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전세자금 대출 중 '우리전세론'의 한도가 다 찼다며 이 대출을 오는 9월 말까지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한도가 찬 주력 전세대출 상품이 한 달여 동안 멈춘 것"이라며 "청년 맞춤형 전·월세대출 등 서민형 대출상품은 기존처럼 대출이 진행된다"고 밝혔다.
이 은행은 분기별로 부동산 관련 대출액을 관리하는데 지난 1분기에도 전세대출 한도가 소진된 바 있다. 3분기에 기존 대출 신청 중 취소가 나오면 그 금액만큼은 대출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SC제일은행은 지난 18일부터 일부 부동산 담보대출을 중단했다. 농협중앙회는 현재 60%인 주택담보대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한도를 40~50%로 낮추고, 집단대출 신규 승인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우대금리도 최소 0.2%포인트 깎이면서 이자 부담이 커졌다. 앞서 총량 규제를 지키지 못한 카카오뱅크도 신용대출에 대해 연봉 이하로 대출 한도를 낮출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이 은행들의 가계부채 증가율을 획일적으로 규제하고 한도가 찬 은행들이 몸 사리기에 급급한 결과다.
[윤원섭 기자 / 문일호 기자]
당국 어설픈 규제에 은행 과잉반응…대출 끊기자 고객들 '멘붕'
은행 대출중단 파문 확산
우리은행·SC제일은행까지
사상초유 대출중단 이어지자
"대출 막히기전 미리 받자"
다른은행으로 가수요 몰려
금융위, 농협과 3주째 면담
금감원, 협회에 "대출 줄여라"
농협중앙회 DSR 40%로 축소
집단대출 승인 전면 중단키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결혼을 앞둔 30대 직장인 A씨는 20일 주택담보대출을 알아보기 위해 NH농협은행을 방문했다가 대출을 거절당했다. 은행 직원은 오는 24일부터 주담대가 전면 중단되기 때문에 대출 신청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A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농협은행 지점도 방문했다. 이곳에서 A씨는 23일까지 주담대를 신청하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농협은행을 비롯해 시중은행들이 잇달아 대출 중단을 선언하고 있다. 농협은행 등 일선 창구에 안내 문의가 쇄도하는 가운데 지점마다 안내 내용도 달라 금융소비자들이 극심한 혼선을 빚고 있다.
농협은행뿐만 아니라 우리은행과 SC제일은행 등 다른 은행까지 대출을 중단하면서 대출 수요자들 입장에서는 계획하고 있던 대출을 받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은행 대출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주요 원인으로는 금융당국의 천편일률적인 가계부채 관리 방식과 은행들의 과도한 대응이 꼽힌다. 이날 시중은행 일선 창구 곳곳에서는 혼돈스러운 모습이 연출됐다. 우리은행 창구를 찾은 B씨는 "전세대출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중단한다고 해서 황당하다"면서 "만일 돈을 구하지 못해 거리에 내쫓기게 되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농협은행은 시중은행 연간 대출 증가 목표치를 넘어서면서 대출을 조인 셈이지만 우리은행은 당국이 제시한 연간 목표치를 지켰음에도 자체 목표치에 맞추기 위해 전세대출을 일시 중단해 대출 수요자들의 불만을 샀다. 금융당국과 은행들은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5~6%로 잡고 있지만 농협은행은 올 들어 7개월 동안 가계대출 증가율이 7.1%에 달했다.
반면 우리은행을 비롯해 다른 시중은행들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같은 기간 2%대에 그쳤다.
농협은행에 이어 우리은행까지 대출을 중단하면서 시중은행은 물론 보험사,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대출 중단 사태가 확산될 것이란 예상까지 나온다.
카카오뱅크는 당국에서 중금리 대출 확대 사명을 받아 이를 늘리고 있었지만 최근 다른 시중은행처럼 신용대출 한도를 낮추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신용대출 한도를 차주의 연소득 이내로 제한하면서 이를 기준 삼아 대출 한도를 낮추려는 것이다.
SC제일은행도 담보대출 상품인 '퍼스트홈론'의 신잔액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금리 연동 상품의 신규 취급을 중단했다. 은행들이 속속 대출을 중단하자 대출 수요자들은 저마다 대출이 막히지 않은 곳으로 이동하는 모양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농협처럼 대출이 중단되는지 확인하는 전화가 왔다"며 "일부 은행만 대출을 막으면 다른 은행으로 쏠려 대출 한도가 넘기 때문에 다른 은행도 예의 주시 중"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의 연쇄적인 대출 중단이 이어지자 대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가수요가 몰리는 분위기다. 대출이 완전히 막히기 전에 미리 대출을 받아놓자는 심리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농협은행을 방문한 C씨는 "은행 직원에게서 주담대 외 다른 대출 규제가 또 생길 수 있으니 일단 신용대출이라도 신청할 것을 권유받았다"며 "바로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만일 가수요가 몰리면 금융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가계부채 관리는 오히려 실패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은행들은 대출을 중단하는 이유로 무엇보다 금융당국의 강력한 가계부채 압박을 꼽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당국이 천편일률적으로 대출 총량 규제를 하는 것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정책이고 이에 대해 대출 중단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은행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모든 대출이 아닌 대출별로 구분하는 등 전략적으로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대출 총량 규제는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국에 적절한 정책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은행들 역시 갑자기 대출을 중단하는 건 대출이 필요한 수요자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여전히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대출을 억제하라고 압박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농협은행과 농협중앙회 대출 담당자를 불러 대출 축소를 요구하고 향후 계획을 제출받았다. 금융위가 두 금융사를 부른 것은 지지난주와 지난주에 이어 세 번째다. 매주 면담을 통해 대출을 관리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농협중앙회는 이 자리에서 오는 23일부터 주담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한도를 60%에서 40~50%로 낮추고, 집단대출 신규 승인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농협은행이 지난 19일 주담대를 전격 중단하자 농협중앙회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이다.
농협중앙회는 조합별로 규모가 다르고 상황이 달라서 일괄적으로 DSR 한도 축소 기준을 정하기 어렵지만 40~50%로 하향 조정할 방침이다.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1118개 지역 농·축협에 페널티를 줄 수도 있다. 금융위가 농협은행·농협중앙회를 문제 삼은 이유는 유독 두 곳의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상반기 가계대출이 63조원 늘었는데 27%가 농협은행과 농협중앙회 부분"이라며 "7월은 물론 8월 초까지도 가계부채가 꺾이지 않고 있어 관리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앞서 18일 은행연합회 등 금융 유관 협회 회장들에게 전화해 대출 관리를 요청한 바 있다. 금융감독원은 20일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대출 담당자를 불러 가계부채가 심상치 않으니 관리에 총력을 기울여 달라고 요청했다.
[윤원섭 기자 / 문일호 기자 / 한상헌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