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북한이 정권수립 기념일 73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진행하고 있다. 예비군과 경찰, 주민 수만명이 동원된 이 열병식은 이날 자정에 개시됐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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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9일 자정에 또 한번 심야 열병식을 개최했다. 늦은 저녁 또는 자정 시간에 열병식을 진행하는 것은 김정은 정권에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현상이다. 북한은 이전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는 주로 오전 10시에 열병식을 개최해왔다. 만성적인 전기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은 굳이 왜 숱한 조명 등에 따라 상대적으로 전력이 더 소비되는 심야시간을 택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수천개의 조명으로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고 주석단에서 연설을 하는 김 위원장이 조명으로 부각되는 '히틀러식' 선전·선동 효과 등을 노렸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은 이와 더불어 김정은 시대 '심야 열병식' 개최의 또 다른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우선은 '민심이반'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군인들 뿐 아니라 평양주민들을 수만명씩 동원하는 북한 열병식 특성상 심야시간이 현실적으로 이들의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간대라는 분석이다. 실제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열병식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한 탈북민에 따르면 열병식에 동원되는 경우 약 10시간 전부터 대기를 해야 한다. 특히 기존처럼 오전10시에 열병식이 진행되는 경우 전날 밤 잠을 한숨도 못자게 된다. 밤을 꼬박 새우며 열병식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열벽식 전 이들은 대략 'D-10시간' 시점인 전날 밤 10~12시에 보통강 구역에 집합한다. 이곳에서 도보로 1시간 30분을 이동해 김일성 광장 인근에 있는 유명 식당 '옥류관' 앞에서부터 행진을 위한 대오를 갖춘다. 참가하는 인원 규모에 따라 다르겠으나 이 대오는 보통 2km 떨어진 평양개선문까지 늘어서게 된다. 이후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거친다. 새벽 4시가 되면 보위부원들은 금속탐지기로 수만명의 참가자들의 몸을 일일이 수색한다. 혹시 모를 생리현상을 막기 위해 아침 6시부터는 일체의 식음이 금지되기도 한다. 이후 또다시 대오 정렬을 하고, 입장을 위해 대기하는 데 또 2~3시간이 소요된다.
이 탈북민은 "북한 정권을 떠받들고 있는 핵심계층인 평양주민들의 불만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 심야 열병식을 택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자정에 열병식을 시작하면 오후 이른 시간 모여 준비하고 새벽 1시~1시반 행사 종료 직후 귀가해 잠을 청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대북 전문가는 "극심한 경제난으로 북한 주민들의 민심이 흉흉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이들의 불만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열병식이 진행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야시간 열병식 개최를 위해 미국을 벤치마킹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체제결속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화려한 불꽃놀이와 에어쇼로 전국민이 축제 분위기에 매료되는 미국의 독립기념일 행사에 착안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지난해 미국으로부터 미 독립기념일 행사 모습을 담은 DVD를 요청했던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김여정은 지난해 7월 10일 대미 담화을 발표하면서 말미에 "가능하다면 앞으로 독립절기념행사를 수록한 DVD를 개인적으로 꼭 얻으려 한다는 데 대해 위원장동지로부터 허락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담화가 "조미수뇌회담(북미정상회담)과 같은 일이 올해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을 압박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던 점을 감안하면 다소 엉뚱한 요청이었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여정이 실제로 이 DVD를 미국으로부터 전달받아 대규모 심야 행사를 참고하는 데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 북한이 심야 열병식을 처음 선보인 지난해 10월 10일 당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는 화려한 형광 LED를 부착한 전투기 에어쇼와 형형색색의 축포가 터지는 불꽃놀이가 진행됐다. 최신예전투기가 공중분열식으로 하늘을 수놓고 불꽃축제로 대미를 장식하는 미국의 독립기념일(7월4일) 기념행사와 유사한 형식을 취한 것이다. 역시 늦은 저녁시간대(6~7시께) 이뤄진 지난 1월14일 8차 당대회 기념 열병식과 9일 열린 정권수립 73주년 기념 열병식에도 불꽃놀이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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