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12조, 미술품·의료 기부 등 4조
편법 끊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지난해 타계한 삼성 이건희 회장은 생전 "상속세는 정직하게 계산해 국민이 납득할 세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삼성 일가는 이런 발언대로 12조원의 상속세를 신고했다. [중앙포토]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상속세는 정직하게 계산해야 한다. (선친 이병철 회장은) 국민이 납득할 세금을 내라고 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 타계 이듬해인 1988년 이건희 회장이 상속인을 대표해 국세청에 상속세를 신고하면서 한 말이다. 어제(2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유족들이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건희 회장이 남긴 유산의 절반가량인 12조원을 상속세로 신고하면서 이 회장이 살아생전 했던 이 발언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큰 금액이지만 유족들은 “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며 이 회장의 신념을 담담히 실현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상속세는 2018년 별세한 구본무 LG 회장 유족의 9215억원이었다. 해외로 눈을 돌려도 2011년 사망한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의 유족이 낸 3조4000억원(70억 달러) 이상을 찾기 어렵다.
창업주로부터 기업을 승계받는 국내 대기업 사주들은 자신들이 만든 공익법인에 주식을 증여하는 식의 편법으로 턱없이 적은 상속·증여세를 내고도 오히려 기업 지배력은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최근 3년간 국내 상속세 합계(10조6000억원)보다 많은 이번 삼성 일가의 막대한 상속세 납부는 이런 논란의 고리를 끊고 기업의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상속세 규모도 놀랍지만 유족들은 이와 별도로 4조원에 달하는 사회 환원을 약속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국보급 국내 고미술품뿐 아니라 단 1점만으로도 전 세계 미술 애호가를 끌어모을 수 있는 모네의 ‘수련’ 등 세계 최고 명작을 망라하는 2만3000여 점의 ‘이건희 컬렉션’(감정가 3조원, 시가 10조원 추정)을 작품 성격에 맞는 각 기관에 기증하는 한편, 의료 분야에도 1조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응(7000억원) 외에도 희귀질환으로 고통받는 어린이에게 3000억원을 지원해 향후 10년 동안 1만7000여 명의 환아가 도움을 받게 됐다.
이건희 회장은 1997년 쓴 에세이에서 “기업 자체가 사회 일원이고, 21세기는 문화 경쟁의 시대가 될 것”이라며 “(기업이) 사회 전체의 문화적 인프라를 향상시키는 데 한몫해야 한다”고 했다. 또 2010년 사장단회의에서는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은 기업의 사명”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의 약속대로 이번 삼성 일가의 기증으로 우리 국민은 동서고금의 문화유산을 즐길 수 있게 됐고,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같은 긍정적 측면과는 별개로 최고 세율(50%)에다 특수관계인 상속 할증(20%)이 붙어 세계 최고 수준인 상속세에 대한 개선 논의는 필요하다. 상속세가 장기적으로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등을 검토할 때다.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