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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달러 바닥나고 최악 인플레…"아프간, 빵 사기도 어려워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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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게 함락된지 일주일만에 아프간 화폐 가치가 7.5% 하락했다. 사진은 아프간 남자가 아프가니 지폐를 들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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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의 경제가 파탄 위기에 직면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미국 달러 고갈, 아프간 화폐(아프가니) 가치 하락, 초(超) 인플레이션이 겹쳐 최악의 금융위기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다.

2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미 빈곤한 아프간이 더 큰 경제적 어려움에 들어섰다"면서 "재앙적인 ‘퍼펙트 스톰’(동시에 발생한 크고 작은 악재로 인한 초대형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매체는 "탈레반이 시중에 현금을 투입하지 않으면 곧 일반 시민들은 물가 폭등으로 카불 거리에서 빵조차 사먹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외원조·송금 멈추고 국제사회 돈줄 막아



아프간에 현금이 고갈된 것은 해외 원조와 송금을 통한 달러 유입이 멈췄기 때문이다. 미국 아프간재건감사관실(SIGAR)에 따르면 아프간 예산 중 미국 등의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80%에 달했다. 해외원조가 국민총소득(GNI)의 22%에 달할 정도로 원조 의존적인 국가다. 지난해 해외 거주자들이 아프간으로 송금한 액수는 연간 8억 달러(약 9400억원)로 국내총생산(GDP)의 4%에 이른다.

국제사회도 서둘러 탈레반 돈줄 죄기에 들어갔다. 미국 정부는 아프간 정부가 미국에 보유하고 있는 중앙은행 자산 90억 달러(약 10조5700억원)에 대한 탈레반의 접근을 차단했다. 이와 별개로 국제통화기금(IMF)은 "탈레반 치하 아프간이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지되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아프간에 배정될 예정이던 4억5000만 달러(약 5287억원)의 특별인출권(SDR) 배정을 중단했다. SDR은 IMF 회원국이 위기 시에 미국 달러, 유로화,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 영국 파운드화 등으로 교환해 외화 부족에 대비하도록 부여한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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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ATM가 앞에 줄을 선 아프간 사람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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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중앙은행 총재 "두자릿수 인플레 이어질 것"



해외로 도피한 아프간 전 중앙은행 총재 아즈말 아흐마디는 지난 20일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은 현재 아프간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정확한 분석과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며 "탈레반이 아프간을 통치하는 데 경제 문제가 가장 큰 난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앞서 자신의 트위터에 "아프간의 외환 보유액은 총 90억 달러이며, 이중 70억 달러(8조2250억원)는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보유하고 있다. 탈레반이 이용할 수 있는 자금은 전체 외환의 0.1~0.2%"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또 "아프간의 모든 달러가 동결된 국제 계좌에 있어 현재 아프간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달러를 지급하지 못한다. 고객은 달러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고도 전했다.

시중에 달러가 마르자 아프간 화폐 가치는 급격히 하락했다. 금융정보회사 레피니티프에 따르면 카불 함락 직전 1달러에 80아프가니 수준이던 환율이 현재 86아프가니에 거래되고 있다. 일주일만에 아프가니 가치가 7.5%나 떨어진 셈이다. 인플레 압력도 높아졌다. 카불의 유엔세계식량계획 관계자는 "전쟁에 가뭄까지 겹쳐 밀 가격이 지난 5년 평균가보다 24% 올랐다"고 말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은 19일 보고서에서 "밀·쌀·설탕 등 식품 가격에 지난해 초 대비 50% 이상 올랐다"고 분석했다. 아흐말디 전 아프간 중앙은행 총재는 "두 자릿수 이상의 초(超) 인플레이션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흐마디는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경제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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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카를 입은 아프간 여성들이 시장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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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중앙은행 총재 대행 임명



일각에서는 탈레반이 아프간에 매장된 막대한 양의 희귀 광물을 활용해 국부를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2010년 미국 지질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아프간에는 1조 달러(약 1175조원) 상당의 철·금·구리·희토류 및 리튬 등의 광물이 매장돼 있다. 하지만 아흐마디는 "탈레반이 갑자기 이것을 캐낼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정말 어렵고, 중국이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어 아프간의 광산 프로젝트에 참여할 이유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탈레반은 아프간 경제 질서 회복을 위해 23일 중앙은행 총재 대행으로 하지 모함마드 이드리스를 임명했다.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탈레반은 이드리스 중앙은행 총재 대행이 아프간 국민이 직면한 경제 위기를 빠르게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드리스는 북부 자우즈잔주 출신으로, 2016년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탈레반의 2대 최고지도자 아흐타르 만수르 밑에서 장기간 재무를 담당하며 수완을 인정받았다. 금융·경제에 대해 고등교육을 받은 경험은 없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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