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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고강도 노동과 갑질 직장인지 묻고 싶다” 지스트 총장 사퇴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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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이 노조와의 충돌로 갑작스레 사퇴하는 등 광주과학기술원(지스트·GIST)이 내부 진통을 겪고 있다.

19일 광주과학기술원에 따르면, 김기선 총장이 전날 부총장단과 함께 ‘최근 논란’에 대해 “지스트 구성원 간 서로 화합해 기관 본연의 목적인 과학기술 인재 양성 및 연구의 산실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는 메지지를 남기고 사퇴했다. 이와 같은 갑작스런 사퇴 상황에 지스트 구성원들은 당황해하고, 사퇴를 촉발케한 노조에 대한 교수의 반박이 나오는 등 구성원간의 문제가 표면화하고 있다.

이날 현재 지스트 관계자는 과학기술부에 가서 ‘총장 직무대행체제’ 등에 관해 협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스트의 한 구성원은 이와 관련, “사퇴의사를 표명하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총장의 사의에 따라 대외부총장이 직무대행을 맡아야 하지만, 연구자가 아닌 광주지역의 시민운동가 출신이어서 대행직을 고사하고 있다.

지스트 관계자는 “지금은 혼란스런 단계”라며 “과학기술부의 입장, 오는 30일 이사회의 회의결과 등에 따라 수습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근 논란은 지스트 노조가 김 총장의 연구수당 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노조는 “김 총장이 지난 2년간 급여 4억여원 외에 3억원 이상의 연구수당과 성과급을 챙겼다”며 총장으로서 연구수당과 성과급을 받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노조는 또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8일까지 전 직원 223명(휴직자 17명 포함) 중 176명이 참여한 가운데 김 총장에 대한 중간평가한 결과, 100점 만점에 평균 평점 35.20점을 받았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여기에다 일반직원의 경우 잦은 인사이동과 높은 노동강도를 강요받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노조의 주장에 대해 지스트는 “법과 규정에 문제가 없다”며 반박하고 있다. 광주과학기술원 정관에 있는 ‘총장은 교원과 연구원을 겸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총장직무와 함께 연구과제를 수행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 총장이 수행하는 연구과제와 관련해서도 김 총장의 취임 당시 연구과제와 관계된 해양수산부에 공문으로 연구수행 적절성여부에 대해 질의했고, 해수부장관도 “연구수행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당시 공문으로 확인해줬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서울 소재 대학의 경우도 총장이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정해진 범위 안에서 연구수당을 받고 있다며, 기관장이므로 부적절하다는 문제제기를 하는 그 자체가 잘못됐다는 입장을 지스트는 밝혔다.

노조의 주장을 반박하는 교수의 글도 이날 오전부터 학내 구성원들 간에 퍼지면서 공유되고 있다.

전창덕 생명공학부교수는 “노조가 총장재직시 연구수당과 성과급을 불법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 관련 기관이 정한 규칙에 따라 집행된 것을 총장직 역할을 잘못하는 원인으로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또 “노조는 일부를 대표하는 단체인데, 교수와 학생, 연구원 집단은 철저히 배제한 채 성명서를 일방적으로 발표, 마치 모든 구성원이 현 경영진에 대하여 불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문제를 증폭시켰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일반직원들의 근무자세 등에 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교수들은 학교의 특성상 연구비를 수주하여 다른 재원과 합쳐서 직원들의 인건비성으로 나가는 금액이 약 200억 이상”이라며 “직원들 인건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교수들은 본인 인건비의 50%, 직원 인건비의 50%인 대략 1억 원 이상의 간접비를 확보하기 위해 최소 4억원의 연구비를 수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높은 ‘노동강도’는 교수직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개원 이래로 적지 않은 수의 교수들이 높은 승진·재임용 규정에 의해 이직하고 있다”며 “그러나 직원 이직률은 왜 0%에 가까운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은 객관적 기준을 바탕으로 평가되지 않고 있고, 카르텔을 형성하여 집단이기주의로 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교수 수 190명, 한 학년의 학생 수 200명의 대학에 정규직 직원의 수가 223명, 그중 유급휴직 인원이 15%, 계약직까지 포함하면 약 300여명의 직원이 있는데도 오히려 과거 10년 전 보다 행정의 효율성이 많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흔히들 뒤에서 수군거리는 행여나 ‘신도 모르는 직장'인지, 아니면 정말 힘들게 고강도의 노동과 갑질에 둘러싸여서 숨도 못 쉬고 사는 직장인지 알고 싶다. 걸핏하면 이런 저런 이유로 학교 사무실도 문 닫고, 대학 행정부도 문을 닫는다. 연구시설 사용은 6시만 넘으면 사용할 수 없다. 담당자는 자주 외출중이거나 연차중이고, 전산화를 구실로 모든 잡무는 교수와 학생들에게 오롯이 전가된다. ‘랩(연구실)장’이라는 학생은 종일 행정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노조가 잿밥이라고 표현한 그 연구비 벌어오려고 밤 늦게 일했고, 또 실적 안 나오는데 평가날짜 다가오면 잠도 못자고,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스트레스 받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평가장으로 향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바동거리며 사는가에 대한 회의감으로 의지를 상실한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무엇으로 보상을 받아야 하는가요?”라고 그는 반문했다.

김기선 총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학사), 미 서던캘리포니아대 대학원(박사)로 지스트 개설 초기인 1994년 교수로 부임했다. 지난 2019년 3월 6일 임기 4년제(2023년 3월까지) 총장으로 취임, 광주시가 추진하는 인공지능산업전략과 궤를 함께 하며 인공지능 대학원개설과 대학(원) 연구력 등을 높이기 위해 노력을 펼쳐왔다.

[권경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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