농지는 사실상 전부 투기 대상"이라고 했다.
인근 농민 박모(65)씨도 "농민이 아닌데도 농토를 불법으로 매입하는 건 오랜 기간 암암리에 만연했던 일"이라면서 "우리나라 농지 한두 군데가 아니라 대체로 다 그렇다"고 했다. 이어 그는 "LH 직원까지 농지에 투기했다는 걸 듣고 울분이 터졌다"고 덧붙였다.
지난 9일 찾은 경기 부천시 옥길동의 한 밭. 오랜 기간 농사를 짓지 않은 흔적이 남아 있다. /고성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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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무실 농지관리… 농업경영계획서도 맘대로
‘농사를 짓지 않으면 농지를 구입할 수 없다’는 원칙은 왜 지켜지지 않는 것일까. 우선 농지를 매입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절차가 유명무실하다.
농지를 취득하려는 사람은 지자체에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한 뒤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아야 한다. 그런데 LH 직원들은 시흥시 과림동·무지내동 토지를 매수하며 허술하게 농업경영계획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시흥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일대 토지를 매수하며 ‘영농경력 7년’, ‘보유 농업기계장비 없음’ 등으로 기재했다. 공란도 많았다. 엉망으로 적었음에도 농지취득자격증명이 발급됐다.
사후관리도 허술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매년 농지이용실태조사에 나서지만, 묘목을 심어놓는 등 농사짓는 흉내를 내서 실태조사를 회피할 수 있다. 실태조사에서 적발돼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실태조사 적발 시 청문을 거쳐 이행강제금과 농지처분의무가 주어지는데, 처분의무 기간 내 자가경영을 할 시 처분의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채광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농지이용실태조사는 유예 기회 부여 등으로 실효성이 낮다"면서 "또 누가 자경하든 농지의 농업적 이용만 이뤄지면 그만이라는 인식 아래 농지이용실태조사가 이뤄져, 비합법적 농지이용(임대차)이 이뤄지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채 연구원은 이어 "농지소유권과 이용권 등 권리이동 정보를 파악하고 관리할 조직을 신설해 체계적인 농지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고성민 기자(kurtg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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