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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주민 ‘갑질’로 경비노동자 숨진 지 1년… 달라진 건 없다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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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대책 ‘유명무실’

2020년 5월 노동자 사망에 대책 마련

현장선 여전히 괴롭힘 피해 지속

피해 신고 건수 단 한건도 없고

모범 아파트에 보조금 지급도 ‘0’

노동자측 “실효적 조치 이뤄져야”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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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울한 노동자 없도록… 경비노동자 종합지원책 가동’.

지난해 서울시가 발표한 보도자료 제목이다. 지난해 5월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폭행과 욕설 등 ‘갑질’에 시달리던 경비노동자 최희석씨가 목숨을 끊자 서울시가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당시 서울시는 경비노동자의 고용불안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며 경비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보장해 또다른 비극이 생기는 것을 막겠다고 발표했다.

# “애석하게도 같이 근무할 수 없음을 통보 드립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노원구의 A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노동자들이 받은 문자다. 아파트 단지와 새로 계약한 경비용역 업체가 문자로 해고를 통보한 것이다. A아파트에서 일하던 44명 중 16명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됐다. 해고 통보를 받은 경비노동자들이 경비업체 측에 항의했지만 업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업체는 최근 공고문을 통해 “해고가 아닌 재계약을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지난해 최희석씨가 사망한 뒤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여러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은 1년째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가 아파트 경비노동자에 대한 첫 종합대책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정책들도 현장에선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세계일보

지난 2020년 5월 14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다 주민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최희석씨의 유족이 지난 경비실 앞에서 노제를 지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가 지난해 6월 내놓은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용안정 및 권익보호 종합대책’은 경비노동자 근무 문제에 서울시 차원의 개입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핵심은 ‘고용안정’이다. 서울시는 갑질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이 경비노동자의 고용불안이라고 보고, 아파트 관리규약에 고용승계 규정을 반영하거나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독소조항이 없는 모범단지 등에 보조금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아파트 차원에서 경비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보장하도록 독려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19일 확인한 결과 서울시가 대책 발표 이후 보조금을 지급한 아파트는 단 한곳도 없었다.

서울시 대책에는 ‘서울시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에 경비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업무지시와 폭언·폭행 등 괴롭힘 금지 규정을 신설해 명시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를 위반하면 관할구청에서 행정지도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서울지역 25개 구청에 확인 결과 행정지도는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 구청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와야 행정지도 조치를 하는데 신고가 없었다”며 “경비원에 대한 갑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정책들을 잘 몰라서 신고를 하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구청 공무원도 “준칙을 만들면 단지에서 이를 참고해 관리규약을 만드는데 시간이 지체돼 바로바로 적용이 어려웠던 것 같다”면서 “보조금 지급 역시 서울시 대책에 포함은 됐지만, 구체적 시행 지침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야심차게 내놓았던 대책들이 현장에선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세계일보

경비노동자 측은 서울시에서 만든 규약의 내실화와 제도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안성식 강북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장은 “현재의 규약은 괴롭힘 발생 시 누구에게 신고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고, 신고 이후 조치가 안 될 경우 최소한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는 조항도 없다”며 “A아파트 사례 같은 대량 해고 사태를 막기 위한 입법적 보완도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오표 성북구 노동권익센터장도 “정책을 만든 것은 좋지만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이후 작업들이 진행돼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미흡하다”며 “경비노동자 사망 등의 뉴스가 나올 때 반짝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현장에서도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실효적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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