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30 (목)

이슈 동학개미들의 주식 열풍

"모르는 곳 투자 금물" 서학개미 명심할 사건들 [영화로운 경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영화로운 경제’는 영화를 통해 우리 주변의 다양한 경제 현상들을 살펴보는 연재물입니다. 금융·부동산 등 투자 관련 분야부터 산업과 생활경제까지 흥미롭고 유익한 경제 이야기를 쉽게 전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사 모아보기]


팬데믹 시대를 1년 쯤 지나온 요즘,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열풍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해외 주식이라면 멀게만 느꼈던 개인들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면서 ‘서학개미’도 어느 때 보다 많아졌습니다. 전 세계 개미들이 사랑하는 ‘테슬라’의 한국 투자자 지분 가치가 이달 초 기준 10조원에 가까웠다고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할 만합니다.

그런데 높은 주가 상승률을 보여준 주식들이 있는 반면, 이런 서학 개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종목들의 소식도 자주 들려왔습니다. ‘공매도’와 ‘사기’에 얽힌 논란에 주가가 급락하는 사태가 최근에도 몇 차례나 있었습니다. 특히 ‘이항 홀딩스’ 사태는 지난 십여 년간 발생했던 일들을 다시 반복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익숙하게 느껴졌습니다.

경제가 호황일 때, 돈이 갈 곳을 찾아 바쁘게 헤맬 때, 이런 일들은 더욱 많이 벌어지게 마련인가 봅니다.

사기꾼이 도처에 널렸다…영화 ‘차이나 허슬’

매일경제

다큐멘터리 영화 `차이나허슬`의 공식 포스터


2017년 제작된 ‘차이나 허슬’(China Hustle)은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의 사기 행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영화는 공매도 투자업체 GEO인베스팅의 설립자인 댄 데이비드, 머디워터스의 설립자 카슨 블록 등 공매도 투자자들이 부실한 중국 기업의 부풀려진 가치를 폭로하는 이야기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이 폭로성 보고서 발표와 공매도 투자에 나선 것은 중국 기업 특유의 불투명한 정보 공유와 폐쇄성 때문이었습니다. 수많은 중국 기업들이 미국 등 해외 주요국 증시에 상장하는데,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시장에 대한 투자 수요를 노려 기업 가치와 무관하게 주가를 부풀리는 일이 빈번했던 겁니다.

댄 데이비드는 미국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의 성장성에 주목해 예찬론을 펼치던 투자자였지만 헤지펀드인 ‘머디워터스’의 공매도 보고서 발표를 계기로 시각을 완전히 바꿉니다.

머디워터스를 설립한 카슨 블록의 첫 공매도 보고서는 주식 중개인이었던 자신의 아버지가 투자하고 싶어 한 중국 제지기업 ‘오리엔트페이퍼’를 조사하면서 탄생했습니다.

당시 미국 증시에 상장돼있던 오리엔트페이퍼는 중국 전역에 고급용지를 공급하고 매출도 1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최소한 이 회사의 주식을 중개하는 투자은행은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카슨 블록은 중국 허베이성에 위치한 오리엔트페이퍼를 직접 찾아갔고, 이상한 낌새를 느낍니다. 공장 주변엔 제대로 된 포장도로조차 없었고, 600여명이 일한다던 공장에는 고장 난 기계와 함께 턱없이 적은 인원만이 상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 회계 장부상 보유하고 있다던 500만 달러 가치의 원자재는 공장 곳곳과 바깥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썩은 골판지에 불과했습니다.

매일경제

머디워터스캐피탈이 2010년 발표한 오리엔트페이퍼 공매도 보고서에 첨부된 사진들. 500만 달러 가치의 원자재 대신 공장 바깥에 썩은 골판지들이 쌓여있고, 기계 상태와 주변 환경도 열악해보인다. /자료=머디워터스캐피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리엔트페이퍼가 주식 가치에 비해 부실하다는 것을 확신한 카슨 블록은 ‘머디워터스 캐피탈’을 설립하고 3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보고서에는 오리엔트페이퍼가 수천만 달러의 매출은 물론 자산, 마진율 등을 부풀려 회계조작을 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오리엔트페이퍼의 주가는 3일 만에 약 40% 급락했습니다. 오리엔트페이퍼는 반박에 나섰고, 이후 사명을 ‘IT테크패키징’으로 바꾸기도 했지만 주가는 계속해서 떨어져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2010년 머디워터스의 보고서 발표 전 1주당 13.5달러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던 오리엔트페이퍼의 주가는 올해 3월 19일 기준 0.73달러입니다.)

