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5 (목)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갑질에 소방관 극단 선택하자 "인트라넷으로 제보하라" 황당 대책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대전소방본부 갑질 근절 대책 맹탕 지적

‘소방신문고’ 만들었지만 피해 접수 0건

“감찰팀에 이메일 보내면 신분 드러나는 것 아니냐”

세계일보

대전 소방공무원이 직장 내 갑질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가운데 대전소방본부가 내놓은 갑질 근절 대책이 맹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대전소방본부의 ‘건전한 조직문화 조성을 위한 갑질 등 신고센터 운영계획 알림’ 자료에 따르면 갑질 신고센터 운영 계획은 ‘소방감찰팀에 이메일로 자유로운 의견제출을 하라’는 게 전부다.

갑질 신고센터 운영 계획은 지난 달 초 휴직 중이던 대전소방본부 소속 소방관이 직장 내 갑질을 당했다며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대전소방본부가 “건전한 조직 문화를 조성하겠다”며 내놓은 대책이다.

대전소방본부는 이같은 ‘갑질 등 신고센터 운영계획’ 지침을 일선 소방서에 내려보냈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전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달 초 소속 공무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자 일주일 후 일선 소방서 등에 1매짜리 공문을 하달했다.

내용은 연중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이메일, 메신저, 온나라메일 등을 통해 소방감찰팀에 ‘사실에 근거한 권위주의적 관행 및 갑질 등 위법 부당행위, 직무위반 행위 등’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제출을 하라는 게 골자다.

이메일 등으로 수집된 의견은 정보 공유 및 자료로 활용되고, 제출된 의견 중 개인에 관한 사항은 소방본부장과 소방감찰팀에 한정돼 검토된다고도 했다.

그러나 대전소방본부가 인트라넷 ‘소방신문고’를 만들고 나서 접수된 갑질 등 위법행위는 9월 현재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갑질 피해신고·지원센터’도 실적이 없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은주 의원은 “소속 소방공무원이 직장 내 갑질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에 나온 대책이라기엔 매우 형식적이며 안일하다”며 “이메일이나 메신져 등을 통해 소방감찰팀에 갑질 등 위법 부당행위, 직무위반 행위 등을 신고하라는 것인데, 타 기관들이 신고자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 전문기관의 익명 보장 신고 시스템 등을 사용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앞서 대전소방본부는 지난 4월에도 ‘소방공무원 갑질 행위 근절대책’을 마련했지만 현장 직원들의 외면을 받았다.

대전소방본부는 소통창구를 활성화하겠다며 인트라넷에 ‘소방신문고’를 개설해 제보를 받겠다고 했으나 당시에도 개인 이메일이나 인트라넷으로 신고할 경우 제보자 추적이 가능하다는 우려가 쏟아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 직원들이 “외부 시스템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대전소방본부는 해당 문서의 ‘갑질행위 근절을 위한 세부 추진계획’ 부분에서 신고처리 절차 설명 말미에 “악의적 험담, 음해성 투고 등 근거 없는 비방 시 엄중 문책”하겠다는 엄포 문구를 명시해 신고자체를 위축시킨다는 비판도 일었다.

일선 소방공무원들도 “감찰팀에 이메일을 보내면 신분이 드러나게 되는 것 아니냐”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일권 소방을사랑하는공무원노동조합(소사공노) 위원장은 “대전소방본부에서 마련한 대책이나 현재 설문 조사 중인 조직문화진단은 직원들의 실제 피해 사례를 살펴보겠다는 의지가 없다”라며 “보다 적극적으로 직장 내 갑질 행태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꼬집었다.

세계일보

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소사공노는 이와 관련 소방인권센터 설립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 의원은 “소속 소방공무원이 직장 내 갑질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감찰부서에 이메일 제보를 하라는 게 갑질 대책의 전부인지 의문”이라며 “소속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외부 전문기관에 익명 설문조사를 의뢰해 조직 내 갑질 실태를 먼저 진단한 뒤, 그에 맞는 대책을 내놓는 게 순서”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어 “직장 내 갑질 등 위법 부당한 행위에 대한 신고가 접수됐을 때도 신뢰할 수 있는 외부기관이 아닌 내부조직에서 조사할 경우 공정성 시비가 붙을 수도 있다”며 “노사가 동의하는 외부기관에서 조사를 맡기는 게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전소방본부는 “갑질 제보가 들어오면 제출내용에 대한 검토 후 위법사항 해당 시 자체조사(기타 사항은 감찰자료 활용) 및 불합리한 조직문화 해당 사항은 개선조치 요구 등”을 하겠다고 말했다.

대전=강은선 기자 groove@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