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빌딩 파이낸스 2021]
<3>'은행' 사라지고 '금융'만 남는다
국민·우리·신한 "디지털 경력 우대" 개발자 채용 열올려
빅테이터 활용 콜센터·통신사 협업···새 서비스에도 속도
카뱅·네이버에 뒤처질라···'MZ세대 잡기' 체질개선 사활
‘10년 이상 사용자인터페이스(UI)·사용자경험(UX) 경력을 가진 전문 인력, 클라우드 분야 3년 이상 경력을 가진 엔지니어링, 인공지능(AI) 기반 개발자.’
최근 은행권에서 채용 모집에 나선 직군이다. 정보기술(IT) 기업에서나 뽑을 법한 디지털 전문 인력 채용에 기존 금융사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AI·블록체인·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등 최첨단 IT 기술들이 금융권의 필수 기술로 자리 잡으면서다. 기존 금융사들이 전통적인 영업 방식에서 벗어나 IT 기술과 금융을 융합한 새로운 서비스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디지털에 친숙한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고 빅테크·인터넷은행 등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체질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클라우드 엔지니어링 전문직무직원, AI 기술 기획 및 개발 관련 전문직무직원 등에 대한 수시 채용 모집을 공고했다. 금융사에서 근무한 경력보다 디지털 관련 분야의 경력을 1년 혹은 3년 이상 가진 지원자를 우대한다. 우리은행에서도 스마트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관련한 UI디자이너·UX기획자, 디지털 신사업 모델을 기획할 비즈니스기획자, 마이데이터를 위한 데이터사이언티스트 등을 모집하고 있다. 해당 분야에서 최소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전문 개발자가 주요 대상이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AI·데이터사이언스·클라우드·뱅킹시스템·정보보호 분야에서 석·박사 특별 전형을 실시해 면접을 진행하고 있다.
은행들이 IT 개발자를 채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IT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금융 서비스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최근 그룹 통합의 ‘AI콘택트센터(AICC)’ 구축을 위한 입찰 공고에 나선 신한은행이 대표적이다. AICC는 은행·카드·증권·보험 등 주요 계열사별로 나눠 운영하던 콜센터를 하나로 일원화하는 것으로 국내 금융사에서 처음 시도하고 있다. AICC는 AI와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 상담 서비스를 빠르게 처리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신한은행은 수십억 원을 투입해 메타버스 플랫폼도 직접 개발하고 있다. 타행이 제페토·게더타운 등 기존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신한은행 측은 “기존 플랫폼으로는 금융 업무에 접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은행에 맞는 메타버스를 개발하려고 한다”며 “모바일 뱅킹 앱인 ‘신한 쏠’에 접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들도 AI·블록체인·메타버스 등을 접목한 서비스 개발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은행·NH농협은행 역시 삼성전자 등 IT 기술력을 가진 회사들과 손잡고 메타버스 연구에 나섰다. 하나은행은 포스텍과 함께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발행 시 시중은행의 공급, 개인의 이체 및 결제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증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SK텔레콤과 함께 AI 뱅킹 서비스 개발을 공언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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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이 이처럼 디지털에 힘을 주는 데는 자칫 빅테크, 인터넷은행에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카카오뱅크가 상장하자마자 시가총액(42조 원)이 KB금융(22조 원)을 뛰어넘으면서 기존 은행들의 위기의식은 더 커졌다. A금융지주사의 고위 관계자는 “내부 직원 중에는 (개인 금융만 하는 카뱅이 고평가되는데) 억울하다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며 “시장에서 보는 가치가 기존 금융주와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전문가들은 카뱅과 같은 네오뱅크(오프라인 지점 없이 인터넷·모바일만으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 핀테크 기업들이 은행의 입지를 약화시킬 것으로 전망한다. 전 세계 네오뱅크 시장만 2020년 399억 2,800만 달러에서 2025년 2,694만 4,400만 달러로 6배가량 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기성세대와 달리 주 소비층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들은 디지털에 익숙하고 네오뱅크·핀테크는 고객 중심의 UI·UX로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신속하고 편리하게 제공하면서 동시에 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에게 맞춤화·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데 기존 은행보다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뱅의 경우 내부 인력의 약 45%가 개발자로 구성된 반면 지난 2019년 기준 은행권의 전체 임직원 대비 IT 직원 비중은 4%에 그쳤다. 디지털에 익숙한 고객들은 기존 은행보다 이 같은 핀테크·네오뱅크를 먼저 찾을 수 있는 것이다. KPMG는 “디지털 기기를 신체의 일부인 양손에 끼고 성장했기 때문에 젊은 밀레니얼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거대 IT 기업이 제공하는 금융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점점 더 많은 금융 소비자들이 거대 IT 기업이 제공하는 금융 서비스를 사용하려고 하고 거대 IT 기업들의 잠재력은 뱅킹 생태계의 균형을 바꿀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금융 당국이 오픈뱅킹·마이데이터 등의 제도를 통해 데이터를 개방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고객 정보에 대한 은행의 우위가 사라진 점도 은행에는 위협 요인이다. 기존 은행들이 디지털 전환을 넘어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시중은행의 디지털 담당자는 “금융사들도 ‘금융의 미래’보다 ‘미래의 금융’ 차원에서 미래를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금융의 미래는 지금의 금융 서비스가 미래에 어떻게 변화될지 주목하는 반면 미래의 금융은 새로운 세계에서 금융이 어떻게 이뤄질지 주목하는 것을 뜻한다. 그는 “정말 새로운 아이디어는 ‘미래의 금융’에서 나올 것”이라며 “지금의 20~30대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을 요구할텐데 그 수준에 맞춰 누가 준비했느냐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김지영 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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