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인도·중앙아시아 잇는 교역 거점
영-러 아프간서 그레이트 게임 벌여
긴장하는 중국, ETIM 신장 지원 촉각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와 탈레반의 정권 장악으로 국제정세가 긴박한 가운데, 열강이 발을 들였던 전략적 요충지가 조명받고 있다. 특히 탈냉전 이후 'G2'를 형성한 미·중의 경쟁이 군사·안보 전략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면서 지정학적 거점 확보는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세계 주요 전략 요충지인 아프간, 쿠바, 베트남, 크림반도, 시리아 등 5곳을 상,하편으로 나누어 되짚어 본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궁을 접수한 탈레반 무장 대원들이 대통령 집무실을 차지한 모습.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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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무덤'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이 돌아왔다. 이들에겐 권토중래다.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 이전까지 한반도 면적의 세배(약 65만㎢)에 이르는 땅을 철권통치했다. 그래봤자 5년이다. 이슬람 수니파 무장급진세력인 탈레반은 1994년 아프간 내전 중에 결성돼 1996년 9월 당시 라바니 정권을 전복시키며 권좌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이를 1919년 독립 이래 네번째 정권 교체로 분류한다.
20세기 초 영국의 보호국이었던 아프간은 바라크자이 왕조(1823~1973년)가 독립국가로 출범한 이래 ①아프가니스탄 공화국(1973~1978년) ②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1978~1992년) ③이슬람 무자헤딘 연합 라바니 정부(1992~1996) ④탈레반 1기 ⑤친서방 이슬람 정부(2001~2021)를 거쳤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카불 민주정부를 20년 만에 축출하면서 '탈레반 2기'는 독립 이후 여섯번째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왜 이렇게 땅 주인이 자주 바뀐 걸까. 그만큼 모두가 탐내는 '알짜 요충지'라서다. 이란 대평원의 동쪽 끝과 히말라야 산맥을 연결하는 이 지역에선 수천년 전부터 동·서양 문명이 교차했다. 중동과 인도, 중앙아시아가 만나고 흩어지는 점이지대이기도 하다.
아프가니스탄 힌두쿠시산맥 앞에 방치된 옛 소련제 전차.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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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준한 산지와 혹독한 기후, 주민들의 거센 저항이 부담스럽긴 해도 이곳을 넘지 않고서 제국의 팽창이 어려웠다. 외세 침략과 맞물려 지배세력이 바뀌는 역사 속에 기층 백성들의 고난이 되풀이됐다.
제국주의 시대 맞붙은 열강은 영국과 러시아다. 이들은 19~20세기 아프간 지역 주도권을 놓고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을 벌였다. 당시 아프간은 이란으로부터 떨어져나와 이슬람 왕조국가(두라니·바라크자이 왕조)를 성립하고 있었다. 영국은 인도 이권의 사수를 위해, 러시아는 부동항을 얻기 위한 남하 정책상 아프간에서 패권 다툼이 불가피했다.
영국은 아프간을 친영국 완충지대로 만들기를 원했다. 제1차(1838~42), 제2차(1878~80), 제3차(1919)에 걸쳐 공격에 나섰다. 특히 약 1만6000명의 영국군이 투입된 1차 전쟁에서 대영제국은 치욕적인 패배를 맛봤다. 병력 전원이 사망하고 동인도회사 소속 외과의사 한명만 살아남아 귀환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에미르(토후)를 두고 불곰(러시아 제국)과 사자(대영 제국)이 으르렁거리고 있다. 인도로 가는 통로인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그레이트 게임이 벌어졌다. [사진 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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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전쟁 끝에 영국은 와칸 회랑(Wakhan Corridor)을 완충지대로 두는 국경을 완성하고 아프간 동쪽 일부를 영국령 인도(파키스탄 지역)에 편입시켰다. 하지만 끈질긴 저항으로 영국의 침략을 물리친 아프간은 1919년 독립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 왕국을 세웠다.
아프간 군주정은 1973년 7월 국왕의 사촌인 무함마드 다우드 칸 총리가 일으킨 쿠데타로 전복됐다. 이로 인해 친소 공화정(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이 들어섰는데 이것이 또 다른 외세 침략의 계기로 작용했다.
소련은 아프간을 중동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길 원했다. 중소국경분쟁을 이용해 미국이 중국과 화해하면서 외교적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1979년 12월 소련은 친소 정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아프간을 침공했다.
사회주의 정부(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를 세우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슬람 무장세력 무자헤딘(전사들)의 저항에 직면했다. 결국 10년간 840억 달러(약 99조원)의 전쟁비용을 쏟아붓고 병력 5만 명을 잃은 채 1989년 2월 아프간을 떠났다. 일각에서는 이 전쟁이 소비에트연방 붕괴의 방아쇠를 당겼다고 분석한다.
아프가니스탄 와칸회랑.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2001년 9·11 테러 직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아프간에 발을 들였던 미국도 '제2의 베트남전쟁'이란 치욕 속에 물러났다. 미국이 전쟁비용 2조 달러(한화 약 2356조원)를 쏟아부은 아프간 전쟁은 20년을 버틴 탈레반 세력의 재집권으로 막을 내렸다.
이제는 중국이 긴장하고 있다. 중국은 아프간 동쪽 끝에 꼬리처럼 삐져나온 와칸회랑을 경계로 아프간과 76㎞ 국경을 맞대고 있다. 남북 16~22㎞, 동서 350㎞의 길쭉한 계곡인 와칸회랑은 위로는 타지키스탄, 아래로는 파키스탄과 맞닿았는데 동쪽 끝이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와 연결돼 있다.
탈레반에 자극 받은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이 이를 침투해 위구르의 독립을 지원하는 것은 중국에게 상상조차 하기 싫은 악몽이다. 미국이 물러간 뒤 이들의 총구는 어디로 향할까. 아프간 화약고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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