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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고덕동 택배대란’ 3주…대안없는 ‘차량 출입 반대’ 무엇이 문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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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덕동 택배대란 이슈 총정리

한겨레

지난 8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 앞에서 택배 기사들이 저상택배 차량(왼쪽)과 일반 택배 차량에서 작업하는 노동자의 자세 차이를 비교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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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세대 가까이가 살고 있는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ㄱ아파트 단지에서 택배차량의 지상진입을 막은 지 18일로 3주째가 되어 가고 있다.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집 앞 배송’을 중단했다가 일부 주민들의 항의와 택배사 압박 등이 이어지면서 지난 16일 ‘집 앞 배송’을 재개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택배노조는 17일 다시 한 번 택배차량의 지상진입 허용을 요구하고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택배사가 해당 아파트 단지 배송에 추가 요금을 받는 등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입주자대표회의 “손수레 쓰거나 저상차량 이용하라” 요구


논란은 ㄱ아파트 단지에서 지난 1일부터 택배차량의 단지 내 지상 도로 이용을 막으면서 시작됐다. 공원형 아파트인 이 아파트 단지 입주자대표회의는 택배차량의 출입을 전면 통제하면서 그 이유로 이 단지에 사는 아이들의 안전 문제를 꼽았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아파트 단지에 택배 배송을 하려면 택배 기사들이 손수레로 각 세대까지 배송하거나 기존 택배차량보다 짐칸 높이가 낮은 저상탑차를 이용해 지하 주차장으로 출입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이 아파트 단지의 지하 출입구 높이는 2.3m여서, 2.5m 남짓한 일반 택배차량은 진입이 불가능하다. 논란이 일자 입주자대표회의는 이 조처에 대해 “1년의 유예기간을 줬다”며 갑작스러운 통보가 아니라고 밝히고 나섰다.

택배노조는 이를 두고 “1년의 유예기간을 말하지만 일방적인 결정을 통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노조는 이어 “이사, 가전, 가구, 생수, 전기, 재활용 쓰레기차는 모두 지상출입을 하고 있는데 택배 노동자의 입장은 반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된 조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택배노조는 지난 14일 이 아파트 단지에는 ‘집 앞 배송’을 중단하고 ‘단지 앞 배송’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단지 앞 배송’은 오래가지 못했다. ‘단지 앞 배송’을 하려는 택배 노동자에게 일부 주민들이 원색적인 비난 문자 메시지를 쏟아내고 거듭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라는 게 택배노조의 설명이다. 이에 지난 16일 ‘집 앞 배송’이 재개됐다. 택배노조는 조합원들의 심한 스트레스를 고려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저상차량 이용하면 노동시간 늘고 산재도 우려


‘집 앞 배송’이 재개됐지만, 택배 노동자들은 여전히 ㄱ아파트 단지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선 손수레로 배송하게 되면, 택배차량이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갈 때보다 많게는 3배의 시간이 걸린다는 게 택배노조의 설명이다. 택배노조의 설명을 보면, 택배 노동자 ㄴ씨가 이달 초 직접 손수레를 활용해 배송해보니 단지에 배송할 물품들을 ‘집 앞 배송’하는 작업에 모두 6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지상에 택배차량이 진입할 수 있을 때 2시간∼2시간30분 만에 완료했던 일이었다.

아파트 단지 쪽이 제시한 저상탑차 이용도 어렵다. 하루 평균 250∼400개의 택배 물량을 배송해야 하는 택배 노동자들은 기존 탑차를 이용해야 지금과 같은 적재량과 배송량을 맞출 수 있다. 짐을 실을 공간이 좁은 저상탑차를 이용하면, 배송지와 집하장을 오가야 하는 일이 추가로 발생해 동선과 노동시간이 길어진다.

