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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암호화폐 광풍…예탁금 두 달새 1.7조서 4.6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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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분기 기점으로 확 늘어

연령별 예탁금 30대·40대 압도적

주식 조정기 들자 자금 옮겨가

작년 상장 코인 230개, 폐지 97개

투자자 보호 법안들은 국회 방치

지난해 초 정년퇴직한 박모(61)씨는 지난 1월부터 암호화폐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여유자금 2000만원을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암호화폐)에 투자했다. 계좌 개설까지는 자녀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후 코인 매매는 스스로 하고 있다.

박씨는 “부동산과 주식의 투자수익이 지지부진해 코인 투자를 시작했다”며 “아직 수익은 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오름세가 이어질 것 같아 당분간 투자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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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라운지 전광 판에 비트코인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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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투자 광풍이 불고 있다. 많은 사람이 암호화폐 투자에 뛰어들며 계좌와 예탁금이 급증하고 있다. 실명계좌는 250만 개를 넘어섰고 투자자 예탁금만 4조6000억원에 이른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위원회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4대 암호화폐 거래소(빗썸·업비트·코인원·코빗)에 개설된 실명확인 계좌 수는 250만1769개다. 2020년 말 실명 암호화폐 계좌 수가 133만6425개였으니, 두 달 만에 2배 수준으로 늘었다.

암호화폐 계좌 두 달새 2배 250만개, 한 달 731조 거래

국내 은행의 실명 확인 계좌를 이용해 암호화폐 거래를 해야 하는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 4곳의 계좌 수만 합산했다. 실명확인 계좌를 이용하지 않는 거래소에서 투자하는 개인은 포함돼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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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암호화폐 투자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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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를 사기 위한 ‘실탄’은 더욱 두둑해지고 있다. 지난 2월 말 기준 거래소 4곳의 투자자예탁금은 4조6191억원으로, 20년 말(1조7537억원)보다 2.5배 늘었다. 계좌보다 예탁금이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1분기(8703억원)→2분기(8856억원)→3분기(9181억원) 등 완만하게 늘었던 예탁금은 지난해 4분기를 기점으로 증가 속도가 가팔라졌다.

예탁금 규모만 따지면 암호화폐 투자 열풍을 주도하는 것은 30~40대다. 연령별 예탁금은 30대가 1조5709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40대(1조2333억원)와 50대(7201억원), 20대(6863억원) 등 순이다. 60대 이상 실버투자자가 쟁여놓은 돈도 2919억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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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투자붐에 급증한 투자자 예탁금.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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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건 투자 대기자금뿐이 아니다. 뜨거워진 시장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거래금액도 급증하고 있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위에서 받은 4대 암호화폐 거래소의 올해 1분기(1~3월) 거래금액은 1486조2770억원이다. 지난해 연간 거래금액(357조3449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거래금액은 1월(292조1236억원)→2월(463조1547억원)→3월(730조9987억원) 등 매달 큰 폭으로 늘고 있다.

하루 거래액도 코스피 시장을 앞질렀다. 암호화폐 정보사이트인 코인마캣캡에 따르면 19일 오후 5시 기준으로 4대 암호화폐 거래소의 일평균 거래액은 25조8561억원이다. 같은 날 기준 코스피 거래대금(15조1722억원)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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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이 주도하는 암호화폐 투자 열풍.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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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투자가 제대로 탄력을 받은 건 연초부터 가격이 오르면서다. 비트코인은 올해 1월 2일 3만3000달러를 넘어선 뒤 지난 14일 6만4000달러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비트코인을 제외한 알트코인의 상승세는 더 가파르다. 도지코인은 최고점이던 지난 16일 45센트에 거래돼 연초(0.47센트)와 비교하면 9500% 상승했다.

반면에 지난해 연말부터 오름세였던 주식시장은 조정기를 겪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지난 1월 25일(3208.9) 최고점을 찍은 뒤 3000~3200을 오가며 횡보를 거듭하고 있다. 그 결과 74조4559억원(1월12일)까지 늘었던 주식시장의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15일 기준 65조6537억원으로 줄었다. 지난 1월 1조2927억원이던 개인의 일평균 순매수 금액(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도 4월에는 200억원대로 줄어들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주식시장에 유입된 개인투자자들은 30~40%의 고수익에 익숙하다”며 “최근 주식시장이 조정기에 들어서자 이들이 상대적으로 고수익의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장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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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거래금액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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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암호화폐로 돈을 벌고 있는데 나만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인 이른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도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 최근 온라인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암호화폐 투자로 수십억원을 벌어 직장을 퇴사했거나 100만원을 수억원으로 불렸다는 투자 성공기가 퍼진 탓이다.

직장인인 정모(37)씨도 ‘포모 증후군’에 최근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했다. 정씨는 주식을 정리해 3000만원가량을 밀크와 메디 등 일반투자자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알트코인에 투자했다. 정씨는 “이미 많이 오른 비트코인으로는 큰 대박을 내기 힘들 것 같다”며 “도지코인만 해도 100배 넘게 올랐는데, 투자한 코인 중 하나만 상승해도 나머지 코인에서 본 손실을 만회하고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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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상장도 상장폐지도 빈번한 암호화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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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빈틈투성이다. 암호화폐 상장은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판단해 진행한다. 지난해의 경우 230개 암호화폐가 새로 상장됐고 97개가 상장폐지됐다. 일본은 금융당국의 화이트리스트 코인 심사를 거쳐야 상장이 가능하다. 김병욱 의원은 “암호화폐 투자자가 늘어난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한 내용을 담은 가상자산 업권법 제정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반면에 가상자산이 자금세탁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자는 데 주안점을 둔 특정금융정보법 외에 가상자산과 관련해 시행이 예정된 법은 내년 1월1일부터 적용되는 소득세법이 전부다. 가상자산으로 얻은 소득 중 250만원을 넘는 금액에 대해 20%의 세금을 거두겠다는 내용이다.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특정금융정보법은 실명계좌 확인 등 자금세탁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투자자 보호와는 무관한 법”이라며 “3년 전부터 투자자 보호 관련 내용을 제도화해 달라고 금융당국 등에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라고 말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과세를 하려면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며 “가상자산 거래를 가치 없는 범죄행위로 취급하면서 세금부터 거둔다니 불만이 폭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1대 국회엔 가상자산과 관련해 거래소 운영자의 자격 규정, 시세 조작과 과도한 수수료 책정 등을 막는 규제, 다단계 등 다중사기범죄 피해 방지 등 10여 개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모두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채 논의다운 논의조차 해보지 못한 상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금세탁이나 투자사기 등 불법행위 단속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암호화폐 전반을 규율하는 법안을 만드는 것 등은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안효성·송승환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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