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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동네 수퍼서도 맞는다…전세계 백신대란 속 '플랙스'하는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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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센 접종 중단에도 바이든 "백신 충분"

대형마트, 약국 체인 등서도 접종

올 가을엔 전국민 2라운드 접종 가능성

"美 백신 쏠림, 코로나 극복 늦출 것"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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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앤젤레스의 CVS 약국 체인에서 약사가 모더나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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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미국 워싱턴DC 시내에 있는 '월터 E 워싱턴 컨벤션 센터'는 코로나19 백신 출장 접종소로 바뀌어 있었다. 예약 이메일을 보여주고 입장하니 공항 출국장을 연상시키는 대기 줄이 설치돼 있었다. 신분증을 제출하고 본인 확인한 뒤 곧바로 화이자 백신을 맞을 수 있었다.

접종 후 이상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대기한 30분을 포함해, 기자가 접종을 끝내기까지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간호사는 접종 장소와 날짜, 시간, 백신 종류와 로트 번호까지 적은 카드를 건네며 "앞으로 보여달라는 곳들이 있을 테니 지갑에 잘 넣어 다니라"고 당부했다. '백신 여권'을 놓고 찬반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미 도입을 기정사실 삼는 분위기였다. 개인이 내는 비용은 없다. 보험이 있는 사람은 보험사가, 없는 경우는 연방 정부가 대신 접종 비용을 지불한다.

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 곳은 이곳만이 아니었다. 반경 1㎞ 내 슈퍼마켓과 약국 등 곳곳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었다. 대형마트인 월마트와 자이언트, 소매 약국 체인인 CVS와 월그린스가 사전 예약을 받고 워싱턴 DC에 거주하거나 이곳으로 출근하는 타지역 거주자에게 백신을 놔준다. 연령과 직업에 따라 백신 접종 자격을 순차적으로 주는데, 최근 미디어 종사자도 차례가 됐다. 접종소마다 구비한 백신 종류를 공개하고 있어 원하는 백신을 선택해 맞을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 예약을 해야 하지만 장 보러 갔다가 우연히 백신을 맞는 '횡재'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월마트에 갔는데 약국이 문을 닫을 때쯤 남는 백신을 맞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며 운 좋게 백신을 맞은 경험을 공유했다. 소문이 퍼지면서 일부러 약국 문 닫을 시간에 근방을 배회하는 '백신 하이에나'들도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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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미국 앨라배마주에 있는 월마트 매장. 칸막이 안에서는 백신을 접종하고, 오른쪽으로는 쇼핑객이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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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100일 내 1억회 접종'을 내걸고 백신 속도전에 돌입했다. 지난 2월부터는 대형마트와 약국 체인 등지에서도 접종을 가능하게 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내 접종자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월마트 매장 한쪽에 가림막을 쳐놓고 백신을 놓는가 하면 탈의실에서 백신을 맞았다는 사람도 있다. 약국 체인에서는 약사 등이 백신 주사를 놓을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속도전에 '1억회' 목표는 지난달 18일 이미 달성됐다. 바이든 취임 후 58일 만이었다.

워싱턴 D.C의 경우 13일까지 전체 인구의 37%가 한 차례 이상 백신을 맞았다. 전국 평균(36.8%)과 비슷한 수준이다. 전국적으로 미국인 22.7%가 백신 접종을 완전히 마쳤다. 미국 인구에서 18세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22%인 것을 고려하면 미국 성인의 절반 이상이 백신을 맞은 것이다.

백신 접종의 목표인 '집단 면역'도 서서히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듀크대 통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지금까지 화이자, 모더나, 얀센 백신 2억4000만 도스(1회분)를 배포했다. 이 가운데 77%인 1억8400만 도스가 접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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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월마트 매장에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수 있다는 표시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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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투데이는 CDC 데이터를 토대로 지금 속도라면 백신을 1회 이상 접종한 사람이 6월 26일께 7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최고 의료 고문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장은 집단면역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백신 접종자 수를 인구의 70~90%로 예측한 바 있다.

이같은 속도전이 가능했던 건 미리 백신 물량을 충분히 확보했던 덕이다. 듀크대 글로벌 헬스 이노베이션 센터를 이끄는 크리슈나 우다야쿠마르 소장은 NPR 인터뷰에서 미국은 7월 말까지 백신 총 9억2000만 도스를 확보하게 된다고 전했다. 산술적으로는 모든 미국인을 두 차례 완전히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이다. 그는 "여름이 되면 막대한 백신 공급 과잉 현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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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마트 안 약국에 대기 줄이 있다. 로이컷=커네디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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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 정부는 여러 종류의 백신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대량으로 선 구매하는 전략을 썼다. 어느 백신이 언제 성공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같은 전략은 최근 톡톡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승인이 늦어지고 13일 얀센 백신의 접종이 중단된 상황에서도 백신 수급에 당장 큰 차질은 빚어지지 않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날 오후 얀센 백신 사용중단에 대한 입장을 묻자 "우리에게는 존슨앤드존슨(얀센)이나 아스트라제네카가 아닌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방식의 백신 6억 회분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겠다"며 "미국은 100% 의심할 여지가 없는(unquestionable) 백신을 모든 미국인이 맞을 수 있는 만큼 충분히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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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코네티컷주 한 월마트 매장에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로이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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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확보한 mRNA 방식인 화이자와 모더나 만으로도 전국민 접종은 가능하다는 자신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미국에선 올 가을 이후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한 '2라운드 접종' 구상이 언급되기도 했다.

미국계인 두 회사도 이날 바이든의 발언을 뒷받침하고 나섰다. 화이자의 앨버트 불라 최고경영자(CEO)는 5월까지 미국에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던 물량보다 10%를 더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모더나도 7월까지 약속한 2억 회분을 차질없이 대겠다는 입장을 냈다. 전세계 백신 공급난 속에 사실상 '미국 우선'을 재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제약사와 미국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백신의 '미국 쏠림'이 더욱 심화하고 결과적으로 전세계의 코로나19 극복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은 얀센 백신이 필요없을 지 몰라도 전세계가 곤경에 처했다”고 전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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