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앞 장사진… ATM 돈 떨어져
탈레반 보복 없다지만 곳곳 폭력
여성 청바지 태우고 남성은 수염
국제 원조도 끊겨 생존 장담 못해
탈레반도 타 무장단체 위협 불안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은행 점포 앞에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예금을 인출하려는 주민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는 문 닫은 은행 앞에서 현금 인출을 요구하며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카불=신화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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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떠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네사르 카리미는 눈을 뜨자마자 은행으로 달려갔다. 도착한 시간은 오전 6시. 아직 은행이 문을 열기 전이지만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이미 길 줄을 이루고 있었다. 탈레반은 지난달 28일 은행영업 재개를 명령하며 일주일 인출 한도를 200달러(약 23만원)로 제한했는데, 이만큼이라도 뽑아가려는 사람들이 은행 앞에 장사진을 이뤘다. 이틀 연속 은행을 찾은 카리미는 이날도 빈손으로 돌아섰다. 낮 12시쯤 은행이 현금인출기(ATM)에 돈이 다 떨어졌다며 ATM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뷰에서 “나 같은 사람 수백명이 은행 앞에 있었다”며 “탈레반이 파이프로 사람들을 때리기 시작해 더 머물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아프간이 불안한 출발을 시작했다. 탈레반은 공식적으로는 ‘보복과 억압은 없다’고 했지만, 현실은 다르다. 가디언은 “탈레반 지도부가 뭐라 하든 일반 대원들에 의한 폭력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아프간 국민들은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아프간 여성들은 청바지를 불태우고, 무신론자들은 하루 다섯번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턱수염을 기르고 있다는 마자르이샤리프의 한 주민은 “누구도 수염이나 옷차림을 두고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해야 살아남는다는 걸 안다”며 “삶과 죽음의 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고 했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군한 직후인 8월 31일 오전(현지시간) 수도 카불 시내에서 탈레반이 축하의 의미로 쏜 폭죽이 터지고 있다. 카불=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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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먹고사는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아랍계 방송 알자지라는 “아프간 국민에게 현재 가장 큰 걱정은 가난”이라며 “이들은 앞으로 음식을 식탁에 올려놓을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탈레반 장악으로 아프간 경제의 버팀목이던 국제원조가 끊기며 아프간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여 은행으로 모여들고 있다. 알자지라와 인터뷰한 카불의 20대 청년은 “사람들은 밀가루를 사서 가족을 먹일 목적으로 이곳에 왔지만, 100명은 겨우 성공하고, 2000명은 빈손으로 돌아간다”고 전했다.
미군 철수에 폭죽을 쏘며 자축한 탈레반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가장 큰 위협 요소는 경쟁관계인 무장단체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다. 아프간에는 IS-K 강성 요원 2000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 중 상당수는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가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풀려났다. 케네스 매킨지 미 중부사령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탈레반은 IS-K 문제를 다루느라 정신없어질 게 확실하다”고 전망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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