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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배도 비행기도 없다"…물류 대란에 전세계 비상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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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계 공급망 복합위기 ◆

매일경제

26일(현지시간) 영국 하트퍼드셔주의 헤멀헴프스테드에 있는 BP 주유소 앞에 `기름 없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현재 영국에서는 기름을 주유소로 실어나를 트럭 운전사를 구하지 못해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로이터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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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자동차 부품에 이어 생활필수품까지 글로벌 공급망이 '복합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나이키는 23일(현지시간) 아시아 지역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북미 지역으로 가져오는 데 무려 80일이 걸린다고 밝혔다. 동남아시아에 불어닥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공장 가동에 차질을 빚을 뿐 아니라 팬데믹 이전보다 물류 운송에 소요되는 시간도 2배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유통업체 코스트코는 제품을 실어나를 트럭과 운전사를 구하는 데 애를 먹으면서 키친타월에 이어 휴지와 생수 판매 수량까지 제한하기로 했다. 공급난은 제품가격도 밀어 올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인조 크리스마스트리 가격은 예년보다 25% 이상 비싸졌다.

영국에서는 주유대란이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영향으로 주유소까지 기름을 운반하는 트럭 운전자들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트럭을 운전하는 상당수는 외국인 노동자였는데 브렉시트로 EU 회원국 국민이 영국에서 일하려면 신규로 비자를 받아야 한다. 연료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유소에 사재기 행렬까지 몰리고 있다. 영국에서 주유소 1200개를 보유하고 있는 석유 기업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지점 3곳 중 1곳은 휘발유가 동이 났다. 영국휘발유소매업자협회(PRA)는 일부 지역의 경우 전체 주유소 중 90%가 기름이 고갈됐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영국 정부가 군 병력을 투입해 연료를 수송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내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이미 계약한 신차를 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아우성"이라면서 "부품 구매팀이 백방으로 뛰며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려 해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이어 "가뜩이나 이들 부품을 해외에서 들여오기 위해 소요되는 물류비까지 최근 크게 올라 걱정이 많다"며 "부품 공급에 이어 물류까지 한마디로 설상가상"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변이가 주로 동남아 지역에 확산되면서 차량용 반도체 등 부품과 주요 소비재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급등한 물류비는 동남아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의 이동을 더욱 늦추고 있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면서 한때 스마트폰 공급에 상당한 차질을 빚기도 했다. 중국의 전력 공급난도 문제를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아시아 최대 전력 공급국인 중국은 내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겨냥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대폭 낮추기로 하면서 석탄 등 화석연료 발전을 규제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외교적 갈등까지 더해져 희토류 등 중국 자원의 대미 수출 제한 가능성도 거론되면서 전 세계 산업 공급망 위기는 향후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일단 해외에서 부품을 받아 완제품을 생산해야 할 국내 산업계는 공장 가동 중단과 재개를 잇달아 반복하는 등 타격을 입고 있다. 다른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공급망 재정비로 반도체 등 부품 수급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며 "사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외 변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등 위기 관리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동남아 상황은 아직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베트남 정부가 봉쇄 조치의 단계적 해제를 시사하면서 국내 업체들이 가동 정상화를 위해 힘쓰고 있지만 현지에 동반 진출한 부품공장 가동률 저하가 이어지면 정상화에 시일이 더 걸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때 블랙프라이데이, 크리스마스 등 가전제품 성수기인 올 4분기 판매에 차질을 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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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물류대란도 지난해부터 지속돼 최근까지 완화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 사태 후 세계 경기가 회복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자 물동량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는 컨테이너선 운임 급등으로 이어졌다. 국내 수출기업은 화물을 실어나를 선박과 컨테이너를 구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운 운임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24일 4643.79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 5월 14일(3343.34) 이후 20주 연속 상승이다. 1년 전인 지난해 9월 말(1443.54)과 비교하면 3배 이상 올랐다. 한 물류업체 관계자는 "대미 수출기업은 웃돈을 주더라도 선박을 구하려고 하지만 경쟁이 워낙 치열해 이마저도 쉽지 않다"며 "항공 운송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지만 이쪽 운임도 최근 많이 상승해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중국 화주들이 높은 운임을 주고 선박을 입도선매하는 현상까지 잇따르고 있다. 글로벌 선사들이 중국에서 비싼 운임을 지불하는 중국 기업 화물을 가득 실은 뒤 부산항을 아예 건너뛰고 목적지로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중국 화주들은 국내보다 운임을 2.5배 이상 더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섬유·원단업체 또한 원가 상승과 물류난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다. 유럽으로 제품을 수출하는 국내 한 원단업체는 물류대란으로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통한 철도 운송까지 알아봤지만 최근 이것도 여의치 않자 포기하고 다시 배편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자국 내 반도체 공급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선 미국처럼 한국 정부 역시 산업계 공급망을 재점검하고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진우 기자 / 송광섭 기자 / 신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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