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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날아다니는 광고판’ 항공기 래핑… 시속 900㎞에도 안 떨어지게 필름 수백장 겹쳐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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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월 항로에 투입된 제주항공(089590) B737-800의 외관은 일반 여객기와 다르다. 여객기 날개 뒤 동체 절반이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의 사진으로 덮여 있다. 사진 옆에는 ‘HAPPY JIMIN DAY’(해피 지민 데이)라는 글귀가 선명했다. 10월 13일인 지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중국 팬들이 돈을 모아 제주항공 여객기에 ‘생일 축하 광고’를 붙인 것이다. 이른바 ‘지민 비행기’는 올해 연말까지 서울과 제주, 부산 등 전국 곳곳을 누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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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경남 사천 한국항공서비스(KAEMS)의 격납고에서 제주항공 여객기에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의 생일 광고를 위한 래핑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트위터 'PARKJIMINBAR' 게시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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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날아다니는 광고판’… 광고비 최대 수억원

항공업계에 따르면 항공기를 활용한 광고는 페인트 도색 또는 래핑(Wrapping) 작업을 통해 이뤄진다. 1년 이내로 짧게 광고하는 경우 페인트보다는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하고 작업 기간이 짧은 래핑이 많이 쓰인다. 일러스트가 아닌 연예인 실사를 붙이는 것은 래핑만 가능하다. 래핑은 굴곡진 항공기 동체에 필름을 정확한 위치에 붙여야 해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경남 사천의 한국항공서비스(KAEMS) 격납고에서 이뤄진 이번 제주항공 래핑 작업은 꼬박 5일이 걸렸다.

항공기 래핑 광고는 전 세계 곳곳을 누빈다는 상징적 의미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광고 효과로 인기가 높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에선 벌써 지민 비행기 탑승 인증샷이 공유되고 있다. 한 트위터 회원은 항공기 추적 웹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 링크와 함께 언제 어디서 해당 여객기가 뜨는지 조회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항공기 래핑 광고는 옥외광고 중에서도 비싼 편에 속한다.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른다. 광고대행업체 관계자는 “위치, 크기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면서도 “이번 지민 래핑 광고의 경우 동체 절반을 차지한 만큼 1억원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항공은 이번 지민 광고 비용을 밝히지 않았으나, 중국 팬들은 지민의 생일 광고를 위해 최소 230만위안(약 4억원)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지난 4월 중국 대형 포털 사이트 웨이보에서 이같은 모금 활동을 벌였다가 ‘사회 공약을 위반했다’라는 이유로 60일간 활동이 중지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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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한항공 서울 강서구 본사 격납고에서 어린이들의 그림을 보잉 747-8i 여객기에 래핑하는 모습. /대한항공 유튜브



◇ 필름 조각 정확하게 붙여야 해 전문가도 ‘진땀’

항공기 래핑 작업은 격납고에 들어온 항공기를 세척하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이물질 위에 필름을 붙일 경우 작은 충격에도 필름이 찢어질 수 있다. 필름이 제대로 붙지 않거나 일부만 떨어져 나갈 경우 공기 저항을 만들어 비행을 방해할 수 있다. 세척이 완료되면 필름을 붙일 위치를 실측한 뒤 이를 토대로 도면을 만든다. 모형 항공기에 직접 시뮬레이션까지 마친 뒤에야 본격적인 작업이 이뤄진다.

항공기 래핑에 사용하는 필름도 특별하다. 래핑에 사용되는 필름은 1만m 상공에서 영하 60도~영상 50도를 견딜 수 있는 특수 재질로 만들어졌다. 컴퓨터로 작업한 이미지를 이같은 특수 필름에 출력시킨 뒤 변색을 막기 위한 특수 코팅 작업도 이뤄진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1만m 상공에선 지상보다 자외선이 훨씬 강해 쉽게 변색이 일어나고 녹이 슬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항공기에 부착하는 필름은 모자이크처럼 작은 조각으로 나눠져 있다. 항공기 동체가 평면이 아니고 부피 또한 매우 크기 때문에 전체 이미지를 한 번에 붙일 수 없다. 지민 이미지가 부착된 B737 여객기의 경우 몸체 길이만 39.5m에 높이는 12.6m나 된다. 제주항공은 가로 1.2m, 세로 1m 크기의 래핑 조각 총 120장을 붙여 지민 비행기를 완성했다. 필름을 붙이는 순서도 중요하다. 항공기 꼬리부터 머리 쪽으로, 하부에서 상부 방향으로 6∼15㎜씩 겹쳐서 붙여야 한다. 항공기가 시속 900㎞의 속도로 비행하는 과정에서 바람의 저항을 덜 받게 하기 위해서다.

필름 부착을 완료한 뒤에도 까다로운 작업이 남아있다. 창문과 비상구를 피해 필름을 정확하게 오려내야 한다. 인천의 한 옥외광고업체 대표는 “기차나 항공기 동체엔 리벳(나사 부품 종류)이 촘촘히 박혀 있어 필름을 붙인 뒤 뜨거운 열을 이용해 리벳 위까지 완전히 밀착시켜야 한다”라며 “손이 많이 가는 까다로운 작업이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없다”라고 했다. 최종적으로 필름이 벗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다시 한번 코팅제를 바르면 모든 작업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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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2’ 속 등장인물이 래핑된 대한항공 여객기 모습. /대한항공 제공



◇ 스타크래프트 게임 속 캐릭터도 래핑

국내에서 항공기 래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초부터였다. 대한항공(003490)이 2001년 제주 관광 활성화를 위해 김포∼제주 노선을 오가는 여객기에 돌하르방, 한라산, 귤, 유채 등 제주를 대표하는 4가지 상징물을 부착했다. 이듬해인 2002년엔 한일 월드컵을 기념해 ‘슛돌이’ 래핑을 선보였다. 2007년엔 가수 비의 월드투어를 홍보하기 위해 비의 사진을, 2008년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기념하고자 모나리자 그림을 여객기에 래핑해 주목을 받았다.

2010년엔 글로벌 게임사 블리자드와 손을 잡고 대한항공 여객기에 스타크래프트 게임 캐릭터 이미지를 넣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대한항공은 블리자드와 공동마케팅의 일환으로 B747-400, B737-900 여객기 2대에 스타크래프트 등장인물인 테란 짐레이너의 이미지를 특수 필름으로 래핑했다. 해당 여객기들은 6개월간 국내 노선과 미주, 유럽 노선 등에 투입됐다.

2019년 5월엔 남자 아이돌그룹 엑소(EXO) 멤버 세훈의 생일에 맞춰 중국 팬들이 티웨이항공(091810) 여객기에 세훈의 사진과 생년월일을 도배하는 광고를 실시했다. 외부 래핑 뿐만 아니라 기내 테이블까지 세훈의 사진으로 장식했다. 당시 제작기간만 3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기 래핑 광고는 비용이 1억~2억원씩 하기 때문에 코로나19로 경영 사정이 어려운 저비용항공사(LCC)들에겐 단비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김우영 기자(you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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