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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이상언의 '더 모닝'] 할아버지·할머니가 뛰어든 '지구 살리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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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인류 멸종 위기에 발 벗고 나선 노인들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할아버지·할머니가 뛰어든 '지구 살리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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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적극적인 기후 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인 영국 노인들. 고속도로 위에 앉아 차량 통행을 막았다. 바닥에 접착제로 붙여 놓은 한 노인의 손을 경찰이 떼어내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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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위기에 발 벗고 나서는 노인이 늘어난다. 2주 전 영국에서는 시위대 곳곳에서 흰 머리의 노년들이 눈에 띄었다. BBC는 그들을 ‘gray greens’(백발의 환경운동가들)라고 칭했다.’ 9월 4일 자 워싱턴포스트(WP) 기사의 일부입니다.

여러 나라에서 어르신들이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행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영국ㆍ프랑스ㆍ독일 등의 유럽 국가와 미국에서 먼저 나타난 현상입니다. 화력 발전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정부 정책의 변화를 촉구하는 행진을 합니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생활 개혁 캠페인에 앞장서기도 합니다.

위에 소개한 WP 기사의 뒷부분에는 한 영국 노인의 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집단적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배출가스를 마구 뿜는 차를 운전하며 살아왔고,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즐겼다. 아마존 숲의 파괴를 방관하기도 했다.” 후손들에게 미안해서 거리로 뛰쳐나왔다는 설명입니다.

영국 여론조사 기관인 입소스 모리가 최근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영국 65세 이상의 35%가 기후변화 대응을 사회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습니다. 18~34세는 그 수치가 24%였습니다. 기후변화 문제를 안고 살아갈 젊은이들보다 노인들이 더 지구의 위기를 걱정한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됩니다. 하나는 최근 세계 곳곳에 나타난 홍수, 산불, 한파 등을 보거나 겪으며 기후변화를 체감('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는 느낌)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이가 들면서 하루하루 바쁘게 뛰어다니고 아등바등 경쟁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비해 인류의 문제를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다 손자ㆍ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할아버지ㆍ할머니의 마음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영국 언론은 ‘백발의 환경운동가들’ 때문에 경찰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보도합니다. 불법으로 규정된 시위 현장에서 노인들이 체포에 겁을 안 낸다고 합니다. “살 만큼 살았고, 전과자가 돼도 상관없다.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고 소리친다고 합니다. 노인들은 시위대를 보호하는 역할도 합니다. 노인들이 다칠까 봐 경찰이 강제력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제 주변의 어르신들은 정치 걱정이 많습니다. 기후변화 같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가 끼어들 틈이 별로 없습니다. 비단 노인들의 세계에서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정치권력을 둘러싼 갈등이 현재와 미래의 모든 문제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년과 노인이 어우러져 지구를 살리자고 외치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부럽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어르신들의 집단 행동이 시작됐습니다. 관련 기사를 보시죠.

■ 환경운동, 노년이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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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60+ 기후행동’ 출범 선언 기자회견장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편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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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그레이 그린’(Grey Green)이 첫발을 내디뎠다. 그레이 그린이란 환경 운동에 앞장서는 노인층을 뜻하는 신조어다. 해외에서 노년층이 주도하는 환경 운동이 점차 대두하는 가운데, 국내서도 600명 넘는 노인들의 뜻을 모은 시민단체가 출범을 선언했다.

23일 오전 서울 중구 가톨릭회관엔 윤정숙(63) 녹색연합 상임대표, 안재웅(81)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 이경희(74) 환경정의 이사장, 박승옥(68) 햇빛학교 이사장 등 10여명이 모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세 가지다. 환경 운동가이자, 실버 세대이며, ‘60+ 기후행동 서명운동’에 자신의 이름을 적은 사람들이다. 60+ 기후행동은 60세 이상인 ‘그린 그레이’ 600여명의 서명을 받아서 만든 환경 운동단체다.

60+ 기후행동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노년이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을 발표한 나지현(60) 우분트재단 사무처장은 “우리 노년이 누려온 물질적 풍요가 청년들의 미래를 빼앗아온 결과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며 “물려받은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게 물려주기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함께 발표에 나선 유정길(61)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은 “노년은 수동적이지 않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모든 세대와 함께 행동하자”고 했다. 박승옥 햇빛학교 이사장은 “내가 사는 지역부터 차 없는 거리, 가로숲길을 만드는 등 작은 친환경 실천을 하면 큰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60+ 기후행동은 서명운동을 마친 뒤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앞으로 석탄 화력발전에 반대하는 시위 같은 구체적 행동도 구상하고 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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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기자 lee.sang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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