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관한 대국민 연설을 한 다음 퇴장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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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기도 전 아프간 정권이 붕괴하면서 미국인들이 허겁지겁 탈출해야 하는 사태를 두고 미국 전·현직 대통령과 고위 당국자들의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올해 5월 1일까지 모든 미군을 철수키로 탈레반과 합의함으로써 실패의 씨앗을 뿌렸다고 비판한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계획은 완벽했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망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는 앞으로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공방이 벌어질 사안으로서 내년 말 중간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탈레반과 지닌해 2월 맺은 합의를 자신이 미군 철수를 서두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올해 5월1일까지 아프간 주둔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합의한 상태에서 정권을 물려받아 합의를 따르느냐 아니면 합의를 깨고 탈레반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추가 파병을 하느냐의 협소한 선택지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14일 발표한 성명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기간 탈레반이 2001년 이후로 가장 강력해졌음에도 그가 아프간 주둔 미군 병력을 2500명으로 감축해버린 상태였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아프간 상황이 악화되자 10여 건의 성명을 발표하며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 그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이 민간인이나 우리나라에 조력한 이들을 구출하기 전에 군인을 먼저 빼낸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느냐”라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이른 철군을 지적했다. 그는 전날 발표한 성명에서는 최근 아프간에서 벌어진 사태를 두고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패배 중 하나로 남을 것”이라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했다.
존 랫클리프 전 국가정보국장(DNI), 채드 울프 전 국토안보부 장관, 키스 켈로그 전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등 트럼프 정부 고위 당국자들도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과거와 지금의 차이는 리더십”이라면서 “바이든 정부가 실패의 책임을 모두 져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라면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사이의 평화협상이 성사되기 전에 군대를 빼지는 않았을 것이란 주장이었다.
양측의 공방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 이번 사태의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우선 바이든 대통령은 전 정부의 철군 협약을 핑계로 삼았지만 자신도 아프간 철군을 공약했다. 게다가 아프간에 일정 수준의 군대를 잔류시켜야 한다는 군부의 의견도 묵살했다. 또한 아프간군이 이처럼 빨리 무너질지 몰랐다며 오판을 스스로 인정한 상태다.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비용만을 이유로 탈레반과 아프간 주둔 미군 철군에 합의한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 전직 관료는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여러 면에서 트럼프가 시작했고, 바이든은 그것을 이행했다”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4월 이미 설정됐던 철군 시한인 5월1일 대신 9·11테러 20주년이 되는 9월11일을 새로운 철군 시한으로 제시하자 “더 빨리 철수해야 한다”며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바이든 정부가 철군을 너무 서둘렀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 참모들의 비판이 무색해진다.
트럼프 정부에서 경질된 마크 에스퍼 전 국방장관은 두 대통령 모두에게 과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두 대통령은 모두 장기간의 아프간 주둔을 끝낸다는 올바른 목표를 가졌다”면서 “그렇지만 두 사람은 모두 그 목표를 올바른 방식으로 추구하는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이 미국과 동맹국 군대가 뒤받침하는 가운데 조건에 기반한 정치적 합의를 이룬 다음 철수를 진행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스퍼 전 장관은 “우리는 이런 계획이 있었지만 두 대통령은 이 절차를 포기하고 임의적인 시간표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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