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7월 꿈나무어린이집 현판식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오른쪽은 고건 당시 서울시장. [사진제공 = 삼성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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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삼성그룹 총수에 오른 1987년. 삼성은 세계 1위 전자 기업도 아니었고, 국내 재계에서도 1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취임 초부터 이 회장은 사회공헌만큼은 초일류가 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회장은 1987년 취임사에서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지금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는 이상으로 봉사와 헌신을 적극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듬해 한 인터뷰에서는 "상속세는 정직하게 계산해야 한다. 선친(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께서는 '살아생전에는 절세도 하고 낭비를 줄여 부를 축적해야 하나, 사람의 최종 마무리는 상속세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국민이 납득할 세금을 내라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삼성 회장 취임부터 지난해 타계까지 이 회장은 33년간 삼성 회장으로서 세계 초일류 기업을 이끈 경영자로 평가받고 있다. 1987년 삼성그룹 전체 시가총액은 1조원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기준 682조원으로 커졌다. 삼성의 자산은 1987년 10조원에서 2019년 803조원으로 793조원 증가했다. 삼성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압도적 1위이자, 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 2강, 스마트폰·TV 점유율 1위에 올라 있다.
28일 발표에 따르면 전체 26조1000억원에 이르는 고인의 유산 중 60%인 약 15조원이 세금, 기증·기부 형태로 사회에 환원된다. '사회공헌은 국민 기대보다 높게, 상속세는 납득할 만큼 정직하게'라는 그의 유지가 지켜진 셈이다. 삼성은 "1987년 이 회장은 '삼성을 세계적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담대한 공언을 했고, 약속을 지켰다"며 "사후에도 그는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다해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을 의미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총수 일가가 상속세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삼성물산에 삼성 계열사 지분을 유증(유언에 따른 증여)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유족은 "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며 절세를 거부했다.
이 회장은 숨 가쁜 글로벌 경영의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기업 시민으로서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2001년 신년사에서 "우리 삼성은 사회와 함께하는 기업시민으로서 더불어 사는 상생의 기업상을 구현해야 한다. 소외된 이웃에게 눈을 돌리고 따뜻한 정과 믿음이 흐르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은 선도기업인 우리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심장질환으로 쓰러지기 직전인 2013년에도 "어려운 이웃, 그늘진 곳의 이웃들이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사회공헌 사업을 더 활발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그는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기업의 사명이라며 의료를 통한 사회공헌에 초점을 맞췄다. 재계는 이 회장을 단순한 박애주의에 기반한 사회 기여가 아닌, 사회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공헌에 고심했던 경영인으로 평가한다. 1994년 세계적 수준의 의료기관인 삼성서울병원을 설립한 일이 대표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고인은 인간 존중과 상생, 인류사회공헌 철학에 기반해 의료 분야 사회공헌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며 "(고인이 살아 있었다면) 전 인류를 고통에 빠뜨린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이 회장의 뒤를 이어 아들인 이 부회장이 인간 존중과 상생철학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회공헌의 역사를 쓸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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