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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코로나19 백신 접종서 소외된 난민들…“모두의 보건 문제로 이어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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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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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로힝야 운동가가 지난달 1일 인도 수도 뉴델리 남동쪽 국경의 야무나 강변 난민촌에서 난민들에게 새 옷을 나눠주고 있다. 혼잡한 수용소에 살고 있는 수백만 명의 난민들은 코로나19 백신을 기다리고 있다. 뉴델리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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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피해 인도로 온 자비 아스타니크자이(44)는 지난달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기 위해 가족 5명을 데리고 뉴델리에 있는 병원들을 찾았지만 거절당했다. 병원 측은 아드하르(일종의 주민등록증)나 인도 정부가 발급한 신분증을 요구했다. 하지만 자비가 가진 건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발급받은 망명 신청자 카드뿐이다. 자비와 그의 아내는 지난 4월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였지만 병원에 입원할 수도 없었고 돌봄은 아이들 몫이 됐다. “이렇게 무력감을 느낀 적이 없었어요.” 자비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이같이 말했다.

로힝야족 난민인 살리물라(35)는 2013년 미얀마 폭력 사태를 피해 뉴델리로 왔다. 지내던 난민 캠프에 불이 나 지금은 10명가량과 한 텐트에서 지내고 있다. 환경 탓에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상존하지만 캠프에 있는 사람들 그 누구도 백신을 맞지 못했다. 살리물라는 “질병은 차별하지 않는다”며 “우리(난민)가 감염되면 지역 주민들도 감염될 수 있다”고 AP통신에 말했다.

난민·망명 신청자들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에서 소외돼 있으며, 이는 공중보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AP통신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UNHCR 회복력·솔루션 부서의 사자드 말리크 이사는 “난민들은 가장 기본적인 의료나 깨끗한 물에 접근할 수 없어 바이러스가 더 쉽게 퍼질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며 “난민을 보호하지 않으면 공중보건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앞서 UNHCR은 지난 6월24일 난민 인구가 500명 이상인 126개국 가운데 123개국이 코로나19 백신 접종 계획에 난민을 포함했거나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모니터링 대상인 162개국 중 91개국에서 난민과 망명 신청자가 백신 접종을 받기 시작했다고 확인했다. 다만 백신 수급 불균형 등의 문제를 염두에 두고 “전 세계 8240만 강제 실향민의 백신 접근을 제한하는 장벽을 제거하라”고 각국에 촉구했다.

난민과 망명 신청자들이 백신 접종을 받지 못하는 이유로는 절차상 문제가 크다. UNHCR에 따르면 일부 국가는 백신 접종 신청 시 난민에게는 없는 신분증명서를 요구한다. 인도에서도 접종 신청을 하려면 정부가 발급한 신분증 11개 중 하나를 제시해야 하는데, 난민·망명 신청자들에게는 발급되지 않는 서류다. 온라인 신청 시스템 또한 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는 난민들의 백신 접종을 어렵게 한다. 뉴델리의 로힝야 인권 이니셔티브의 창립자이자 이사인 사비르 초 민은 “인도 정부가 UNHCR 카드를 백신 접종에 유효한 신분증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난민 백신 접종의 책임을 대부분 개발도상국인 수용국이나 원조 단체가 지고 있는 상황에서 백신 공급이 부국에 쏠리고 있는 현실도 문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2600만 난민의 85%는 개발도상국에서 살고 있는데, 백신의 약 85%는 부유한 국가들이 관리한다.

국제백신공급기구 코백스 등이 국가 간 백신 수급 불균형을 완화해줄 것이란 기대는 충족되지 않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미얀마와 국경을 접한 캠프에 살고 있는 로힝야 난민 100만여명에게 코백스를 통해 백신을 접종할 계획이었으나, 현재까지 공급받은 양은 할당량의 1% 미만에 그친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난민이 맞는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책임 소재도 남아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예방접종·발병 대응 고문인 미리암 알리아 프리에토는 부작용 책임을 부담하고 싶지는 않다는 입장을 밝혔고, 백신 제조사들은 책임 부담 조건 없이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백신 접종을 떨어트리는 이유다. 유엔 난민협약에 서명하지 않은 인도는 국경에 거주하는 24만명가량의 난민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집권당 의원들은 로힝야 난민을 침입자나 해충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같은 인식은 정책에도 반영된다. 인도 정부는 최근 미등록 이주 노동자나 소외된 집단에 대한 백신 제공을 각 주에 요청했지만, 망명 신청자들에 대한 백신 접종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고 SCMP는 전했다. 한편 몬테네그로와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난민·망명 신청자들 사이에 체포나 추방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있어 백신 접종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WHO는 각국에 난민에 대한 백신 접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들을 건강 상태가 심각한 사람들과 함께 백신접종 두 번째 우선순위에 두라고 촉구했다. 뉴델리의 보건·생명윤리 연구원인 아난트 반 박사는 “정부는 자국민에게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지만, 동시에 아무도 뒤처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백신 접종에서 누군가가 배제된다면 바이러스가 모든 시민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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