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현지시간) 탈레반을 피해 아프간의 수도 카불 국제공항에 몰려든 시민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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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을 벗어나려는 시민들의 탈출 행렬이 ‘난민 대란’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현지 구호단체들은 공항이 폐쇄되기 전에 아프간인들을 1명이라도 더 구출하기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공항 대혼잡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잇따르면서 미국이 애초 계획했던 대규모 아프간 난민 공수 작전은 차질을 빚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16일(현지시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수천명의 인파가 몰리면서 최소 7명이 사망했다. 미군은 무장한 채 공항에 접근한 남성 2명을 사살했다고 미 고위관리가 CNN에 밝혔다. 미군 장병 한 명도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전날 탈레반이 수도를 장악하면서 공포에 질린 탈출 인파가 이른 아침부터 공항 활주로를 메웠고 일부는 출발하려는 미군 항공기 바퀴에 매달렸다 추락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미군이 통제 중인 카불 국제공항은 항공기 이동과 공항 업무를 일시 중단했다가 16일 밤 재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국방부를 인용해 17일 오전까지 약 3000명의 미 해병대가 공항 지상 통제 업무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쿠웨이트로 배치 예정이었던 병력 1000명도 카불로 이동시키는 등 이번주 후반까지 6000명의 미군이 공항 보안에 투입될 예정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카불이 함락되면서 미군 철수와 함께 아프간 난민들을 순차적으로 대피시키려던 미국의 계획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미군 철수가 본격화된 후 지난 달 말 2500명의 아프간 이민자들이 미국 땅을 밟았고 연말까지 공수가 이어질 계획이었다. 그러나 공항 혼잡과 업무 중단에 따라 아프간 특별이민비자(SIV) 발급도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앞서 미국은 통역사, 변호사, 인권단체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약 1만 8000건의 특별비자 발급을 진행 중이었다고 알려진다.
그간 미국은 “지난 20년 간 아프간에서 미국을 도와왔던 파트너들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는 방침에 따라 아프간 난민들을 미국 사회에 정착시키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2008년 이후 SIV 프로그램으로 7만여 명이 미국에 정착했다고 한다.
올해 4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간 미군 완전 철수를 공식화 한 이후 미 의회도 특별비자 프로그램 확대를 추진해왔다. 상ㆍ하원은 초당적으로 아프간 난민들의 정착을 돕기 위한 추가 예산 11억 2500만 달러(약 1조 2800억원)을 지난 달 통과시키기도 했다. 최우선 이주 대상에는 2001년 10월 발발한 미국ㆍ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에 동조해 탈레반 축출을 도왔던 북부 동맹 세력이 대거 포함됐다.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이상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는 과거 탈레반 정권이 여성들에 대해 가혹한 규제를 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여성·아동들을 도와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다.
문제는 탈레반의 카불을 포함한 주요 도시 장악 속도가 이보다 더 빨랐다는 것이다. 마비된 카불 공항이 정상화되더라도 아프간 난민들이 언제까지, 얼마만큼 공항을 통해 빠져나갈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프간 수도 카불 국제공항에서 수백명의 인파가 16일(현지시간) 미 C-17 수송기 주변을 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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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구호 단체들은 전세기를 카불 공항으로 보내 현지 직원 등을 데려오려고 시도해왔지만 비용도 막대한 데다 현지 공항 안전이 보장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 분위기다. WP에 따르면 몇몇 자산가들은 구출 지원을 위해 개인 소유의 전용기를 제공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뉴욕 기반의 인권 운동가 아메드 칸은 16일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탈레반의 살생부에 올라 있는 10만 명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카불에 미군을 보낼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상황이 악화하자 미 정부는 지난달부터 카타르 등 아프간 주변국이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에 아프간 난민들을 수용해줄 것을 물밑에서 요청해왔다.
알바니아·코소보 등 일부 국가는 이미 비자가 없어도 아프간인들을 받아들인다는 방침을 밝혔다. 알바니아의 에디 라마 총리는 지난 15일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알바니아의 전통”이라며 “미국을 최종 목적지로 하는 아프간의 다수의 정치 이민자들에게 중간 장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소보 측도 미국의 특별이민절차를 밟는 아프간인들이 머물 곳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아프리카의 우간다도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아프간 정부 관계자 등 약 2000명을 3개월 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시리아 내전 당시 100만명 이상의 이민자들에게 국경을 개방했던 독일에서도 “아프간 난민을 데려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6일 당 비공개 회의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최대 1만명을 긴급대피시켜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메르켈 총리는 “우리는 어려운 시기를 목격하고 있다”며 “탈출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아프간 접경 국가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군은 현재 아수라장이 된 카불 공항에서 자국민을 탈출시키기 위해 특수부대를 투입한 상황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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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독일에선 난민 포용정책을 둘러싸고 격한 갈등이 있었던만큼 정치권이 앞장서 총대를 메긴 꺼리는 분위기다. 파울 치미아트 독일 기민당(CDU) 사무총장은 “2015년의 포용적 정책으로 아프간 상황을 해결하기는 어렵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과감한 난민 포용 정책으로 유럽의 리더 역할을 톡톡히 했던 메르켈 총리는 오는 9월 퇴임을 앞두고 있다.
한편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0년 전 아프간 전쟁을 결정했던 조지 W.부시 전 미 대통령도 성명을 내고 난민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전날 성명에서 “미 정부는 긴급한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서 난민을 위한 형식적 절차를 생략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갖고 있다”며 “우리는 행정적인 지연 없이 난민의 안전한 이동을 보장할 책임과 자원이 있다”고 밝혔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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