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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끝없는 부동산 전쟁

집값 잡기에 가장 간절했던 대통령…盧 아닌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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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연설-2] 문민정부까지를 소개한 지난 회차(바로가기)에 이어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 이후 대통령들이 부동산에 대해 어떤 연설을 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번 회차에서는 예상대로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의 연설이 눈에 띕니다. 신기하게도 두 대통령이 주택을 바라보는 관점은 상당히 유사했습니다. 다른 대통령들이 집값 상승을 단순히 경제 현상으로 간주했다면, 두 대통령은 집이 없어 괴로워하는 서민의 삶 차원에서 접근했다고 할까요. 그래서 주택은 재산 증식 수단이 아닌 주거 공간이 돼야 한다고 수시로 강조하고, 높은 집값으로 인한 서민들의 절망감·박탈감에 가장 절실히 공감했던 것도 두 대통령입니다.

생각해보면 다른 대통령들이 어려서부터 정치인·공인이었던 것과 달리 두 대통령은 '생활인'의 삶을 경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대통령이 된 후 정책을 펼칠 때에도 영향을 끼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집값을 잡기 위한 대책은 정반대였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비롯한 각종 규제 정책을 꺼내 들었고, 이 전 대통령은 최근 논란이 됐던 보금자리주택을 포함해 공급대책에 주력했습니다. 주택을 바라보는 시각은 같았지만 주택 '시장'을 바라보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인데요. 관련 내용은 각 대통령의 연설문을 돌아보며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대통령이 적정한 집값 수준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흔히 노 전 대통령이 집값 잡기에 가장 강경한 태도를 보였을 거라고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물가 수준으로 따라 오르게 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폭락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취임 4주년 대통령과의 대화 등) 정도였던 반면, 이 전 대통령은 "지금 주택 가격이 조금 떨어지는 양상이 있다고 해서 걱정을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 더 떨어져도 된다고 본다"(2008년 9월 대통령과의 대화 등)고 했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 전 대통령이 집값 잡기에 조금 더 열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 부동산 폭락기 집권한 김대중…임기 막바지에는 급등세 전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 정권 임기 말에 터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아파트값이 폭락하는 기간에 집권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집값 상승보다는 하락을 더 우려하고, 집값 하락에 따른 부실대출 위험이 은행으로 전이되는 것을 더 걱정했습니다. 투기 세력의 부실을 국민 혈세로 지원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연설문에 자주 등장하는 편입니다. 2001년 4월 23일 은행 관계 인사를 초청한 오찬 연설에서는 "부동산을 담보로 했는데 거품이 빠지니까 부실대출이 쏟아지고 은행이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며 "은행이 전당포가 아닌 이상은 담보 위주로 대출을 해줘서는 안 된다. 은행은 철저히 신용을 조사해서 소비자인 고객과 상의해서 돈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벌어 갚을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연설문에 가장 많이 등장한 부동산 정책도 외국인의 취득 제한을 풀어 시장을 활성화하는 방안입니다. 현 정부 들어 아파트값이 급등하는 가운데 외국인들이 국내 부동산을 쇼핑해 간다는 뉴스에 국민이 분노하는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임기 말에 이르러서는 부동산 관련 발언에 분위기 변화가 감지됩니다. 2002년 10월 9일 내일신문 창간 2주년 회견에서 김 전 대통령은 "최근 부동산값이 많이 올라 서민들의 걱정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정부는 주택 공급 확대와 투기 수요 억제라는 두 방향에서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매일경제

김대중대통령 연두기자회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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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에 맞선 盧 "부동산이야말로 시장이 완전히 실패한 영역"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부동산 정책에 관해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물입니다. 연설물 기록을 봐도 '부동산'이 언급된 연설 횟수가 45회로 5년 단임제 대통령 중에 가장 많습니다. "정책 하나하나를 놓고 제가 일일이 챙긴다"(2004년 9월 5일 MBC 시사매거진2580 대담)"고 강조할 정도로 대통령 본인이 많은 에너지를 투입했다고 합니다.

