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뒤 기자들 질문을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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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려는 아프간인 명단을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에 넘겼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탈레반이 운영하는 검문소를 안전하게 통과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탈레반에 보복당할까 두려워 아프간을 떠나는 이들의 명단을 준 것은 살생부를 손에 쥐여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나온다.
폴리티코는 조 바이든 행정부와 의회 관계자 3명을 인용해 미국 정부가 탈레반에 미국인과 영주권자, 미군에 협조한 아프간인 명단을 넘겼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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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인 조력자 명단, 탈레반에 살생부 넘긴 격"
탈레반이 통제하고 있는 카불 공항 외곽 경비구역 안으로 이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사전에 주선하기 위해서였다고 관료들은 설명했다. 아프간을 탈출하는 유일한 경로인 공항으로 가기 위해서는 탈레반이 운영하는 검문소와 경비구역을 지나야 한다.
문제는 탈레반이 지난 20년간 미군과 나토 동맹군에 협력한 아프간인에 대해 잔인하게 보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탈레반이 가가호호 다니며 부역자를 색출해 처형하거나 위협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미 국방부 관계자는 "아프간인들을 모두 살인 명부에 올린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끔찍하고 충격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카불 자살 폭탄테러 발생 후 연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탈레반에 아프간인 명단을 넘겼느냐'는 질문에 명단의 존재는 모른다면서도 그런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군이 탈레반 쪽 카운터파트에 접촉해 이 버스가 X명의 사람을 태우고 올 테니 그 버스를 통과시켜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명단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아는 바가 없다"고 덧붙였다.
아프간인 명단을 통째로 넘겼다기보다는 언제, 어떤 사람들이 검문소를 통과할 건데 보내주라는 식으로 일부 이름을 건네기도 했다고 시인한 것이다.
명단 문제는 이번주 행정부가 의회에 아프간 현안에 대해 비공개로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나왔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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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공항 외곽 탈레반이 통제…"미국인 안전 하청줘"
의원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탈레반과 밀착하면서 긴밀히 협력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미국 정부가 카불공항 바깥 구역 보안을 전부 탈레반에게 사실상 '하청'을 줬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한 정부 당국자는 "탈레반이 공항 밖 모든 것을 통제하도록 백악관이 만들어 놓은 상황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탈레반 의존도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탈레반 협조를 받아 대피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탈레반을 어떻게 믿느냐는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 탈레반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면서 "바로 미군이 아프간을 떠나는 것을 둘 다 원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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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적은 친구? IS 맞서 미국과 탈레반 밀착
특히, 카불공항 테러가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탈레반과 미국은 더욱 힘을 합치는 모양새다. IS와 탈레반은 서로 경쟁적 관계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둘은 "적"이라고도 표현했다.
케네스 맥켄지 미 중부사령관은 이날 국방부 기자회견에서 추가 테러 발생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이와 관련한 정보를 탈레반과 가능한 범위까지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문소에서 탈레반이 차단해주지 않으면 테러로 또 미군과 민간인이 희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탈레반에 의존하는 데 대한 비판도 크다. 야당인 공화당뿐만 아니라 바이든이 속한 민주당 의원도 비판적 시각을 제시했다.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인 밥 메넨데스 의원은 성명을 통해 "보다 상세한 정보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와중에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미국인의 안전을 탈레반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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