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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아프간 비극 이유는 국민 단합 안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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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나지라 카리미가 아프간 국기 색상의 스카프를 들어보이며 “국기가 내려가는 모습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이광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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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한 직후인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 기자회견에서 화제가 된 기자가 있다.

아프간 출신 프리랜서 언론인 나지라 카리미다. “탈레반이 (카불의 대통령궁에서) 내 나라의 국기를 뗐다”는 그의 울먹임 섞인 말에 회견장이 숙연해졌고, “바이든 대통령은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우리 국민과 싸울 거라 했는데 어떻게 된 거냐”는 질문에 존 커비 대변인의 말문이 막혔다.

23일(현지시간) 워싱턴 라파예트 광장에서 만난 카리미는 기자회견 당일 아침 페이스북을 열었다가 타임라인에 뜬 국기가 (탈레반을 상징하는) 흰 깃발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무너졌다고 했다. 아프간 국기가 그려진 마스크를 한 채 회견장에 간 것도 그 때문이다.

카불에서 학업을 마친 뒤 곧장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90년대 말 탈레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향했다. 카리미는 당시 상황을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그때의 경험 탓에 “이제는 변할 것”이라는 탈레반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탈레반은 항상 거짓말을 해왔다”며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것도 국제사회에서 일단 인정을 받기 위한 방편일 뿐이며 탈레반이 곧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바뀔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아프간 아이들을 걱정했다. “탈레반은 마드라사라는 별도의 교육기관을 세워 아이들을 가르칠 겁니다. 교육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탈레반 근본주의를 주입하는 것이죠. 아이들은 그렇게 미래의 탈레반 전사가 되는 겁니다.”

카리미는 아프간 전쟁은 이슬람 종교 전쟁이 아닌 정치 전쟁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지정학적 위치와 리튬·우라늄 등 막대한 양의 광물 자원이 핵심이란 얘기다. 그는 “소련이 와서 아프간을 이용하더니, 이어서 미국이 왔다 가고, 이제는 중국이 탈레반과 가까워지려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희생된 것은 어느 편도 들지 않던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비극이 그치지 않는 이유로 단합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면서 “앞으로도 단결하지 않으면, 탈레반뿐 아니라 또 어떤 이름의 집단이 나타나 아프간의 운명을 놓고 주사위를 굴리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아프간 국가번호로 시작하는 전화번호가 수시로 찍혔다. 카리미는 “아프간의 지인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계속 전화하고 있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더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관심을 가져준 한국 등 여러 나라에 감사를 표하면서 “어떤 나라든 아프간처럼 이방인에 점령당하는 비극을 겪지 않도록 단합하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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