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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길찾기앱 익혀 맛집도 찾아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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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스마트 시니어] [1] 스마트폰 배우고싶은 어르신들

아이돌보미 60대 “버스앱 덕분에 출근시간을 20분이나 단축했지”

인터넷뱅킹에 관심 많은 70대 “손주 용돈 멋지게 송금해주고파”

조선일보

지난 14일 서울 은평구 행복창조노인복지센터에서 어르신들이 ‘어디나 지원단’ 강사들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 대부분 50~70대 어르신 강사들로 구성된 어디나 지원단은 친구에게 가르쳐주듯 어르신 눈높이에서 편안하게 디지털 사용법을 알려준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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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서울 은평구에 사는 서성명(76)씨는 휴대전화에서 갑자기 사진 수십 장이 사라지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그의 아내는 7년 전 세상을 떠났다. 평소 스마트폰으로 생전 아내와 찍은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기곤 했는데 그 사진들이 사라진 것이다. 당황한 그는 1시간 동안 휴대전화를 만져봤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서울디지털재단을 통해 만난 스마트폰 강사가 휴지통에 남아 있던 사진 50여 장을 복구하는 방법을 알려줘 아내 사진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생활 필수품이 됐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 어르신 중에는 수많은 ‘서성명씨’가 있다. 상당수 어르신에게 스마트폰은 아직 경험해 보고 싶지만 두려운 물건이다. 실수로 데이터를 잃거나 기계를 고장 낼까 봐, 혹은 개인 정보가 유출될까 봐 스마트폰이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본지는 지난 6월 ‘디지털 세상, 노인은 서럽다’ 시리즈를 연재했다. 디지털 기기를 다룰 줄 몰라 물건을 구입할 때 더 비싸게 사는 등 사실상 ‘노인세’를 내고 산다는 문제 제기였다. 이후 실제 어르신들이 일상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떤 것을 원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이번에는 최근 스마트폰 배우기를 결심한 60~80대 20명을 직접 만나 사연을 들었다.

어르신들의 목표는 예상보다 평범했다. 편하게 나들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 찾기 앱, 예쁘고 신기한 경험을 담고 싶은 사진 찍기 앱, 적적할 때 사진을 주고받고 대화 나누는 메신저 앱 사용법을 가장 배우고 싶어 했다.

서울 도봉구에 사는 김민숙씨(64)는 아이 돌보미로 일하며 매일 중구의 한 아파트로 출근한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아들이 종이에 써준 ‘지도 앱 사용법’을 들여다본다. 김씨는 “배워도 돌아서면 잊어버려서 결국 종이에 써달라고 했다”며 “앱으로 갈아탈 버스를 찾는 법을 배웠더니 출근 시간이 20분이나 줄었다”고 했다. 종로구에 거주하는 최모(76)씨도 “사지 멀쩡한데도 길을 모르니 자식들이 안 데리고 나가주면 마냥 집에서 TV만 본다”며 “혼자서 당당하게 외출하고 맛집도 찾아다니는 멋진 노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스마트폰 기본 기능인 사진 찍기와 저장 방법을 더 잘 알고 싶다는 이도 많았다. 송파구에 사는 황승자(63)씨는 코로나 직전인 2019년 말 친구 30명과 간 단체 여행에서 찍은 사진 수십 장을 친구들에게 보내주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사진을 한 번에 여러 장 선택해서 보낼 수 있는지 모르고 한 장씩 지정해서 보냈기 때문이었다. 황씨는 “최근에 ‘묶어 보내기’를 배우고 나니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또 코로나로 지인들을 만나기 어려워진 만큼 카카오톡(카톡) 같은 메신저 앱을 배우고 싶다는 요구도 많았다.

어르신들이 많이 꼽은 ‘장기 목표’는 인터넷에서 물건을 사고, 은행 업무를 보는 것이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김종희(70)씨는 “손주들한테 돈을 온라인으로 보내는 세련된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손주들이 열한 살, 여섯 살이다. 지금은 한 번씩 찾아오는 아이들 손에 용돈을 쥐여주지만, 몇 년 후 자주 보기 어려워지더라도 용돈을 슬쩍 송금해주고 싶다고 했다.

양길순(80)씨는 “TV 홈쇼핑 같은 것은 전화로 주문이 가능하지만 ‘주민번호를 알려달라’ ‘카드 번호를 대라’며 개인 정보를 달라고 하더라. 그러면 무서워서 그냥 전화를 끊는다”며 “스마트폰은 카드 정보를 한번 등록해두면 그다음부터는 쉽게 장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꼭 배우고 싶다”고 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스마트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에겐 무엇보다 가족들의 관심이 중요하다”며 “추석에 모여 ‘유튜브 검색법’ 등 간단한 기능만 잘 설명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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