GEO인베스팅은 뉴욕 증시에 상장된 중국 비료회사 ‘차이나 그린 애그리컬쳐’가 매출을 부풀렸다는 사실을 몰래카메라 설치와 탐문을 통해 알아냈습니다. 진짜 매출을 추정하기 위해 2013년부터 무려 344일간 본사 공장 출입구를 몰래 촬영했는데, 비료를 싣고 드나드는 트럭 수가 터무니없이 적다는 점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촬영된 영상을 근거로 연매출을 10배가량 부풀렸다고 분석해 발표했습니다. 당연히 이 주식의 가격도 폭락했습니다. 한때 360달러까지 올랐던 주가는 올해 3월 18일 기준으로 5.26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매일경제

GEO인베스팅이 공매도 보고서를 통해 매출 부풀리기를 폭로한 차이나그린애그리컬쳐 주가 추이. 보고서 공개 뒤 주가가 폭락한 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가격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래픽=조보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방심은 금물…“증시 사기 여전히 반복”


이런 일들이 벌어진 이유 중 하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09년부터 미국 내에서 넘쳐난 중국 시장에 대한 투자 수요였습니다. 빠른 성장세를 이어가는 중국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중국 증시에는 직접 투자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중국 기업들도 돈이 필요했으니, 많은 중국 기업이 미국에 상장을 하게 된 거죠.

영화 ‘차이나허슬’이 제작될 당시 미국 증시에는 약 400개 중국 기업이 상장돼 있었고, 이중 80% 이상은 기업공개(IPO)를 거치지 않고 역합병(Reverse Merger)을 통해 우회 상장했습니다. 이미 상장이 돼 있으면서 가치가 매우 낮은 미국 기업을 중국 기업이 인수하는 방식으로 증시에 입성한 겁니다. 상정 절차가 비교적 간단하다보니 이런 ‘사기 업체’들을 걸러내기도 어려웠습니다.

이후에도 미국에서 공매도 보고서 발표와 주가 폭락 소동은 이어졌습니다. 머디워터스는 2011년 중국 최대 벌목업체 시노 포레스트에 대한 공매도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캐나다 증시에 상장돼 있던 이 회사는 주가 폭락 후 결국 상장폐지 됐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중국 기업들이 제공하는 ‘건실한’ 재무제표와 다양한 정보들을 쉽게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점점 알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이후에는 이런 일이 잘 벌어지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오’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아직도 증시에서 ‘공매도 보고서’와 ‘사기 논란’은 끊이지 않고 벌어집니다. 중국판 스타벅스로 불리며 고속 성장하던 ‘루이싱 커피’가 비슷한 과정을 겪고 상장 폐지된 게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일입니다.

루이싱 커피를 몰락시킨 것도 머디워터스가 발표한 공매도 보고서였습니다. 지난해 1월 발표된 이 보고서는 루이싱커피가 하루 평균 판매량을 2019년 3분기에 69%, 4분기엔 88%나 부풀렸다고 폭로했습니다.

매일경제

머드워터스가 지난해 1월 회계 부정을 폭로한 루이싱 커피는 2달여 뒤 잘못을 인정했다. 곧 거래정지 종목으로 지정됐고, 6월에는 나스닥에서 상장 폐지 당했다. /그래픽=조보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머디워터스가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받았다는 이 보고서는 1500여명의 직원을 동원해 1만1260시간 분량 영상을 분석했습니다. 981일치 기록을 하루 평균 11시간30분씩 관찰하고, 고객수와 2만6000여개의 영수증까지 챙겨본 뒤에야 매출이 부풀려졌다는 판단을 내립니다.

이후 루이싱 커피는 회계조작 사실을 부인하다 이내 시인했습니다. 회계조작 사실을 시인한 날 주가는 75% 폭락했고 시가총액은 하루만에 약 6조원이 증발했습니다. 루이싱커피는 스타벅스의 뒤를 바짝 뒤쫓을 만큼 대단하다고 평가받았던 기업이었지만 이 사태로 곧 상장폐지 됐습니다.

이외에도 우리는 유사한 사례들을 숱하게 듣고 있습니다. 최근 몇 달만 봐도 그렇습니다. 미국 증시에 상장한 드론 기업 ‘이항 홀딩스’는 지난 2월 한 투자정보 업체가 공매도 보고서를 발표하자 주가 급락을 겪었습니다.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이항의 기술력이 부족하고 생산 공장도 부실하며 가짜 계약으로 주가를 부풀렸다는 의혹이었습니다.

