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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안창림 동메달의 나비효과… “재일 조선학교 돕자" 후원 릴레이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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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림 “조선학교 관심” 독려에 네티즌 화답

관련 시민단체 ‘몽당연필’ 후원 회원 급증

일본 정부 차별·‘혐한’ 위협에 위기 겪기도

세계일보

지난 7월 26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무도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유도 남자 73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안창림이 루스탐 오루조프(아제르바이잔)를 상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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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종료 17초 전. 안창림(27)과 루스탐 오루조프(아제르바이잔)가 엉겨 붙었다. 오루조프가 안쪽으로 파고들면서 안창림의 어깨를 잡았다. 안창림은 오루조프의 팔을 잡고 그대로 업어 메쳤다. 심판이 절반을 선언했다.

지난달 26일 도쿄 일본무도관에서 열린 유도 남자 73㎏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안창림은 생애 첫 올림픽 메달을 따냈다. 1라운드부터 준결승까지 4경기 연속으로 연장 혈투를 펼치며 체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안창림의 투혼은 동메달이라는 값진 결실 외에 뜻밖의 화제를 낳았다. 안창림이 과거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공개한 사진이 갑자기 주목받으며 네티즌들이 빠르게 공유한 것이다. 사진 속 그는 유도복을 입은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네티즌 관심 끈 한 장의 과거 사진은?

사진을 올린 2019년 10월 21일 안창림은 “일요일에 도쿄 조선중고급학교에서 유도교실이 있었다”며 “앞으로도 조선학교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어 “일본에는 조선학교가 많이 있다. 조선학교에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독려도 덧붙었다. 안창림 본인 역시 일본에서 조선초급학교(한국의 초등학교에 해당)를 졸업했다.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이하 몽당연필)’에 후원의 손길이 늘어난 것은 그 이후다. 몽당연필은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붕괴된 조선학교를 도우려 모인 이들이 시초다. 처음에는 임시 단체였지만, 이후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면서 상설 단체가 됐다. 올해로 벌써 10년 차다. 배우 권해효 씨가 대표를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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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몽당연필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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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기자가 찾아간 몽당연필 사무국 사무실은 분주했다. 동메달을 획득한 안 선수의 사진이 화제가 된 후 정기 후원자가 하루 평균 100명 가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 달에 30명꼴이었던 평소 증가세와 비교하면 깜짝 놀랄만한 숫자다. 기존 후원 회원들이 주로 40~50대층이었던 것과 달리 10대부터 20대까지 골고루 분포됐다는 것도 특이했다.

김명준 몽당연필 사무총장은 애써 차분한 태도를 취했다. 한껏 고무된 활동가들을 “흥분하지 말라”며 타일렀다. 김 사무총장은 “갑자기 후원이 늘어나면 걱정부터 한다”며 “조선학교의 배경과 역사를 모르고 후원했다가 뒤늦게 후원을 취소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며칠 전 ‘한국인이 왜 북한 학교를 지원해야 하느냐’는 항의 메일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적은 북한 국적? 조선학교는 북한 학교?

조선학교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적 재일동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선적이 곧 북한 국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적은 일제의 패망 이후 일본에 들어선 미군정이 재일 한인들에게 부여한 임시 국적이다. 1948년 대한민국 단독정부가 수립되기 1년 전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적 동포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된 것은 1950년부터다. 1965년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한국 국적을 가진 이들은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그러나 일부는 여전히 조선적을 고수했다.

조선적 동포 중에는 북한계인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들이 상당수 있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존재한다. 분단된 조국을 인정하지 않거나, 북한에 친인척이 있어 왕래가 필요해 사실상 무국적 상태로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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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히로시마 고등재판소가 고교 무상화 대상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한 처분의 취소를 요구한 2심 소송에서 원고 측 청구를 기각하자 학부모와 지원단체 인사들이 '차별반대'를 외치며 재판부를 규탄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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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희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는 “재일 동포의 역사는 분단 이전부터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분단에 대해 느끼는 감각은 한국인과 다를 수밖에 없다”며 “남이냐 북이냐 하는 흑백논리로 재일 동포들을 바라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 내에서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약 3만명이다.

◆일본 정부 차별에, 혐한 위협에…위축되는 조선학교

이 같은 역사를 겪은 재일 동포들은 조선학교를 만들었다. 해방 후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만들었던 ‘국어강습소’가 시작이 됐다. 2019년 5월 현재 일본 전역에 총 64개교가 운영 중이며 약 7000명이 재학 중이다.

조선학교가 ‘북한이 만든 학교’라는 오해를 받는 것은 과거 북한의 교육방침을 어느 정도 수용한 탓이다. 북한은 1957년부터 조선학교에 매년 1억엔 규모의 교육 원조를 해왔기 때문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의 조선학교 교과서는 북한과는 차이가 있다. 학생들이 일본에 정착할 수 있도록 일본의 지리와 역사, 경제 과목을 정규 교과로 배운다. 일본 정부의 방침을 거스르는 교육 내용도 있다.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어와 역사, 사회 등의 과목은 별도로 가르치는데, 여기에는 위안부와 강제노역, 독도 문제가 포함된다.

안창림과 같이 한국 국적 재학생이 전체의 60%가 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일본으로 귀화한 한국계 가족의 자녀가 우리말을 배우기 위해 조선학교에 입학하는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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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선학교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운영비를 수업료와 후원으로 충당하는데, 학생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로부터의 노골적인 차별도 있다. 2013년 고교 수업료 무상화 정책에서 제외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일본은 조선학교를 ‘각종학교’, 즉 직업 전문학교로 분류한다. 무상화 정책에서 제외된 각종학교는 조선학교가 유일하다.

소액 보조금을 지원했던 지방자치단체들도 지급을 끊는 추세다. 2009년 총 8억4000만엔이었던 지원 규모는 10년 뒤인 2019년 2억960억엔까지 줄어들었다. 지난 5월 히로시마에 있는 한 조선학교가 에어컨을 설치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때로는 ‘혐한’의 타깃이 되기도 한다. 2009년 12월 교토 조선제1초급학교 앞에 우익단체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재특회)’ 관계자 등 10여명이 몰려들어 1시간 동안 가두시위를 벌였다. 당시 이들을 “총코(한국인에 대한 멸칭)”, “북조선 스파이 양성기관”, “김치 냄새 지독하다”며 학생들을 위협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이 학교는 안창림의 모교다. 사건 당시 안창림의 친동생이 재학 중이었다.

한국에서도 조선학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경계인으로서의 ‘조선인’은 여전히 낯선 존재다. 마음을 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안창림 SNS를 보고 후원을 시작했다는 A씨는 “그들은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중 하나를 택해 조선인이 된 게 아니다”라며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차별을 겪어온 조선인들을, 북한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단순히 부정적으로 보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백준무 기자 jm10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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