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최일선’ 필수노동자 불구
쪼개기 계약 늘면서 ‘파리 목숨’
10명 중 8명 “폭행·성희롱당해”
“노동 강도·전문성 저평가 심각
위험수당 지급·인력 충원 필요”
#1. 요양보호사 A씨는 14년 동안 일해온 서울의 한 시설에서 지난 2월 해고당했다. 당시 그가 돌보던 노인은 식사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기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짜증을 내며 A씨에게 “너를 요양원에서 자르게 하겠다”고 폭언을 퍼부었다. 그는 성적인 욕설까지 하면서 A씨의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 10여분간 이어지는 실랑이를 참다 못한 A씨는 “그만 좀 하시라”며 노인을 제지했다. 이후 A씨의 ‘노인학대’를 이유로 해고됐다. 제지 과정에서 노인의 몸에 손이 닿았다는 점이 문제가 됐는데 A씨는 제대로 된 소명 기회도 갖지 못했다.
#2. 인천의 한 시설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B씨는 돌보는 노인들에게서 “너희는 우리 때문에 돈 받고 산다”거나 “똥 치우는 X” 같은 폭언을 들을 때마다 자괴감이 든다. 그는 “치매가 아닌 어르신들도 그렇게 얘기한다”며 “(비슷한 일을 겪는) 요양보호사 대부분이 60대로 나이가 많다 보니 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단 생각으로 그냥 참고 견딘다”고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돌봄종사자들의 권익보호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대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돌봄종사자들은 ‘필수노동자’라는 명칭을 얻었지만, 폭언·폭행 등 이들에 대한 인권침해는 여전하다. 돌봄종사자들은 코로나19로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면서 노동권까지 위협받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11일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의 ‘노동환경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요양보호사 541명 중 81.3%인 438명이 일을 하며 돌봄서비스 이용자에게 폭언이나 폭행,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10.9%는 보호자에게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했다고 했다.
전국에 44만여명 정도로 알려진 요양보호사들은 코로나19로 일자리가 위태로워지면서 권익침해를 당하고도 적절한 조처를 할 수 없게 됐다고 토로한다. 시설 요양보호사의 경우 올해 기준 최저임금 수준인 월 180만원 정도를 받는데 이마저 끊길 수 있다는 위협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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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찬 전국요양보호서비스노동조합 경기지부장은 “갑질을 당하고도 보호사들이 대응하기 어려운 건 언제든 잘릴 수 있기 때문”이라며 “특히 코로나19 이후 단기 수준이 아니라 쪼개기 계약이 늘어나 3개월, 6개월 단위로 계약을 해 그만두더라도 퇴직금도 받지 못하는 파리 목숨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의 ‘코로나19 관련 요양보호사 실태조사’에서 응답자(3456명) 중 20.8%(714명)가 코로나19 여파로 일자리 중단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들 중 새로운 서비스를 연계 받은 경우는 13.5%에 불과했다. 대부분 무급으로 대기조치를 받았고, 자발적인 퇴사 강요나 일방적인 해고 등 불이익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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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돌봄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권익 향상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범중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인건비 인상과 근무환경 개선 등을 통해 돌봄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아야 이용자들이 경험하는 서비스의 질도 향상된다”며 “정부가 임금체계 개혁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저평가돼 있는 요양보호사들의 전문성과 노동강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노 지부장은 “요양보호사들의 인권침해 상황이나 보수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매뉴얼을 마련하는 등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면서 “위험수당 지급과 인력 충원 등은 요양보호사의 권익과 서비스의 질을 모두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유지혜·구현모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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