차량 개조 때 드는 비용 부담도 문제다. 일반 탑차에서 저상탑차로 개조하기 위해서는 최소 2백만원가량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택배사는 이를 부담해주지 않고, 입주민들이 이를 부담할 생각도 현재까지는 없다. 이 때문에 개조 비용은 고스란히 택배 노동자들의 몫이 된다. 정헌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인류학)는 “아파트에 택배차량 출입금지를 하고도 집 앞으로 택배를 배송받으면, 주민들이 각자 혜택을 보는 것인데도 (저상탑차 개조에 따른) 비용을 각 기사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아파트의 안전과 가치 유지에 따른 이익과 혜택에 대한 비용을 개별 택배 기사들이 부담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저상탑차로 운송을 하게 되면, 택배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 위험도 커진다. 실을 수 있는 물량이 줄어드니 상·하차 횟수가 많아지는 데다, 탑차 높이가 낮아지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허리를 굽히는 작업 등이 이어지는 탓이다. 현재도 택배 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9월 택배과로사대책위원회가 택배 노동자 821명을 상대로 조사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허리 통증 호소자는 83.6%, 상체 통증 호소자는 87.7%, 하체 통증 호소자는 85.2%에 달했다. 유성욱 택배노조 씨제이(CJ)대한통운본부 본부장은 “저상탑차로 하는 배달 자체가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다”라며 “1년도 안 돼서 몸이 망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덕동 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파트 내 택배차량 진입 문제를 두고 나오는 택배 노동자와 입주민 간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런 갈등은 주로 ‘차 없는 아파트’를 목표로 하는 공원형 아파트에서 발생했다. 2018년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 아파트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이 아파트도 택배차량의 진입을 금지했다가, 택배 노동자들이 ‘집 앞 배송’을 거부하면서 수천개의 택배물량이 아파트 앞에 쌓이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2019년 1월 지상공원형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층 높이 기준을 기존 2.3m 이상에서 2.7m 이상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은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했다. 국토부는 이 규정을 입법예고하며 “단지 내 도로를 활용해 각 동으로 차량 접근이 불가능한 공동주택 단지에 대해서는 지하주차장 층고를 택배 등 통상적인 단지 출입차량의 높이를 고려하여 설계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주민들이 택배를 ‘집 앞 배송’ 받기 위해서는 아파트 단지를 지을 때부터 일반적인 택배차량이 출입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문제는 이 규정이 개정되기 전에 지어진 아파트들이다. 고덕동 ㄱ아파트 단지도 2016년 건설을 시작해 바뀐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택배노조는 지상출입이 금지된 아파트가 이날 현재까지 179개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고덕동 ㄱ아파트 단지와 같은 갈등의 불씨가 전국 곳곳에 남아있는 셈이다.



갈등 풀 수 있는 사회적 대안은?


해법은 없을까. 만약 아파트 단지에서 계속 택배차량 지상진입 금지를 원한다면 대체인력을 채용하는 방법이 있다. 고령층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꼽히는 ‘실버 택배’가 대표적이다. 고령층으로 구성된 노동자가 단지 앞까지 온 택배를 집 앞까지 배송하는 제도다. 이들의 임금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택배사가 함께 지급하는 경우도 있고, 입주자들이 자체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정부와 지자체 재정을 투입하는 경우 다른 시민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 다산신도시의 경우에도 정부가 정부와 지자체가 보조금을 주는 실버 택배를 제안했지만, 시민들이 “왜 나랏돈을 들이냐”고 반발해 흐지부지됐고, 지금도 택배 노동자들이 손수레 등으로 ‘집 앞 배송’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택배기사가 단지 앞에서 끌 수 있는 ‘전동 카트’를 설치하거나 택배차량이 지상으로 통행할 수 있는 시간대를 입주민과 합의하는 방법이 대안으로 꼽힌다. 단지 내 입주민이 이용하기 편한 곳에 무인 택배 보관소를 설치하는 방법도 제시됐다. 최시영 아주대 공학대학원 교수(물류·공급망관리학)는 “대안 없이 택배차량의 아파트 출입만 제한해서는 안 된다. 우선 아파트 내에 택배 분류장이나 무인 택배함을 제공하는 등 아파트 택배 분류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며 “논의를 입주민과 택배기사에만 맡겨두지 말고, 택배사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택배노조는 17일 회의를 통해 고덕동 ㄱ아파트 단지에 택배차량 지상출입을 허용하라고 다시 한 번 요구하고,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택배사가 해당 아파트에 추가운임을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했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아파트가 택배차량의 지상출입을 허용하지 않으면, 이 지역을 배송 불가지역으로 선포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 선포가 어려우면, 해당 아파트에 대해 물건당 택배사가 300∼400원의 추가운임을 받도록 해야 한다”며 “비용은 입주민들이 상당 부분 부담하고, 택배사들도 얼마를 보태는 것이다. (이 요금을 통해) 전동카트 등 대체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이런 논의가 진행될 경우 택배 노동자도 비용을 분담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택배노조는 오는 25일 대의원대회를 열고 파업을 포함한 향후 대응 계획을 논의하기로 했다. 택배사들의 연합단체인 한국통합물류협회 관계자는 “대책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며 “현재로써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박준용 장예지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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