중국 기업은 아니지만 미국의 수소전기 자동차 업체인 ‘니콜라’는 “수십 가지 거짓말을 기반으로 세워진 사기 업체”라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가 지난해 9월 발표되면서 주가가 폭락했었죠. 특히 아직 작동하지도 않는 수소 트럭을 언덕에서 굴려 홍보 영상을 찍었다는 내용은 많은 투자자들이 등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이항 홀딩스나 니콜라 모두 아직 사태의 진실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시장의 신뢰를 많이 잃은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매일경제

공매도 투자 업체인 울프팩리서치가 이항홀딩스에 대해 부정적인 보고서를 낸 뒤 이항의 주가는 하루만에 63% 가량 급락했다. 울프팩리서치는 보고서를 통해 "이항이 생산, 제조, 매출, 사업 협력 등에 대해 거짓말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래픽=조보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해외 향하는 돈…‘깜깜이 투자’ 유의해야


요즘 시장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야말로 ‘돈이 갈 곳을 바쁘게 찾는 시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넘치는 유동성 덕에 증시가 한참동안 활황세를 이어가자 매수할 만한 주식을 찾는 개인 투자자들이 급증했고, 증시가 주춤하다 싶으면 부동산·펀드·암호화폐 등 다른 투자 대상을 물색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미국 주식 등 해외 투자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도 이런 움직임 중 하나입니다.

금융업계 전문가들과 만나 각종 공매도 보고서에 얽힌 사기 논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자주 듣는 말이 “이럴 때 일수록 조심해야 한다”입니다. 어찌 보면 뻔한 말이고 그 이유들도 생각보다 단순하지만 한번 쯤 새겨볼 만은 합니다.

우선 돈이 넘쳐날 때 사기가 더욱 판을 치고, 투자자도 이성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수 있다는 말들을 많이 하곤 합니다. 고수익을 노리는 개인 투자자의 투기적 성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매일경제

나스닥 지수가 3% 이상 급락한 지난 18일(현지시간)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입회장에서 트레이더들이 업무를 논의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실제로 서학 개미들의 고수익·고위험 종목 선호 경향은 쉽게 관찰됩니다. 공매도 세력과 이에 대응해 수익을 올리려는 투자자들이 몰려 가격변동성이 커진 것으로 알려진 ‘게임스톱·AMC엔터테인먼트’ 등 주식이 개인 해외주식 순매수 최상위권을 최근 자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공매도 보고서 발표 전까지 주가 급등세를 이어가던 ‘니콜라’나 ‘이항 홀딩스’ 또한 서학 개미들의 순매수 상위 종목들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 기업 등 수많은 해외 기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미국 증시에 상장해 있다는 점도 조심해야할 부분입니다. 중국 기업들이 미국 증시에서 공매도 헤지펀드들의 공격을 받아 상장폐지를 당하거나 주가가 10~100분의 1토막 나는 일은 정말 많이 벌어졌던 일이니까요. 국가별 특성이나 지리적 위치에 따라 상대적으로 적거나 불투명한 기업 정보를 바탕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는 주식들은 특히 조심해야 할 겁니다. 미국 증시에 상장한 기업이라고 해서 꼭 건실한 기업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합니다.

영화 ‘차이나허슬’에서 카슨 블록은 자신의 공매도 헤지펀드 이름인 '머디 워터스'(muddy waters·흙탕물)를 중국의 사자성어 '혼수모어'(混水摸魚)로부터 영감을 받아 지었다고 소개합니다. 흙탕물이 물고기를 쉽게 잡게 해준다는 말처럼 “시장의 혼탁함이 돈을 벌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겁니다.

여러 헤지펀드를 포함한 공매도 투자자들은 증시에 사기꾼들이 많아야 돈을 번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사기를 벌이는 회사들을 조사한 뒤 ‘보고서’를 써서 정보를 제공하는 이들은 주가 하락으로 큰 손실을 입는 투자자들 덕에 막대한 돈을 법니다. 결국 금융회사들과 자본가들은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와는 달리 시장과 기업의 성장은 물론 ‘혼탁함’에서도 수익을 거두게 됩니다.

영화 ‘차이나 허슬’은 GEO인베스팅 설립자의 이 말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이야기에 저를 포함해서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금융 시장에서 선량한 개인의 투자금을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얘기입니다. ‘서학 개미 군단’에 가담해 해외 투자에 나설 생각이라면 또 다른 공매도 보고서가 불러온 논란으로 큰 손실을 보지 않도록, 저 멀리 물 건너에 있는 한 번도 직접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회사 때문에 밤새 마음 졸이지 않도록 어느 때 보다 신중하게 투자처를 모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임형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