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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법 없이도 사는 법] 범죄자 출국을 막은 게 뭐가 문제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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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출국금지 사건의 ‘불편한 진실’

김학의 전 차관 불법출금 사건이 출범 초기의 공수처를 뒤흔든 데 이어 유력 총장 후보였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기소에까지 이를 전망입니다. 청와대 핵심 인사인 이광철 비서관도 이 사건으로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습니다.

김 전 차관 사건에 대해선 ‘불편한 시선’이 존재합니다. ‘범죄자 출국을 막은 게 무슨 문제냐’는 거죠. ‘동영상에도 선명한 그의 얼굴을 못 알아본 검찰이 잘못’이라고도 합니다. 법원에서 엄연히 실형을 선고받은 그에 대한 출국금지가 ‘불법’으로 다뤄지는 게 부당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2019년 3월 김 전 차관에게 취해진 출국금지의 유형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 전 차관이 출국을 제지당한 ‘긴급출국금지’는 이 사건이 부각되기 전엔 법조인들에게도 낯선 제도였습니다. 한 부장검사는 “20년 가까이 검사생활을 했지만 긴급출국금지는 한 번도 못 해봤다”고 합니다.

◇요건 엄격한 긴급출국금지, ‘긴급체포’ 와 마찬가지

긴급출국금지는 그 요건이 특별합니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범죄 피의자로'’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거나’ ‘긴급한 필요가 있는 경우’ 긴급출국금지를 요청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일반 출국금지에는 없는 요건들입니다.

특히 그 대상이 ‘범죄 피의자’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일반 출국금지는 벌금이나 추징금을 내지 않거나, 세금을 체납하는 등 범죄와 무관한 경우에도 할 수 있습니다. 국세청 등 행정기관이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긴급출국금지는 수사기관으로부터 범죄 혐의를 받고 피의자로 입건된 사람에 대해서만 가능합니다. 신청 주체도 수사기관으로 한정됩니다.

이처럼 엄격한 요건을 둔 이유는 긴급출국금지가 일단 출국을 제지한 다음 나중에 법무부장관 승인을 받도록 하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사전승인을 받아 하는 일반 출국금지보다 권리침해의 정도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영장 없이 이뤄지는 긴급체포가 일반 체포보다 요건이 까다로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체포의 경우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되지만 긴급체포는 의심되는 범죄가 ‘사형 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죄’여야 합니다. ‘3년 이상 징역’은 긴급출국금지에도 공통됩니다. 출국하려는 사람을 사전승인 없이 강제로 붙들어 두는 것은 사실상 긴급체포와 마찬가지여서 엄격한 요건을 정한 겁니다.

◇김학의는 당시 ‘범죄자'였나

그런데 2019년 3월 당시 김 전 차관은 어떤 범죄혐의로도 입건되지 않았습니다. 이규원 검사가 소속됐던 진상조사단이 (지금은 상당 부분 허위로 밝혀진) 각종 의혹보도를 양산하며 ‘바람’을 잡았지만, 증거부족이나 시효 경과 등으로 형사입건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진상조사단이 ‘수사기관’도 아니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조작된 면담보고서 내용을 기반으로 가짜 사건번호를 적어 긴급출국금지를 한 것입니다. 마치 수사기관이 무고한 사람에 대해 가짜 영장을 만들어 긴급체포를 한 상황과 유사합니다.

김 전 차관이 현재 실형을 살고 있는 범죄는 긴급출금 이후 법무부 검찰과거사위 권고로 만들어진 ‘김학의 수사단’에서 별도 수사로 밝혀진 내용입니다. 해당 뇌물혐의는 진상조사단이 생산한 김 전 차관 ‘스폰서’ 윤중천씨에 대한 면담보고서 내용과도 관련 없습니다.

김 전 차관에 대한 과거 무혐의 처분은 국민 눈높이에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범죄가 있다면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처벌이든, 출국금지든 적법절차에 의해 이뤄져야 합니다. ‘나쁜 놈’이라고 지목된 것만으로 절차를 무시하고 불법 구금하고 처벌하는 것을 용인하면 이 사건을 최초 고발한 공익신고인 표현대로 그냥 야만 속에서 살겠다는 자백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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