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한미연합훈련의 사전 연습이 예정대로 시작되자 북한은 이날 오후 군 통신선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채널을 통한 정기 통화에 응답하지 않았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오전 담화문을 통해 남측과 미국을 비난한 직후 불만을 행동으로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김 부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과 남조선군은 끝끝내 정세 불안정을 더욱 촉진시키는 합동군사연습을 개시했다"며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김 부부장은 또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자멸적인 행동"이라며 "거듭되는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강행하는 미국과 남조선 측의 위험한 전쟁 연습은 반드시 스스로를 더욱 엄중한 안보 위협에 직면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통일부는 이날 "오후 5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마감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도 "동해지구와 서해지구 군 통신선에서 오늘 오후 4시 정기 통화가 모두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9시 정기 통화는 정상적으로 진행됐으나 오후 들어 다시 모든 연락이 끊긴 것이다.
[한예경 기자 / 연규욱 기자]
김여정 "한미, 반드시 대가 치를것"…반나절만에 연락두절
北, 남북통신선 다시 차단
"김정은 위원장의 뜻" 강조
무력시위 가능성도 배제못해
"미군 있는한 한반도 정세 악화"
주한미군 철수 무리한 요구도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한미연합훈련을 비난하는 담화를 낸 10일 파주시 접경 지역에서 남북 군 초소가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이충우 기자] |
한미연합훈련 사전 연습 개시일인 10일 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명의 담화를 통해 강하게 반발하면서 통신연락선 복원 이후 조성된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가 다시 얼어붙을 위기에 처했다. 담화 수위를 고려하면 한편으로는 대화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둔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남북, 미·북 관계 교착 상태가 당분간 지속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날 북한은 지난달 27일 13개월 만에 복원한 남북 연락통신선을 다시 차단했다.
이날 김 부부장은 "나는 위임에 따라 이 글을 발표한다"며 이번 담화가 사실상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뜻임을 시사하면서 발언에 무게감을 더했다.
27일 통신연락선이 복원됐을 당시 '남북 정상 간 신뢰관계'를 명분으로 내세운 북한 입장에서 이번 연합훈련으로 인해 관계 개선의 기회가 사라질 수 있음을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북한은 오후 4시 동·서해지구 군통신선을 이용한 정기 통화와 오후 5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간 마감 통화에 모두 응답하지 않았다. 김 부부장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자멸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한 만큼 추가적인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미국을 크게 자극하지는 않겠으나 한국을 위협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나 건조가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진 신형 잠수함 진수식 등 중저강도 무력 도발 가능성이 거론된다.
의아한 부분은 김 부부장이 주한미군 철수를 간접적으로 요구했다는 점이다. 김 부부장은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조선반도 정세를 주기적으로 악화시키는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주한미군 주둔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모두 용인한 사안이다. 김 부부장이 다소 뜬금없이 '주한미군 철수'를 무리하게 요구한 것은 중국 입장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지난 6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영상으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서 한미군사훈련 반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한 바 있다. 대화 국면에 나서기 전 미·중 갈등 속에서 혈맹이자 든든한 후방 격인 중국의 전략적 입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부부장이 "조선반도에 평화가 깃들자면 미국이 남조선에 전개한 침략무력과 전쟁장비부터 철거해야 한다"고 말한 대목과 궤를 같이한다. 여기서 '전쟁장비'는 북한이 꾸준히 문제 삼아온 F-35 등 첨단무기뿐 아니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다만 이날 김 부부장은 한미연합훈련에 대응할 향후 보복 조치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지난 3월 전반기 한미연합훈련이 진행됐을 당시 "북남 군사 분야 합의서도 시원스럽게 파기해버리는 특단의 대책까지 예견하고 있다"고 경고한 것과는 대비된다. 이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판을 깨려는 의도는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할 때 쓰는 표현인 '남조선 당국자'가 아닌 '남조선 당국자들'을 향해 유감 표명을 한 점 역시 수위 조절 차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간 김정은 위원장이 줄곧 천명해오던 '핵억제력' 대신 '억제력'이란 말을 사용한 점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김 부부장 담화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담화의 의도나 북한 대응에 대해 예단하지 않고 북한의 태도를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문 대통령에게 김 부부장의 담화를 보고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기존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북한 입장을 반복한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지만 남북 통신선 복원 이후 대화 무드가 기대됐던 남북관계에 불똥이 튈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본격적인 후반기 연합지휘소훈련(21-2 CCPT)에 앞서 우리 군이 이날 개시한 위기관리참모훈련(CMST)은 본 훈련의 사전 연습 격이다. 북한의 공격 징후가 임박하거나 국지 도발을 감행하는 등 전면전으로 확전되기까지 상황을 상정해 우리 군의 대비 태세를 점검하는 훈련으로, 실병 기동 없이 참모들 간 의사소통으로 이뤄지는 훈련이다. 본 훈련인 후반기 연합지휘소훈련은 16~26일로 예정돼 있다.
[임성현 기자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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