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8 (토)

"하키채 3개 부러질 만큼 맞았다"…빙상 선수 신체폭력, 타 종목 2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한국 여자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를 상대로 3년여간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가 법원에서 징역 10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가죽 날집을 이중으로 끼워서 락커룸으로 데리고 들어가서는 스케이트를 신기고 스케이트 타는 자세를 잡으라고 한 뒤 때리는 거예요. 등, 엉덩이, 허벅지, 안 보이는 데만 때리는 거예요." (빙상 종목 선수 A씨)

"한참 맞을 때는 아이스하키 채 3개 정도 부러질 정도로 맞았던 것 같아요. 20분 동안 락커룸에 갇혀서 맞아본 경험도 있고요." (빙상 종목 선수 B씨)

"처음에는 빙상장에서 때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울타리를 치고 거기서 때리고 이것도 안 되겠다 싶어서 락커룸에 들어가서 때리고." (빙상 종목 선수 C씨)

빙상종목 선수들이 다른 종목 선수들보다 언어·신체·성폭력 등 각종 폭력에 심각하게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15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빙상종목에 대한 특별조사 결과에 따르면 빙상선수 중 신체폭력을 경험한 초등학생은 26.2%였고 중학생 20.2%, 고등학생 22.1%, 대학생 29.4%, 실업선수 31.2%로 집계됐다. 전체 운동종목 평균(초등학교 13.0%, 중학교 15.0%, 고등학교 16.0%, 대학교 33.0%, 실업팀 15.3%)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의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실시된 조사는 2019년 7∼8월 전체 초·중·고등학교와 대학 학생선수, 실업선수 등 1만8000여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뒤 그 결과에서 빙상선수 응답 데이터를 추출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 빙상종목은 실업선수 그룹뿐 아니라 대학생 집단을 제외한 나머지 초·중·고 학생선수 그룹에서 모든 유형의 폭력 피해 경험이 전체 평균 응답률을 크게 웃돌았다.

빙상선수들의 신체폭력 주기는 전체적으로는 '1년에 1∼2회'라는 응답이 많았으나, 실업선수 집단에서는 '1달에 1∼2회'라는 응답이 45.0%, '거의 매일'이라는 응답도 25.0%나 됐다.

신체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빙상선수들은 "가죽 날집으로 맞았다" "아이스하키 채 3개 정도가 부러질 정도로 맞았다" "20분 동안 락커룸에 갇혀서 맞아본 경험도 있다"고 폭력 상황을 진술했다.

폭력 가해자는 학년과 상관없이 지도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 빙상선수는 폭력의 행위자와 장소에 대해 "스케이트장 안에서 맞고, 주로 코치님들이 때린다"고 말했다. 또다른 선수는 "연마실인데, 여기는 맞는 곳"이라며 "코치님한테 맞았다"고 했다.

인권위는 "일반적으로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또래나 선배에 의한 체벌이나 폭력이 심각해지는데 빙상종목은 학년과 상관없이 주된 폭력의 행위자가 지도자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상습적으로 폭력이 이뤄지는 실태에 비해 빙상선수들의 폭력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폭력에 대해 "그냥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풍습, 욕 들으면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고", "선수와 지도자 간 믿음이 있으면 때려도 괜찮다에 공감을 해서, 때리고 혼냈던 선생님들을 많이 믿었기 때문에 지금 와서도 좋게 생각한다. 믿음이 있는 선생님이라면 지금 맞아도 인정할 것 같다"고 진술한 빙상선수가 여럿 있었다.

인권위는 "초·중·고 학생선수가 폭력의 심각성이나 개선 필요성을 낮게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고, 폭력 발생 이유를 '훈련을 게을리 해서' 등과 같이 자신의 결점에서 찾는 폭력의 내면화 현상이 뚜렷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언어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 비율도 빙상선수가 전체 운동선수보다 대체로 높았다. 성폭력 피해 경험 응답률은 실업팀 선수가 17.1%로 다른 학생선수 그룹이나 전체 운동선수 응답률보다 높았다.

인권위는 "실업팀 선수의 성폭력 피해 경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으나 성폭력 심각성이나 개선에 관한 인식은 상대적으로 낮았다"고 말했다.

또한 빙상선수들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과도하게 긴 시간 훈련을 받으면서 반복적 수업 결손 등 심각한 학습권 침해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 조사됐다. 오전과 오후 수업을 모두 듣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초등학교 64.5%, 중학교 63.0%, 고등학교 29.4%로 나타났는데, 전체 종목의 평균(초등학교 75.1%·중학교 85.6%·고등학교 53.5%)보다 낮았다.

인권위는 "일부 지도자들에 의한 빙상장 독점화, 국가대표 코치 및 선수 선발권, 실업팀과 대학특기자 추천권 등이 전횡되면서 선수-지도자 사이의 위계 구조가 매우 공고해져 지도자들의 폭력이 공공연하게 용인됐다"며 "대한빙상경기연맹의 무능, 묵인 관행이 인권침해를 심화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에게 '빙상종목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과 인권 행동규범·훈련 가이드라인 마련, 정관 규정을 통한 지도자 자격기준 강화 등을 권고했다.

교육부 장관에게는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 중 '과외교습'에 체육교습을 포함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할 것과 지방자치단체장에게는 공공체육시설(빙상장) 독점을 방지하는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정혜정 기자 jeong.hyejeong@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