노 전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발언은 2005년 8월 25일 KBS 특별방송 '참여정부 2년6개월, 노무현 대통령에게 듣는다'의 질의응답 도중에 나왔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시장이 존재하지, 시장을 위해서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며 "부동산이야말로 시장이 완전히 실패한 영역이다. 시장의 실패는 국가가 정책으로 보완해줘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대표 격인 종합부동산세는 이 같은 접근법과 궤를 같이합니다. 공급과 수요의 원리가 아닌 정부 규제를 통해 상황을 개선하는 방식이기 때문이죠. 연설문에서 종부세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2004년 MBC 시사매거진2580 대담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시행 중인 부동산 대책을 설명한 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보유세를 올린다. 재산세, 토지나 건물의 보유세를 올려서 투기 목적으로 부동산을 오래 보유하지 않도록 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발언이 있고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은 후인 2005년 종부세가 전격 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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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타워 공사현장 시찰(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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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후반 연설문에서는 규제 정책에 비협조적이었던 야당과 언론에 아쉬움을 표한 부분이 많습니다. 2006년도 신년연설에서는 "지난 3년간 경제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더 힘들었던 것은 위기설과 파탄론이었다. 대안을 제시하고 힘을 모아야 할 우리 사회 지도층까지 경제에 대해 끊임없이 비관적 전망을 쏟아냈다"며 "부동산 문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대책을 내놓았을 때 일부 정치권이나 언론의 태도를 보면 입으로는 찬성하면서도 실제로는 마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행동했다"고 했습니다. 2007년 6월 2일 평가포럼 강연에서는 "1억8000만원 주고 강남에 아파트를 사서 11억원에 팔아 9억원을 남기면 양도소득세가 얼마 나오나. 6800만원이다. (야당에서는) 그거 낸다고 두려워서 '나 집 못 팔겠다'고 한다"며 "그거 팔 수 있도록 국가가 배려를 해줘야 되는 것인가. 참, 정책이라는 게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참여정부 청와대에 근무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 내부에서는 종부세 논란에 대응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까지 가동할 정도로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종부세로 인한 파동은 아직까지도 참여정부 임기 말 지지율이 하락한 결정적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 MB "시장가격 강제로 내릴 수 없어, 정부가 공급하자"


노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이 전 대통령도 집값을 잡기 위한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는데요. 전 정권과 반대로 시장원리를 따라 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으려 했습니다. 특히 정부 주도로 값싼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주된 무기였습니다. 완전히 시장에 방임하는 정책은 아니었지만, 시장에 참여하는 수요자들 심리를 정확히 읽은 대책으로 평가됩니다.

2008년 9월 9일 KBS 특집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이 같은 인식이 잘 드러납니다. 이 전 대통령은 "시장경제에서 민간 주택 가격을 강제로 내릴 수는 없지만, 정부 조직에서 만들어 내는 주택을 적절한 가격으로 공급하면 그것이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 전 대통령은 "이제까지는 주택 정책으로 세금을 많이 내게 해서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을 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자꾸 올라가고 서민들은 비싼 집을 구하기가 힘들게 됐다"며 "평생 자기 집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가격이 비싸든 싸든 주택을 복지라는 측면에서 공급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전 대통령 임기 중에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기 침체 우려가 컸던 것을 감안하면, 이 같은 공급대책을 밀어붙인 것은 더더욱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집값 잡기보다는 오히려 집값을 부양하는 게 다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매일경제

8 Tallet 친환경 주택단지 방문 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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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이 전 대통령은 공공 임대주택 위주의 공급대책을 선택했습니다. 최근 문재인정부의 공급대책이 발표된 후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인근 주민들에게 극심한 반발을 살 수 있는 방식입니다. 그럼에도 이 전 대통령은 "도심의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분양 주택도 있지만 반드시 임대주택도 지어서 임대도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때로는 전세금을 내고도 들어올 수 있는 다양한 주택 정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KBS 대통령과의 대화)고 강조했습니다.


◆ 부동산시장 회복에 전력한 朴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기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침체에 빠진 부동산 시장을 되살리기 위한 정책이 줄지어 등장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연설도 집값 잡기보다는 경기 진작을 위해 부동산 시장이 회복돼야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2013년 11월 18일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은 "정부는 경제 활성화의 불씨를 살려내기 위해 출범 직후 17조3000억원의 추경을 편성하고, 특단의 부동산 대책을 추진했다"고 했고, 2015년 1월 11일 신년구상 기자회견에서는 "소비심리를 살려내고 내수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동산 시장이 회복돼야 한다. 그간 부동산 시장을 옭아매던 과도한 규제들을 바로잡은 결과, 지난해 주택 거래량이 8년 만에 최대치에 달하는 등 부동산 시장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정책과 함께 저소득층을 위한 공급 정책은 전 정권의 기조를 이어갔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1월 4일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뿐만 아니라 민간 주도의 다양하고 쾌적한 장기 임대주택 공급도 대폭 늘려서 주거의 안정성을 높이는 한편 주거비 인하로 이어지도록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2015년 10월 26일 예산안 시정연설에서는 "행복주택을 비롯해 공공 임대주택 11만5000가구를 공급하고, 기업형 민간 임대주택인 '뉴 스테이'를 금년보다 50% 증가한 1만5000가구 공급해서 주거비 부담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문재용 기자]

'박정희 대통령의 성평등 인식은?' '이명박 대통령이 기억하는 현대건설은?'…'대통령의 연설'은 연설문을 통해 역대 대통령의 머릿속을 엿보는 연재 기획입니다.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에 남아 있는 약 7600개 연설문을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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