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주로 사용되는 토렌트 프로그램인 ‘뮤토렌트’(μTorrent). 뮤토렌트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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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자신의 집에서 ‘교복.mp4’라는 영상 파일을 내려받은 최모씨(34)는 결국 법정에 서게 됐다. 최씨에게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상 성착취물 소지·배포 혐의가 적용됐다. 지난 29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김래니) 심리로 열린 첫 공판기일에서 최씨의 변호인 김기현 변호사는 “무죄 주장을 심각하게 고민했다”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검찰의 공소 요지와 김 변호사의 변론을 정리해보면 사건은 이랬다. 이 영상은 용량이 2MB(메가바이트)에 40초 길이. 오래 전 촬영된 듯 화질이 좋지 않았지만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성착취물이었다. 최씨는 ‘토렌트’(torrent)라는 일종의 파일 공유 프로그램으로 여러 파일을 받던 중 우연히 이 영상 파일도 받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성착취물 배포 행위를 모니터링하던 경찰 수사망에 포착돼 재판에 넘겨졌다.
“변호를 맡으면서 안쓰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최씨 옆에 앉은 김 변호사는 그가 이 영상이 성착취물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의도적으로 다운받은 것이 아니고, 큰 주의 없이 다양한 파일을 받던 중 의도치 않게 소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운로드와 동시에 다른 사용자에게 파일이 유포되는 토렌트 프로그램의 특성을 최씨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가 토렌트의 작동 방식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자 재판부 3명의 판사들이 질문을 쏟아냈다. “토렌트는 파일을 업로드 하면 포인트가 주어지거나 다운로드 가능한 용량이 늘어나나요?” “파일을 다운 받는 건 결국 어딘가에 파일을 업로드 했다는 것 아닌가요?”
토렌트는 각종 자료를 서버에 업로드 하고 포인트가 주어지는 ‘웹하드’와 달리 영상 등 정보가 담긴 ‘토렌트 파일’을 실행해서 다른 사용자와 연결돼 특정 파일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토렌트 파일을 실행하는 건 내가 내려받는 파일을 다른 이용자가 내 컴퓨터에서 가져갈 수 있도록 놔두는 것과 비슷하다. 성착취물을 토렌트로 내려받았다면 곧 배포 행위도 함께 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검찰은 최씨가 토렌트를 사용한 기간이 짧지 않아 다운로드와 동시에 다른 이용자에게도 공유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또 “토렌트 프로그램을 보면 ‘업로드’라는 표시가 보이고, 프로그램을 설치할 때 이런 내용이 고지돼 동의하지 않을 경우 설치 자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토렌트 프로그램 설치시 ‘업로드 동의’를 확인하는 계약서가 나오는데, 영어로 돼 있는 데다 한참을 읽어 나간 뒤에야 해당 내용(업로드)이 겨우 나온다”며 “수사기록에 첨부된 한글 번역 내용을 봐도 어떻게 작동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최씨에게 징역 3년과 취업제한,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명령을 구형했다. 최씨에겐 지난해 6월 개정된 아청법 조항이 적용됐다. 아청법 11조는 ‘아동·청소년성착취물’을 배포·제공한 경우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최씨가 오랜 무직 생활 끝에 오는 6월 취직하게 됐는데 유죄가 선고되면 취업이 불가능해진다고 했다. 재판 시작 무렵 김 변호사가 “무죄 주장을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 것은 벌금형이 없는 아청법 사건에서 무죄를 주장하면 반성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더 중한 형을 받게 될까 염려가 됐다는 뜻이다.
최씨는 최후 진술에서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은 게 아동 성착취물을 선호하는 어긋난 성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며 “토렌트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는데 제 무지가 여러 명의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재판 후 기자와 만나 “성착취물인 줄 알고 받아서 퍼뜨리면 정말 크게 처벌 받아야 한다”며 “그런데 성착취물인 줄 몰랐고, 공유되는 줄도 몰랐는데 벌금도 없이 징역형이 나올 수 있는 건 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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